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일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변함없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하고 실행하는 것을 반복한다. 그렇다고 해서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결과에 두렵고 불안하기도 하다. 나에게도 닥쳐올지 모르는 시련이나 질병 등을 걱정하기도 하고 언젠가는 맞이해야 하는 죽음을 생각해 본 적도 있을 것이다. 죽음 앞에 선다면 인간은 나약하기 그지없는 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인간이 완전한 존재가 아닌 이상 우리가 안고 있는 이 두려움과 불안이란 감정은 인간에게는 필연적인 감정일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이것을 회화로 풀어내는 작가가 있다.
 '인간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불안과 그로 인해 비롯되는 불안감'이라는 주제로 최근 한창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는 대구 출신의 박보정 작가다.

 


 현재를 살고 있는 불안한 자신의 상태, 그러한 자신과 타인의 관계성, 인간이 만들어 낸 얽키고 설킨 불안한 테두리, 왠지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늘 떠돌아 다녀야만 할 것 같은 자신을 화면에 담고 싶고, 그것을 표현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안감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싶다는 것이 현재 그녀가 작업에 몰두하는 이유이며 바람이다.
 작품 'Here-11'을 보면 둥근 용기 안에 사람들의 흉상이 가득한데, 흉상을 담고 있는 둥근 용기는 불멸하지 못하고 결국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없는 인간의 생명을 의미한다. 최근의 작업에서 항상 등장하는 이 흉상의 형태는 얼핏 보면 석고상 같기도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표정이나 생김새에서 승려나 부처의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다. 불안한 감정은 미소를 띤 표정의 역설적 표현으로 해소되고, 작품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붉은색의 형태는 불안정한 미래에 대해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부적 같은 역할을 하면서 비로소 완전해진다. 작품속에서 드러나는 불교적 믿음과 한국전통사상인 샤머니즘적 요소, 그리고 작가가 오래전부터 연구해 온 여백사상이 작품의 정체성을 증명해준다.

 

▲ 박보정 作 'Here-11' Canvas On Acrylic, 2013

 작가가 연구해 온 여백은 동양의 빈 공간에서 찾는 아름다움의 의식이라는 관념과도 닮아 있지만, 화면에서 형상과 팽팽한 대립을 이루는 장면을 포착해 그 곳에 있어야 할 형상과 남겨져야 할 여백이라는 필연적인 공간의 composition을 만드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제작과정은 먼저 연필로 스케치를 하고 그 스케치 위에 녹색계열의 아크릴 물감을 다시 덮는다. 그리고 여러 계열의 파스텔 톤으로 농담을 잘 조절해가면서 녹색선과 면을 지우기도 하고 남기기도 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물감은 여러 번 발라 두텁게 하는데 그것은 희미한 이미지를 강조하기도 하고 흰색 톤에 변화를 주기 위해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또한 작가는 화면상에서 필력과 농담표현을 위해 캔버스 위에 동양화붓을 사용하는 섬세함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몇 가지 색으로 물감을 흘리는 기법으로 화면을 정리하는데, 이 표현방법은 자연속에서 작가가 가장 좋아하고 최고의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 바로 '비(rain)'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가 온 뒤의 세상은 먼지가 모두 씻겨져 나가 투명해진다. 박보정 작가 또한 작업이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모두 쏟아내고, 그렇게 완성되어진 작품속에서 감정이나 격정을 겪고 난 후의 본질적인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작가의 바람은 작품을 통해 착실하게 실현되어져 가고 있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