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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지만 40대 초반 미국 중부의 작은 도시에 체류한 일이 있다. 그 때 필자를 놀라게 한 것이 바로 공공도서관이다. 미국은 도서관 체계에 있어서는 단연 자유지대다. 시민은 물론 그 도시에 일정기간 머무는 여행자에게도 공공도서관은 개방된다. 나처럼 단기 체류자에게도 여권만 제시하면 준회원 카드를 발급해 준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그 곳에는 자료열람부터 세계 각국의 언어로 볼 수 있는 오디오북과 학습용 DVD, 고전에서부터 최신 베스트셀러까지 망라되어 있었다. 특히 놀라운 것은 작은 시골 도시 수준의 공공도서관이지만 자체 운영하는 프로그램의 다양성도 혀를 내두르게 했다. 독서토론 모임, 스토리텔링, 숙제 지원, 영유아 서비스, 가족 서비스, 직업 상담, 건강정보센터 운영 등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계층을 대상으로 다채롭게 펼쳐진다. 미국은 도서관공화국이다. 단적인 예지만 뉴욕이라는 대도시에 87개의 공공도서관이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인구 7만 정도의 중부 소도시 카펠시에 1개의 시립도서관과 3개의 공공도서관이 존재하는 곳이 미국이다. 그런데 말이다. 문제는 이들도서관의 위치였다. 거의 대부분의 공공도서관은 시청이나 주민센터와 함께 있고 시립도서관은 그 도시의 중앙공원 가장자리에 위치한 곳이 대부분이다. 공공도서관은 주민들의 이용이 편리하도록 배치하고 시립도서관은 도시를 상징할 수 있는 곳에 건립한다는 인문학적인 고려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울산도 최근 몇 년간 지자체의 인식변화로 곳곳에서 작은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굳이 대형도서관을 고집하는 구태를 버린 결과 북구나 울주군에서는 공공도서관을 활용한 문화사업이 활성화되고 있다. 지난주에는 울산 최대규모인 선바위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도서 3만3,103권, DVD 1,851종, 전자책 5,753종을 구비하고 712석의 열람석이 있는 곳이 울산 최대의 도서관이라고 대대적인 행사도 했다. 선바위도서관은 장서의 규모나 열람석의 수준은 동네도서관 수준이지만 무엇보다 자랑할 만한 것이 한가지 있다. 바로 도서관이 위치한 입지조건이다. 태화강이 앞마당으로 완만한 선을 그리고 녹음이 무성한 풍경이 창을 가득 채우는 곳이 선바위도서관이다.  

 도서관은 상상력의 인큐베이터다. 지구의 한쪽 끝 작은 공간에 있지만 우주와 교감하는 곳이 도서관이다. 한 국가나 도시의 정체성을 살피려면 도서관을 먼저 둘러보라는 이야기가 있다. 정보사회의 획을 그은 빌 게이츠는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것은 조국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니고 내 고향 시애틀의 작은 도서관이다"고 고백했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아침마다 다른 세상을 기웃거리는 모든 창을 열게 만든 그는 여전히 "컴퓨터의 유용함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책이 없는 세상은 존재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도서관은 그런 곳이다. 도시의 품격을 더하는 장식품이 아니라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과 같은 존재가 바로 도서관이다. 그래서 도서관은 아주 오래전 인류가 문명을 일으키고 문화를 빗질하던 시기부터 행복을 만드는 공간으로 자리해 왔다.

 울산에도 시립도서관이 추진되고 있다. 이미 설계공모까지 마쳤다. 문제는 위치다. 울산시는 여천위생처리장과 울산대공원(3차) 부지, 남구문화원, 혁신도시 내 클러스터 부지, 진장초등학교 예정부지 등 5곳의후보지 가운데 여천위생처리장을 택했다. 부지가 시유지여서 예산이 적게들고 반경 2km 내 18개 학교와 주변 2.5km 내 16만명이 거주해 활용가능성이 우수하다는 점을 선정 이유로 내세웠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도심지 혐오 시설인 위생처리장을 이전시키고 문화교육시설인 시립도서관을 건립하는 것 자체가 공업도시에서 친환경문화도시로 변모한 울산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고 호들갑까지 떨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부자도시 울산이 도서관 건립에 예산타령을 한다. 주변인구가 많아 활용도가 높다는 건 또 무슨 소린가. 차라리 도심 한 가운데가 활용도는 더 나은 법이다. 이미지 변신이라니, 등성이 너머 빼곡한 석유화학공단에서 밤낮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오는 야릇한 화공약품 냄새에 화공학적 상상력이라도 배양하라는 의미인지 모를 일이다. 이미 설계 공모까지 마친 일을 어떻게 하느냐고 이야기 할지 모른다. 하지만 설계가 아니라 부지 정리를 했다하더라도 문제가 있다면 원점회귀해야 한다. 도서관이라는 곳이 어떤 의미인지 그 도서관에 무엇을 담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으면 건립의 의미는 없다. 문화시설이나 지식정보시설은 존재 이상의 이미를 가질 때 지역의 든든한 하드웨어로 자리할 수 있다. 산업수도 울산을 문화도시로 바꾸고 위기의 시대를 기회의 시대로 전환하는 힘은 다름 아닌 시민의 역량이다. 그 역량은 바로 책에서 나온다. 공단과 경계지점, 산업화와 생태환경의 교차점에 도서관을 만들어 이미지를 극대화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천박한 상상력이다. 그 경계지점에는 산업박물관의 입지로는 최적일지 모르지만 도서관은 아니다. 도서관은 상상력과 꿈의 그늘막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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