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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런던의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인 프라도 미술관은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다. 그곳에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크로노스)'라는 그림이 걸려 있다. 고야가 그린 이 그림은 유혈이 낭자한 크로노스가 아들을 두 손에 잡고 뜯어 먹는 장면이다. 이 그림이 상징하는 것은 '시간이 만물을 집어 삼킨다'는 시간의 유혈성을 의미한다.

 신화 속 이야기는 이렇다.
태초의 혼돈이 어둠 속에서 대지를 낳고 그리하여 하늘이 생겨나고 하늘은 대지를 뒤덮고, 하늘의 신 우라노스(Uranus)가 대지의 신 가이아(Gaca)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들 사이에서 생겨난 자식들이 바로 티탄(Titan)이라는 거인들이다. 많은 아이를 낳게 한 남편이 불만이었던 가이아는 아들들에게 남편에게서 벗어나도록 도움을 청하지만 모두 거절하고 막내인 크로노스(Cronos)만이 청을 들어준다.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크로노스)', 프란시스코 데 고야 作, 1819~1823년,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스페인)

 남편 몰래 크로노스에게 낫을 쥐어 준 가이아는 남편이 본인을 덮쳐올 때를 기다렸고 가이아를 덮치는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크로노스는 거세해 버린다. 거세된 우라노스의 생식기에서 흘러나온 피는 대지로 흐르고 흘러 시간이 된다. 크로노스는 그 후 결혼을 하지만 자식들이 자신과 같은 철륜을 저버리는 운명이 될까 두려워 태어난 아이들을 삼켜버린다. 신화는 '자식을 삼키는 아버지'의 잔인한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죽어야 하는 운명에 주목하게 한다. 여기서 아버지는 과거, 아들은 현재의 상징임을 알 수 있다. 과거는 자신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하고 현재 또한 과거가 자신을 막아 현재일 수 없게 함을 두려워한다. 이렇듯 시간은 무자비하다. 현재는 과거가 되고 과거는 사라지고 만다. 아버지의 시대가 사라지고 아들의 시대가 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아들이 아버지가 되고 아들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운명을 맞게 된다. '아들이 제 아비를 죽이고 권력을 찬탈하게 될 운명'이라는 신탁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17세기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가 그린 '아들을 먹어 치우는 사투르누스(Saturn Devouring His Son)'(1636)에서 영감을 받은 이 그림은 늙고 추한, 광기에 사로잡힌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또 일부는 화면에서 잘려져 표현되어 이와 같은 구도로 인해 고야의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크로노스)'는 그림을 보는 관람자에게 마치 사투르누스(크로노스)가 아들을 잡아먹고 있는 순간을 포착한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루벤스가 사투르누스(크로노스)보다 기겁에 질린 아이의 표정을 집중적으로 표현했다면, 고야는 자신의 행위를 인식하지 못하는 광기와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사투르누스(크로노스)에 초점을 맞추어 그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바로크 풍의 루벤스 그림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고야 그림은 크로노스의 시간을 통해 인간은 자신이 사라지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체념하고 절망할 필요 없다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 바로 이 순간의 황홀감을 즐기라고 말하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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