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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걸작이라는 혁신도시가 울산에서 암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지방분권의 단초이자 하드웨어적인 국가혁신이라는 노무현의 전망과 달리 기형화되고 있는 혁신도시는 무엇보다 준비되지 않은 이전과 개발주체인 LH의 부도덕성이 혁신의 아이콘에 암세포를 이식한 꼴이 됐다. 허허벌판을 부가가치가 높은 땅으로 바꾸고 번듯한 건물을 올리는 비주얼은 성공했지만 쫓겨난 이주민들의 한과 분칠만 그럴듯하게 해놓은 외형의 그늘에서 비집고 나오는 부실의 그림자는 지방분권의 단초는커녕 지방에 골칫덩이만 하나 더 박아놓은 결과가 되고 있다.

 국가가 개발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한 명분이지만 부실한데다 부도덕하기까지 한 LH가 개발의 주체가 되다보니 만만한 지역민과 지자체를 무시한 채 한탕 벌여 크게 먹고 보자는 식이 여기저기서 신음처럼 터져 나오는 꼴이다. 실제로 LH가 울산혁신도시에서 벌어들인 수익이 3,200여억 원 수준이라고 한다. 시의회는 수익의 지역 환원차원에서 하자보수예치금을 남겨두고 공공시설 건립 등으로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먹고 튀는데 이력이 난 LH가 이를 수용할 리 만무하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울산혁신도시를 계획할 무렵 노무현 정부는 지방분권을 전면에 내세웠다. 세종시 건설로 수도를 이전하고 수도권에 집중된 정부산하 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면 지방과 수도권의 양극화는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라는 청사진이었다. 솔깃한 인사들이 거수기가 됐고 기존 질서에 반기를 든 좌파 진보진영이 깃발을 흔들었다. 수도이전은 헌법재판소까지 가는 우여곡절로 도로 서울이 됐지만 혁신의 이름이 붉은 빛으로 펄럭이는 공공기관 이전은 보상도 진행 중이고 밑그림도 나와 어쩔 수 없다며 강행했다. 부실한 땅장사에 곳간이 털린 LH는 만회의 기회를 날릴까 조바심을 냈지만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혁신이 혁신이 되려면 사람의 생각이 달라져야 하는데 아뿔싸 머리카락을 자른다고 머릿속이 바뀌지 않는 법, 건물은 통째로 옮겼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수도권이었다.

 울산혁신도시에 들어서는 10개 공공기관 가운데 지금까지 이전이 완료된 곳은 7개 기관이다. 모두 3,142명의 직원이 울산에서 근무하게 될 울산혁신도시는 줄잡아 1만5,000여명이 새로 울산시민에 편입되고 산하 유관기관이나 업체의 이주효과까지 보면 2만 명 이상의 인구유입이 예상된다. 하지만 착각은 자유다. 현재까지 혁신도시 공공기관의  가족 이주율을 보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울산 직원 424명 중 27명(6%), 근로복지공단은 총 400명 중 40명(10%), 고용노동부 고객상담센터는 총 45명 중 5명(11%), 한국산업인력공단은 415명 중 70명(17%) 정도다. 좀 많이 이주했다는 한국석유공사는 총 832명 중 292명(35%), 한국동서발전은 총 270명 중 88명(33%)이다. 이주하지 않은 직원들은 나름대로 할 말이 있다. 지역별 순환근무를 하는 기관의 특성상 굳이 울산에 가족 모두가 올 일이 없다는 것이 첫째다. 일부 직원들은 "잘난 정치인 때문에 우리만 골탕을 먹고 있다"며 푸념까지 한다. 교육이나 의료 등 낙후된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이주하라는 요구는 지나치다는 주장도 있다.

 예상했던 일이다. 울산시민들 조차 스스로 울산의 도시 인프라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고 자평하는 마당에 수도권에서 아이들은 키우던 '서울사람'들이 울산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결정이 아니다. 문제는 이미 예견된 일이고 문제를 알면서도 대책을 강구하지 않았던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정책이다. 결국 올해 울산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울산혁신도시는 최대 쟁점이 됐다. 결의문도 채택하고 현장도 방문했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다. 그저 갑질에 이력이 난 LH만 쳐다보며 답을 기다릴 뿐이다. 전체 공정률 98%라니 끝난 공사다. 설계오류나 각종 시설물들의 부실·불량시공은 시간만 때우면 잠잠해지고 버티다 떠나면 그뿐이다. 단적인 예로 폭우가 내리면 빗물을 통제하는 저류조설치 같은 기본적인 시설도 배짱을 내미는 LH의 갑질 때문에 애꿎은 중구청이 약사천과 복산천, 유곡천 등 3개 하천 상류지역에 저류조를 건설하고 있다. 그린벨트와 임야였던 땅을 불도저로 밀고 가치없는 땅으로 평가한 공시지가를 근거로 헐값의 보상비를 쥐어준 채 대충 그럴듯하게 신도시를 포장한 LH의 혁신도시는 정부의 뒷배를 믿고 큰소리치며 땅장사에 성공한 현대판 '봉이 김선달'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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