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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 공부가 한창일 때 '하잠리'를 만났다. 물 아래로 잠길 마을이라는 뜻이 아닌가. 조상의 예언성 땅이름 짓기에 무릎을 쳤다. 그러나 '하잠리(下潛理)'가 아니라 '하잠리(荷岑理)'였다. 언양읍 반천에서 하잠리로 가는 길옆으로 댐이 있고, 댐이 만들어내는 풍광이 빼어나 드라이브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남들은 여유를 부려야 다닐 수 있는 그 길을, 삼 년을 내리 아침저녁으로 다녔다. 댐이 생기고 마을이 물에 잠겨버렸는데, 남아 있는 마을에 손바닥만 한 학교가 있었고 그 학교에 발령을 받은 것이다.

 꽃비가 내린다는 유행가 가사를 듣고 국어사전에도 없는 꽃비는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 한 적이 있었는데 그 길에서 꽃비를 만났다.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대기업 총수의 별장이 길목에 있고, 별장 식구들이 길가에 벚나무를 심어 꽃길을 만들었다. 비가 오는 퇴근 길, 바람까지 봄날답지 않게 매섭게 불어 길섶에서 화사함을 뽐내던 꽃잎이 비바람에 흩날리며 한꺼번에 지는 것이었다. 절정의 봄날을 위한 벚꽃들의 순교, 아! 저게 바로 꽃비로구나. 감정 표현이 서투르고 더딘 내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봄날만 아름다운 게 아니었다. 제 목소리에 겨워 자지러지던 푸르름도, 그리움에 물이 들어 시난고난 앓아대던 가을 산도 또 다른 멋이었지만 수면을 도배하며 수심에 잠긴 겨울 산은 한 폭의 수채화였다. 국토 개발에 힘쓰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출퇴근을 했다. 댐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이런 출퇴근은 상상도 할 수 없지 않는가.

 그러나 그 생각은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동네잔치를 우연히 보면서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다. 수몰로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지게 된 주민들이 한자리에 다시 모여 여는 잔치였다.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던 주민들은 뿔뿔이 헤어져 손에 익지 않은 일을 하며 타향살이의 고달픔을 겪어야 했다. 땅을 내주고 받은 보상금을 탕진해버려 아주 어렵게 사는 이들도 있었다. 이미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이주민들은 훌쩍 커버려 손밖에 나버린 자식 농사부터 옛날 소 먹이던 얘기까지, 주고받는 술잔에 담아 마시고 또 마셨다. 그리고는 남아 있는 고향 마을을 둘러보는 것으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그 뒤, 댐을 둘러싸고 있는 산으로 아이들과 함께 등산을 했다. 산 중턱까지 논이 이어졌고, 가파른 산비탈에도 밭이 있었는데 모두 묵정밭이었다. 자식과도 다름없는 논밭을 두고 돌아서야만 했던 농민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인터넷의 내 아이디(ID)는 '귀실(kuisil)' 이다. 귀실은 고향 마을 이름이기도 하고 언젠가는 고향 마을로 돌아갈 것이라는 소박한 의지가 담겨 있기도 하다. 귀실은 산봉우리에서 우리 마을을 내려다보면 부처님의 크고 긴 귀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귀실'에다 길 영(永)자를 덧붙여 '영귀실'이 실제 이름인데 겹홀소리 내기가 귀찮아서 그냥 '영구실'이라 부른다. 따지고 보면 공간보다 시간 개념이 더 강한 '길 영'자가 있을 자리는 아니다. 거기다가 일제 강점기  때 토박이말을 한자말로 고치면서 '영구실'이 '영대리'가 되어버렸다. 길 영(永)에 클 대(大). 길고 크다는 뜻만 남고 부처님의 귀는 온 데 간 데 없어 마을 이름이 영 마음에 차지 않아 당장이라도 뜯어고치고 싶지만 그것만 빼고 나면 나무랄 데 없는 고향 마을이다.

 평상에 누워 헤아리던 별과, 그 별들 사이로 밤하늘을 할퀴며 지나가던 별똥별들. 자욱한 안개 속으로 돌아나간 개천에서 빨래하시던 어머니와 키를 훌쩍 넘긴 나뭇짐 지게에 파묻힌 채 묵묵히 걸어오시던 아버지의 여윈 모습. 고추가 널린 멍석 위로 날아다니던 잠자리 떼. 언 손에 입김을 호호 불어넣으며 얼음 지치던 작은 호수들은 내게 어떤 소설이나 명화보다도 정서적으로 풍요로움을 주는 추억의 삽화들이다.

 술자리에서 가끔 고향 마을이 화제로 떠오르는데 내남없이 고향은 인심 좋고 경치가 빼어난 곳이다. 그런데 집안 대소사로 친구의 고향 마을을 찾아 들어서면 실망스럽게 짝이 없다. 친구들이 없는 이야기를 지어서 했단 말일까?

 '넓은 벌 동쪽 끝으로'로 시작되는 정지용 시인의 '향수'를 조용히 음미해 본다. 귀향의 꿈이 너무 간절하여 시인의 고향은 좀 특별하게 보인다. 그러나 깔끔한 시어들을 사용하여 시인의 고향 마을이 세련돼 보이고,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인간의 근원적 정서를 너무나 잘 표출하여 우리의 감정이 객관적일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고향 마을도 마찬가지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므로 애틋한 그리움은 더할 수밖에 없고, 지나간 것은 조금씩 윤색되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나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있고, 돌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한데, 그들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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