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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뒤란에는 내 키만 한 제피나무가 한 쌍 있다. 수년 전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동네 뒷산에서 데리고 온 것이다. 봄이면 새순을 실하게 틔우고 한여름에는 살가운 열매를 달면서 그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잎은 따서 주로 찌개나 된장국에 넣고, 열매는 바짝 말린 다음 곱게 빻아 추어탕과 매운탕에 넣어 우리부부는 특유의 아릿함을 즐겼다. 제피가루를 살짝만 넣어 버무린 열무김치는 생각만 해도 군침이 다 돈다.

 그런 제피나무가 작년 봄 나란히 싹 틔우기를 멈추었다. 봄내 미동 없이 시커먼 맨 가지로만 무뚝뚝하게 서 있었다. 계절이나 시간을 망각한 채, 세상이 귀찮아 더는 삶을 체념한 몰골이었다. 나무가 해마다 착실하게 거듭남을 펼치는 것은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다.

 대체 원인이 뭘까 싶었다. 무슨 일이든지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고 하지 않던가. 비록 담벼락 아래 만들어진 작은 정원이지만, 햇살과 바람이 수시로 드나들어 가장귀와 이파리를 고루 쓰다듬었을 것이다. 야산 비탈만큼은 아니어도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 주변사정이 좀 달라지기는 했다.

 그렇다. 두어 평 남짓한 뒤란 정원은 이태 전에 들어선 옆집 4층 건물에 가려 바람과 볕이 귀했다. 감정도 사고도 없는 나무라지만,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건성으로 지나쳤었다.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가. 한창 성장기의 아이는 주변 가족의 관심과 사랑을 바탕으로 바른 인격이 형성 되는 것처럼 제피나무가 지내기에 환경이 열악했던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주인을 향해 숨이 막히고 볕이 그립다고, 목이 마르다며 애타하는 것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나는 햇살과 바람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커튼을 밀어 올리고 남쪽 창문을 열어젖히면서도 나무한테는 오로지 잎과 열매만을 닦달하는 무심한 주인이었다.

 "근처 텃밭으로 옮겨 심으면 살아날까?"
 생각 끝에 창고에서 괭이를 꺼내와 뿌리부터 캐보기로 했다.

 아! 이럴 수가…. 괭이질을 하자마자 금방 딱딱한 시멘트 바닥이 드러났다. 허옇게 마른 뿌리가 실타래처럼 뒤엉긴 데다 푸석한 흙이 모래처럼 흘러내렸다. 내 무관심을 탓하며 나무에게 겸연쩍은 마음이었다.
 살아날 기미라고는 어디에도 없어 보이는 나무를 감싸 쥐고 텃밭으로 가는 내내 신발 굽을 반쯤 땅바닥에 붙이고 걸었다. 탱자나무 울타리 앞에다 자리를 정하고 구덩이를 충분히 팠다. 잔뿌리까지 정성으로 챙기고 물을 길어다 붓고, 흙을 묻은 다음에 발로 꼭꼭 밟으며 간절히 부활을 빌었다.

 막 텃밭으로 옮겨진 제피나무가 마치 중병에 걸린 암환자가 명의를 만나 제대로 수술을 마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생명이란 무서운 거였다. 작년 봄 텃밭으로 간 제피나무가 올봄에 새순을 실하게 틔웠다. 혈색이 돌아온 가지마다 납죽한 잎이 피어나 간들간들 봄노래를 메들리로 풀어낸다. 때 되면 나울거리는 이파리 위로 붉은 열매까지 달 기세다. 나무는 분명히 목적이 있었던 거였다. 허무하게 생을 포기하기는 싫었던 것이다. 만일 내가 생각 없이 훌쩍 던져버렸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생을 접을 뻔했던 제피나무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 건물에 가려 바람과 햇볕이 턱없이 부족했을 뿐더러, 시멘트 바닥 때문에 뿌리는 물을 얻지 못했다. 거기다 주인까지 무관심했으니 어찌 살아날 방도가 있었으랴.

 텃밭은 나무한테 고향이나 진배없는 장소다. 이제는 하등의 장애물이 없을뿐더러 자유로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물을 마음껏 얻을 수 있고 햇빛과 바람, 달님과 별님까지 온통 그의 것이다. 그래서일까. 제피나무의 아린 향이 코끝을 간질인다.

 내 나이 어느덧 쉰 세대가 기울었다. 딴에는 열심히 산다고 살았으나 아무것도 해 놓은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낸 격이 되고 말았다. 젊은 날은 자식과 남편을 핑계 삼아 자신에게는 많이도 소홀했었다. 달빛이나 햇빛, 바람이나 자연을 가슴으로 느낄 만한 여유가 부족했었다.

 마침내 자식교육과 결혼이란 숙제를 다 한 중년이다. 이제부터 남은시간은 나를 위해 써도 될 것이다. 햇볕과 바람은 나를 향해서만 비출 것이고 몹쓸 시멘트 바닥 같은 장애물도 없는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제피나무가 다른 세상을 만나 새순을 키우듯 나를 위하는 시간으로 써도 될 것이다. 잎이 무성해지거든 보기 좋게 열매를 달아도 좋을 것이다.

 허망하게 생을 접을 뻔했던 제피나무를 바라본다. 연방 아린 향을 흩날리고 있는 것이 오늘은 마치 힘든 고비를 이겨낸 성공한 인생의 승자처럼 보인다. 칠월 더위쯤이야 아무 문제없다며 어깨를 흔들어 보이는 재피나무 곁을 한참이나 서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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