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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최근 '찌라시' 파문으로 혐한 언론의 대명사인 산케이가 신이 났다. "그래, 그 봐라, 십상시가 활개를 치는게 한국정치 아니냐"는 식이다. 왜놈 언론이 신이 나듯 왜놈말인 찌라시가 활개를 치는 순간, 이 말을 표준어처럼 사용하는 스스로가 부끄럽지만 언어는 전달의 도구라는 보편성 앞에 '전단지'라는 우리말이 무릎을 꿇었다. 정보 과잉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매일같이 찌라시와 마주한다. 사실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관점과 사각에 따라 다른 모습을 가진 진실이 사방에서 튀어나온다. "60%는 사실에 근거한다"는 한마디가 위력을 발휘하고 "할 말은 많지만 참겠다"는 인내는 웃음거리가 된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던 죽은 괴벨스가 살아 춤추는 형국이다. 언론이 음지의 찌라시에 옷을 입혔다. '얼마나 빨리 아는가'는 언론 홍수시대엔 전가의 보도다. 누군가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세상의 관심은 방향이 아니라 속도다. 국익이나 진실 여부는 이차적인 문제일 뿐, 우선은 속도가 끗발을 좌우한다. 남보다 빠르게 알아야 남보다 앞설 수 있다고 믿는 사회는 위험하다고 매일같이 이야기하지만 불나방이 그렇듯 화려하게 폼나게 알리고 싶은게 언론이다.

 문제는 단순한 찌라시의 유출이 아니라 갈수록 커지는 의혹이다. 찌라시의 한 축인 정윤회의 국정개입 의혹은 날치알마냥 밤마다 다른 의혹을 쏟아내고 급기야 불과 얼마전까지 히죽거리며 기념사진을 찍던 장관이라는 자까지 대통령의 '인사개입'을 폭로하고 나선 상황이다. 이쯤되면 끝판으로 가는 형국이다. 살아 있는 권력이 이만큼 흔들리는 일이 있었나 싶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정치에서는 흔한 일이다. 문제는 아직 절반의 임기도 채우지 않은 서슬 퍼런 권력이 찌라시 한장에 흔들린다는 사실이다.

 내용은 이렇다. 박근혜 대통령의 과거 비서실장 출신인 정윤회씨의 국정 개입 의혹이 문서화됐다. 이른바 '정윤회 문건'은 대통령의 바로 옆에서 터졌다. 지난해 말 김기춘 실장의 거취를 두고 오르내리던 오만가지 설들이 '정윤회와 박지만의 갈등설'로 확산되다 측근 3인방의 국정 개입설이 구체화됐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당시 김기춘 실장을 주인공으로 한 찌라시는 실장 교체설과 중병설이 핵심이고 그 상층에 그림자 권력으로 불리는 정윤회와 박지만의 갈등설이 구름처럼 덮여 있다. 누구는 청와대 하늘을 덮은 소문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워낙 보안을 강조하다 보니 생기는 역효과"라고 진단하고 누구는 "소문과 찌라시로 이득을 보려는 개인 혹은 집단의 계산된 공작"이라고 청진기를 댄다.

 어쨌든, 문제의 핵심은 찌라시가 아니라 사실 여부다. 박 대통령이 찌라시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지만 그만큼 사인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대통령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그동안 만만회를 비롯해서 근거 없는 얘기들이 많았는데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진실 밝혀내서 다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이 국민들을 혼란시키지 않도록, 혼란스럽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는 무겁지만, 방향은 어쩐지 다르게 흐르고 있다.

 대통령의 선언 이후 속도를 낸 검찰 수사는 '찌라시'의 사실 여부와 문건유출 경로라는 두 가지 가닥을 지목하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대체로 '어떤 놈이 문서를 빼돌렸나' 쪽에 수사의 중심축이 기울고 있는 듯하다. 검찰은 수사 개시 하루 만에 문건유출자로 지목된 박관천 경정의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그 다음날 박 경정을 불러 조사했고 박 경정의 직속상관인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도 강도 높게 조사했다. 물론 박 경정과 조 전 비서관은 이미 언론을 통해 문건유출 의혹을 부인하고 문건 역시 사실을 토대로 작성됐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청와대는 말이 다르다. 청와대는 이 문건에 대해 시중에 떠도는 정보지를 모아놓은 수준이라고 거듭해서 주장하는 상황이다. 유출은 부인하는데 내용은 사실에 가깝다는 쪽과 유출경위를 철저히 따져야 하고 내용은 허위라는 상반된 주장이 며칠간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지만 매 순간 신문과 방송에서 이런 뉴스를 들어야 하는 국민들은 짜증스럽기만 하다.

 찌라시는 조작의 옷을 입기 마련이고 조작은 가능한 화려한 분칠을 하기 마련이다. 설사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해 제법 그럴듯한 수사를 한다 해도 찌라시의 위력을 덮긴 어렵다. 명예훼손과 문건유출은 세상의 관심이 아닌데 검찰의 수사는 그 방향을 보고 있다. 찌질한 정치는 언제나 그렇듯 국정조사를 들고 나오고 혹한에 거리로 나설지 모른다. 늘 그랬고 또 그럴 것이기에 국민의 관심은 냉소로 흐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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