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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고래 해체작업이 이뤄진 1970년대 장생포항은 온통 잔치 분위기에 포구가 들썩였다.

지금은 행정구역상 야음장생포동이지만 본래 이곳은 경상남도 울산군 현남면 지역으로 장승개 또는 장생포라 했다. 훨씬 이전인 조선 태종 7년에는 이 일대에 수군만호진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14년에 시행된 전국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울산군 대현면(大峴面) 장생포리가 됐다. 1962년 울산시에 편입되면서 장생포동으로 개칭돼 행정동인 장생포동 관할이 됐다. 1998년 야음1·장생포동에 들어갔으며, 2007년 야음장생포동 관할로 바뀌었다.

 장생포는 지리적으로 울산광역시 남구의 동북부에 있으며, 동쪽과 남쪽은 울산만에 닿아 있고 매암동, 용잠동 및 고사동과 이웃한다. 동해남부선과 울산항선의 종착지로, 장생포역과 울산항역이 있으며, 동해안까지 뻗은 장생포로(長生浦路)가 31번국도 및 부두로(埠頭路)와 연결된다.

 장생포는 고래를 빼고 이야기가 안되는 곳이다. 구한말인 지난 1891년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 2세가 일본으로 가다 장생포 앞바다에서 큰 고래 떼를 발견한 것이 근대 포경의 역사라 기록되고 있지만 장생포와 고래의 인연은 지명에서 보듯 훨씬 오래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리적으로 보면 7,000년 전, 이 땅의 사람들이 반구대에 남긴 고래 암각화는 어쩌면 고래 생태백과사전인지도 모르고 고래 숭배의 제단쯤으로 신성시했던 상징이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반구대 물길이 동해와 맞닿는 지점에 장생포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 상징이 현실이 된 고래가 바로 귀신고래다. 귀신고래(Korea Gray Whale). 이름에 대한민국을 뜻하는 '코리아'가 들어 있는 가슴벅찬 고래다. 길이가 무려 20m, 몸무게는 14~35t에 달한다. 대형 잠수함 같은 거구가 동해바다를 뚫고 치솟는 장관은 압권이다. 바로 그 바다, 귀신고래가 하늘로 웅비하던 그곳이 고래바다다.

1899년 러시아의 고래 해체기지로 시작
1960년 한국공업심장·교통요충지 발전
반구대 암각화 가치 알려지며 다시 주목

고래 해체 장면.
 고래바다라는 과거 경해(鯨海)로 불렸다. 하지만 러시아를 선두로 경해를 탐내던 열강들은 한세기에 걸쳐 무자비한 귀신고래 사냥에 나섰다. 결과는 참혹했다. 기록에 따르면 1912년 한해 동안 귀신고래는 무려 188마리가 작살과 포탄에 맞아 육지로 끌려왔다. 남획의 결과는 씨를 말렸고, 50년 전 마지막으로 두 마리의 귀신고래를 작살로 찔러죽인 것이 인간에 의한 마지막 도륙이었다. 씨가 마른 귀신고래는 더 이상 이 바다를 찾지 않았다.

 작살을 거두고 흠모의 눈빛으로 망망대해를 쫓는 인간에게 귀신고래는 더 이상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고도성장으로 고래고기 살점을 더 이상 탐내지 않아도 먹고 살만하던 시절, 제6진양호가 마지막포경 허가를 받아 동해를 달리던 1977년, 귀신고래 두 마리가 동해바다 어디쯤 포효했다고 전해지지만 더 이상 '~카더라'도 사라지고 있다.
 

장생포는 1899년 러시아가 태평양 연안에서 잡은 고래를 해체하는 포경기지를 세우면서 고래잡이의 전진기지가 됐다. 하지만 고래를 싹쓸이 한 것은 일제였다. 일본인이 세운 동양포경주식회사는 동해의 끝 함경북도 경흥부터 제주까지 포경기지를 갖췄고 그 중심을 장생포로 했다. 지금 장생포에 동상으로 남아 있는 미국 탐험가 로이 채프만 앤드루스(1884~1960)가 귀신고래를 연구한 것도 일제의 동양포경주식회사 장생포 기지였다. 그는 동해바다에 출현하는 귀신고래에 대해 조사했고 우리의 귀신고래가 캘리포니아 Gray Whale과 회유로가 다른 고래인 사실을 밝혀내고 KOREA란 이름을 선물했다.

 이 땅의 사람들이 근대 포경업에 뛰어든 것은 광복 후 일제에 밀린 임금 대신 목선을 2척 받으면서부터다. 1960년대를 지나 철선이 건조되고 일본 수출길이 열리면서 1975년부터 10년간 장생포는 황금기를 맞았다. 바로 이같은 역사 때문에 장생포는 또 한번 대한민국 근대화의 주인공이 된다. 포경 기지라는 특수성 때문에 동해의 중요 거점지역이 된 장생포는 도로와 철도가 이곳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울산의 도로는 1904~1920년에 걸쳐 울산·부산, 경주 등 간선도로와 장생포, 방어진, 언양, 남창을 경유해 해운대에 이르는 도로가 개설되면서 발달했다. 철도는 한국전쟁 이후 산업선이 건설되면서 '장생포선'이 개통됐다. 1960년부터 화물운송에 있어서 장생포역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장생포는 단순 포경기지의 기능뿐만 아니라 공업 발달과 교통의 요지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장생포는 공업단지를 조성하기에 최적의 입지 조건이었다.

 박정희 군사정부는 1962년 울산지구를 특정공업지구로 결정하고 장생포동 납도(현 ㈜동양나이론 공장부지 안)에서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을 거행했다. 당시 박정희 의장은 장생포에서 울산공업지구 설정 선언문을 낭독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천함에 있어서 종합제철공장, 비료공장, 정유공장, 기타 관련 산업을 건설하기 위해 경상남도 울산군 울산읍, 방어진읍, 대현면, 하상면, 청량면 두왕리, 범서면 무거리 다운리, 농소면 화봉리 송정리를 울산공업지구로 설정함을 이에 선언합니다. 1962년 2월 3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육군 대장 박정희."

장생포에는 고래를 테마로 한 다양한 시설이 있다.
 선언문 낭독이 끝나자 본격적인 공사 시작을 알리는 발파가 진행됐다. 굉음이 지축을 울렸다. 그 굉음과 함께 포경 전진기지 장생포는 대한민국 공업입국의 전진기지로 또다시 변신하게 된다. 공업화와 포경금지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장생포는 도시도 아닌, 그렇다고 과거 고래로 흥청했던 어촌도 아닌 기형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장생포가 다시 한 번 고래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반구대암각화의 가치가 세상에 알려질 시점과 거의 일치했다. 울산이 대한민국 공업입국의 전진기지이기도 하지만 만년쯤 전, 한반도 인류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오래고 먼 선사문화 보고임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반구대에 새겨져 있던 고래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장생포는 고래특구의 명성을 찾았다. 고래박물관과 고래연구소 등 고래 관련시설이 잇달아 들어섰고 전국의 관광객이 고래의 꿈을 꾸며 장생포로 향하고 있다.

박물관·체험관·크루즈 즐기는 고래특구
해마다 30만여 국내외 관광객 불러모아
도로개선·상품 개발 등 인프라 확충해야
 
고래특구를 찾은 관광객은 연간 3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지난해 통계로 고래박물관 11만 2,787명, 고래생태체험관 16만 2,395명, 고래바다여행 크루즈선 1만 2,639명 등이 다녀갔다. 이들 시설의 운영 수입은 10억 원 가량 된다. 고래축제와 고래관련 인프라로 장생포는 이제 고래의 등가어가 됐다. 덕분에 고래는 울산의 대표 관광상품이 돼 있다. 하지만 정작 장생포로 가는 길은 고단하다. 좁고 불편한 길에 화물차가 수시로 공포감을 준다. 전국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고래특구이지만 현실은 그렇다.

 고래를 보러온 관광객들이 장생포를 거쳐 울기등대와 극경회유해면을 돌아 올 때 제대로 정돈된 도로가 있다면 관광 만족도를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와함께 육로 관광과 연계한 실물 고래체험 등 내실화된 관광상품을 만든다면 우리나라 해양관광 자원으로 각광받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고래박물관은 지난 2005년 5월 문을 열었다. 포경 금지된 이래 사라져 가는 포경 유물을 수집·보존·전시하고 고래와 관련된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교육 연구를 위한 체험 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 전시관은 총 4층으로 고래의 생태와 진화, 고래 회유도, 고래의 생태적 특징, 고래 뱃속 모형, 고래의 종류와 반구대 암각화 관련 영상물, 고래 두골 코너 등을 꾸며 놓았다. 또 포경역사관에서는 브라이드고래·범고래의 골격, 반구대 암각화 실물 재현 모형을 볼 수 있고 한국과 세계의 포경 역사가 전시돼 있다.

고래의 날 선언비가 세워져 있는 장생포 고래생테체험장.

 특히 귀신고래의 여러 가지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신고래 소리 체험관에는 어린이들에게 귀신고래의 상식을 전달해 주는 매직비전, 각국에 나타난 귀신고래의 영상을 볼 수 있는 귀신고래 전문관, 귀신고래 두골, 귀신고래 먹이 섭취 과정과 실물모형도 설치돼 있다. 박물관 옆에는 고래생태체험관이 있다. 수족관에 살고 있는 돌고래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고래생테체험관 뒤로는 국내 최초의 고래관경선인 고래바다여행선이 바다를 누비고 있다. 지금도 울산 앞바다인 고래바다에서는 밍크고래를 비롯해 참돌고래, 상괭이 등이 수시로 발견되고 있다. 고래 꿈을 꾸고 관경선을 탄 관광객이라면 수천여 마리의 돌고래떼가 힘차게 유영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행운도 누릴 수 있는 현재진행형의 고래관광이 울산 장생포에서는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편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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