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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유권자의 상당수가 아직 지지할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선관위나 정치분석가들은 이번 선거가 역대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할 정도로 '재미없는 선거'가 '재미없이' 치러지고 있다. 안정과 견제라는 대결구도는 견제의 주체가 다원화되는 이합집산의 정치판 때문에 이미 불분명해졌고 그나마 신선한 바람을 기대했던 '개혁공천'도 슬그머니 이해타산의 뒷주머니를 챙기는 바람에 시들해진 상태다. 문제는 정치라는 것이, 아니 선거라는 것이 이미 유권자들에게 관심거리가 아니라는데 있다. 선거에 나선 후보들이야 저마다 '당선'을 확신하며 거리에서 시장에서 행사장에서 '탁월한 선택'을 호소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읽는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유권자들이 후보자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할 때에 그에 대한 장황한 기록 등을 보는 것이 아니라 '0.3 초' 내에 그 사람의 얼굴 인상에서 풍기는 느낌을 평가하여 누구를 찍을지를 선택한다. 그 사람 얼굴을 본지 0.3초 이내에 이미 선호도가 결정이 나고, 그 이후의 정보 등은 별로 소용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카네만 교수의 인지심리학에 근거를 둔 이 연구결과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카네만 교수 등 인지심리학자들이 이미 이전에 밝혀낸 인간 인지의 원리가 선거 후보 선택에서 그대로 적용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간은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모든 자료를 종합하여 논리적으로 판단하는, 즉 알고리즘적으로 판단하는 이성적 동물이 아니라, 가능한 한 노력을 적게 하면서 빨리 판단하는, 검약한 휴리스틱스적 인지전략을 사용하는 실용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선거에서 누구를 찍을 것인가의 후보를 선택할 때에는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성적 자료로 결정을 하는 '0.3초'의 심리학이 더욱 효과를 발휘한다. 후보자들이 공약보다 거리에 나가 포옹하고 악수하고 때로는 눈물을 보이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유권자의 '0.3초'와 함께 선거에 나선 후보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은 바로 '착각심리'다. 선거가 시작되면 후보자들은 자신이 가장 적임자라는 환상에 점차 빠진다. 여러 정보 중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수집하고 신뢰하는 편향의 심리 때문이다. 웃으며 악수해 주는 모든 사람, 격려의 말을 건네 오는 모든 사람이 투표 당일 자신을 선택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진다. 환상에 빠진 후보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역량에 대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해 공약이나 정책적 측면에서의 미비점을 보완하려는 노력보다는 선정적인 홍보, 상대 후보 비방, 근거 없는 루머를 퍼뜨리는 정치적 공작에 치중한다. 특히 비방이나 부정적인 루머는 상대 후보자뿐 아니라 유권자까지 여기에 주의를 집중하게 해 공약이나 정책적 측면을 간과하게 만든다.


 유권자들도 후보자 못지않게 '착각심리'에 빠지기 쉽다. '0.3초'의 판단은 지극히 감정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어서 언제나 변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한번 인지한 감정적 정보는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지난 대선 때 인천공항에 나타난 김경준의 경우 '여유 있는 미소'가 TV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각인됐는지는 이미 여러 여론조사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불과 몇 초에 지나지 않는 화면속의 모습이 김경준을 둘러싼 다양한 이성적 정보를 마비시킨 채 인상에서 비롯된 정보가 그에 대한 판단까지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사례다. 유권자들이 특정후보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진 경우 그에 대한 불리한 정보에는 가능한 귀를 닫고 유리한 정보만 취하려는 경향도 김경준의 경우에서 잘 드러난다.


 문제는 후보자들의 착각이나 유권자들의 '0.3초' 심리가 아니라 정치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이다. 재미없는 정치, 재미없는 선거는 그대로 재미없는 세상살이로 이어진다. 역으로 말하면 세상사가 재미없는 판이니 정치가, 선거가 재미있을 리 없다. 그러다보니 만물이 제 색깔의 옷을 입고 손짓하는 나들이를 꿈꿀지언정 투표장에는 갈 생각을 하지 않는 유권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재미없는 세상 그나마 하루 꿀맛 같은 휴일을 챙겼으니 '재미' 찾으러 나들이나 간다는 식이다. 흔히 정치냉소주의는 그러나 정치에 대한 '싸늘한 미소'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싸늘해지는 전이현상을 낳는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의 무관심과 냉소로 국회를 장악한 정치인들이 우리의 일상과 우리의 관계를 옭아매는 법과 제도를 마음대로 주물러 어느새 우리 위에 군림해 버린다. '아차' 하는 사이 우리의 냉소는 그렇게 옷을 갈아입고 우리를 향해 비웃음을 던지지만 그 사실을 깨닫게 되면 이미 돌이킬 방법이 없다. 그래서 정말 투표장에 가고 싶지 않은 선거판이지만 그래도 아침 일찍 나들이 채비를 끝내고 투표장부터 찾아가야 한다. '아차' 하는 후회로 또다시 냉소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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