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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국을 끓이려고 감자 상자에 손을 넣어보니 여름에 샀던 감자 한 상자를 그새 다 먹어 바닥이 보이기 시작한다. 쌀독에 쌀이 떨어져 바닥 긁는 소리가 나는 것처럼 마음이 순간 서늘해진다.
 감자를 유별나게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을에 쌀가마를 들여놓고 겨울에 김장을 담가 쟁여놓아야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처럼, 감자 철엔 커다란 감자 상자를 사두어야 좀 넉넉한 기분이 든다. 친정어머니는 여분의 밥이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고, 꼭 식구 수보다 밥을 많이 지어 남은 밥을 커다란 사발에 담아 시렁에 얹어두곤 하셨다. 왜 굳이 찬밥을 남겨두느냐고 지청구를 하면, 어려서 배를 곯고 자라서인지 밥이 남아 있어야 푸근하고 푼푼하다고 하셨다.


 먹을 것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는 것이 대물림인지, 가난했지만 끼니 걱정을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도 뭔가 먹거리에 대한 저장 본능이 있는 편이고, 특히 감자는 나중에 싹이 나고 껍질이 쭈글쭈글해져서 처치가 곤란하게 되더라도 번번이 상자로 사놓곤 한다.
 끼니 걱정을 할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대개의 가정에서는 쌀을 아끼기 위해 밥에 무언가를 두어먹곤 했는데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무, 콩나물, 시래기 같은 것을 밥 지을 때 같이 넣어 무밥, 콩나물밥, 시래기밥을 짓는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먹었던 게 감자밥이었다. 감자가 나오는 여름철이면 쌀이나 보리보다 감자가 더 많이 들어간 말 그대로 '감자'밥을 먹곤 했다. 어디 밥뿐인가. 삶고 찌고 부치고 볶고 조리고, 감자 몇 알이면 밥상 그득 반찬이 차려지는 것이다. 특히 아궁이에 묻어두었다 먹는 구운 감자 맛은 일품이었다. 다루기 어려운 난감한 문제를 '뜨거운 감자'라고 하는데, 구운 감자는 손이 뜨거워 이리저리 굴려가며 먹어야 제 맛이다. 겨울에 군고구마는 팔아도 군감자는 잘 팔지 않으니  포근포근하고 구수한 그 맛을 이제는 맛보기 어렵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시도 감자에 관한 것이다. '할머니가 보내셨구나/  이 많은 감자를/ 아, 참 알이 굵기도 하다/ 아버지 주먹만이나 하구나/ 올 같은 가물에/ 어쩜 이런 감자가 됐을까?/ 할머니는 무슨 재주일까?/ 화롯불에 감자를 구우면/ 할머니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이 저녁 할머니는/ 무엇을 하고 계실까?/ 머리털이 허연/ 우리 할머니/ 할머니가 보내주신 감자는/ 구워도 먹고 쪄도 먹고/ 간장에 조려/ 두고두고 밑반찬으로 하기도 했다' 오학년인 때인가, 육학년 때인가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감자'라는 시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장만영 시인의 시라고 한다. 초등학교 때 시가 아직도 고스란히 기억에 나는 걸 보니 이 시가 주는 느낌이 평범하면서도(사실 소재나 주제는 매우 흔한 편이다.) 강렬했던 것 같다.( 이 시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구수한 감자 냄새와 폭신폭신한 감자의 식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만큼 감자는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원초적인 그리움을 품고 있는 것이다.


 감자는 맛뿐 아니라 수확하는 기쁨도 각별하다. 감자 줄기가 누렇게 변하고 시들해지는 유월 말이 되면 텃밭의 감자를 캔다. 포슬포슬한 흙 아래 둥근 감자들이 몸을 드러내면 매년 하는 일인데도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는 것이다. 이랑마다 감자를 캐놓고 햇볕에 얼마간 말린 뒤 자루에 담아 거두어들인다. 그런데 감자 수확의 진미는 일단 수확을 끝낸 뒤 미처 캐내지 못한 나머지 감자를 흙을 샅샅이 뒤져 캐내는 일이다. 두 번째 캐내는 감자는 대개 알이 잘고 볼 품 없는 경우가 많지만 어쩌다 크고 실한 놈도 숨어있는 법이어서, 그럴 땐 처음 캐낼 때보다 더 의기양양하고 뿌듯하기까지 했다.
 감자는 남아메리카 안데스 고원이 원산지인데, 16세기에 탐험가 피사로에 의해 유럽에 전해졌다. 울퉁불퉁하고 못생겨서 처음엔 '악마의 선물'이라고 불리며 가난한 사람들도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감자를 보급하려고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드레스에 감자꽃을 꽂고 다녔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하지만 감자가 널리 퍼지고 사람들이 즐겨 먹게 되면서 '신이 내린 선물'로 이미지가 바뀌게 된다. 고흐의 유명한 그림 '감자 먹는 사람들'을 보면 어두컴컴한 램프 불 아래서 엄숙하게 식사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은 거친 손과 초라한 행색이지만 신중하게 감자를 썰고 차를 따른다. '신이 내린 선물'을 경건하게 온 몸과 마음으로 음미하는 모습이다.


 사실 감자는 별을 닮았다. 토성의 위성 히페리온은 울퉁불퉁한 게 꼭 감자 모양이다. 감자꽃의 모양도 다섯 부분이 뾰족하게 튀어나온 게 우리가 그리는 별 모양과 흡사하다. 그 성품이며 생김새에 가난한 사람들을 거두는 신의 섭리가 느껴지는 것이다.
 아마 얼마 안 있어 감자 상자가 바닥을 드러내면, 제발 먹을 만큼만 사자는 남편의 말을 어기고 나는 또 감자를 상자 째 사들일 것 같다. 상자에 가득 든 둥근 감자를 만지면서, 주먹만 한 감자알이 손 안에 뿌듯이 들어차듯이 뿌듯한 풍요로움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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