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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지식정보의 시장이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축적해서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곳이 도서관이다. 그래서 도서관을 지을 때는 무엇보다 개방성을 중시한다. 특히 세계 유수의 도시들은 도서관을 그 도시의 상징이자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시애틀의 중앙도서관, 네덜란드 델프트 도서관, 브라이언트 파크 옆의 고풍스러운 뉴욕 공립도서관 등 셀 수 없이 많은 시립도서관들이 그 도시의 이름에 걸맞은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장 최근에 지은 세종시의 국립도서관이 세계 10위의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이름을 올렸다. 황량한 세종시에 어머어마한 도서관을 지은 것은 미래를 내다본 생각이다. 국립세종도서관이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다기능적인 지역 국립도서관 역할을 갖고 있고, 무엇보다도 디자인 측면에서 펼쳐진 책을 형상화하여 시각적으로도 깊은 인상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무려 총사업비만 978억원을 들인 이 도서관은 600여만권을 보관할 서고가 있는 지방 유일의 국립도서관이다. 무엇보다 이 도서관의 자랑은 총 면적 307만㎡의 중앙녹지공간과 호수면적 32만㎡로 국내에서 가장 큰 세종호수공원 바로 옆에 자리했다는 점이다.

 공공도서관으로서 그 역할에 충실한 곳은 바로 서울도서관이다. 서울의 도서관이라면 남산에 솟아 있는 도서관을 생각하기 쉽지만 이미 서울은 시립도서관만 18개가 넘는다. 특히 서울시청 옆에 자리한 서울도서관은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활용해서 도서관을 이용하는 친화형 도서관으로 이름이 높다. 시청 인근에 시립도서관을 짓는 것은 바로 시청이 시민들의 접근성이 가장 좋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뉴욕을 다녀온 사람들은 이미 체험했겠지만 맨하튼의 중심에서 만나는 뉴요커들의 독서삼매경은 이채롭다. 바로 점심시간을 이용해 브라이언트 파크 곳곳에 자리한 책벌레들은 다름 아닌 공원 옆 시립도서관을 이용하는 직장인들이 대부분이다. 서울시가 시청 옆의 서울도서관을 개방형으로 공을 들이는 이유는 국제도시로서의 서울을 위한 밑그림을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울산도 이제 시립도서관을 가지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새로 들어설 울산시립도서관은 시민 옆에 있지 않다. 예산절감을 이유로 석유화학공단과 시가지의 경계지점인 여천위생처리장 부지에 들어선다. 울산이 대한민국 제1의 부자도시라고 하지만 정신의 황폐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오물을 처리하던 곳을 시립도서관으로 거듭나게 했다고 자랑하겠단다. 천박한 행정이다. 도서관이 도시의 심장이 되고 도시의 미래가 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울산이 어떤 곳인가. 대한민국 곳곳의 사람이 모여 오늘을 만든 도시다. 먹고 살기 위해 찾은 곳이 울산이지만 반세기가 지나면서 그들이 울산의  주인이 됐다. 한 때 뜨내기 도시라했고 공해백화점이라 불렸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어느 누구도 울산을 뜨내기 도시니, 공해백화점이니 따위로 비하하지 못한다. 반세기 전 울산을 찾아 온 이들과 그들의 2세들은 울산의 변화과정을 고스란히 목격했다. 보고 듣고 체험했으니 누구보다 울산을 잘 안다. 그래서 바로 이들은 타지에 나가는 순간, 자신들이 살고 있는 울산의 홍보대사가 된다.

 그 성장의 주역들, 오늘의 울산인들이 목말라 하는 것은 바로 교육과 문화다. 열악한 교육여건과 시립도서관 하나 없는 문화인프라에 울산 시민들은 고개를 떨군다. 소도시 경주에도, 김해조차 자신들의 랜드마크로 시립도서관에 정성을 들인다. 그런데 말이다. 울산은 그저 예산이 1순위다. 어디에 짓든 지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울산 하늘에 검은 연기가 가득해야 대한민국이 살아난다"는 시절의 문법이다. 영욕의 50년 동안 울산은 대한민국을 위해 엄청난 희생을 했다. 울산에 공장을 짓는 기업들은 마치 점령군처럼 '조국근대화'라는 완장으로 무장한 채 천혜의 해안을 개발의 삽질로 만신창이를 만들었다. 개발의 대가로 막대한 부를 창출한 기업은 '성장의 주역'이라는 이름으로 한층 더 개발의 속도를 냈고, 파고 부수고 허물어 공룡 같은 철제와 콘크리트의 성장탑을 쌓았다. 개발은 당당했고 오히려 국가에서 상을 주는 시대였다. 어디 그 뿐인가. 울산의 산하를 짓밟고 황폐화한 주역들은 국가경제의 일등공신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까지 받았다. 성장의 공을 부인하자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성장과 함께 도시의 오래된 가치를 살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를 만들어야 하지만 그 부분은 언제나 뒷주머니에 감춰졌다. 이젠 그럴 때가 아니다. 제대로 된 미래를 위해 오늘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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