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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밝히는 도심의 밤거리는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만든 풍경이 어쩌면 이렇게 예쁘고 화려할 수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반짝반짝 불빛장식나무가 있는 도시는 훨씬 우아하고 운치 있었다. 올해도 저 불빛처럼 반짝반짝 온몸으로 살아가게 해 달라는 마음으로 나무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불빛나무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멀찌감치에서 볼 때와는 많이 달랐다. 오돌오돌 떨고 있는 나목 가장귀마다 온통 검은 비닐전선을 칭칭 감아놓은 것을 보고 마음이 몹시 언짢았다. 한겨울, 산속에 있어야 할 나무를 도심에 데려다 놓고 사람들이 못할 짓을 하는구나 싶었다. 원래 나무가 할 일이 아닌데 사람들에게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측은지심이 일었다. 겨울 한 철은 나무가 조용히 묵언 정진에 들 때가 아니던가. 한해의 할 일을 마치고 이제는 내면과 마주하며 지친 몸을 회복하는 때이다. 나름 숨을 돌리고 에너지를 저장하며 새 봄 채비에 들 때다. 수액을 길어 올리고 가장귀마다 푸른 기운을 품어 봄을 피워 내야한다. 사람들이 다가가 전기선을 감아 스위치를 올리고 아름다운 불빛을 요구하는 것은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가혹한 고통이다. 온몸에 전류를 감수해야 하는데 그 정신이 어찌 온전할 것이며, 그러고도 사람들은 나무한테 봄다운 봄을 기다릴 수 있단 말인가.
 

 겉보기에는 하는 일 없이 묵묵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안으로는 잠시도 쉬거나 멈춤이 없다. 그래야 때되면 물오른 가장귀마다 싹을 틔우고 잎을 달수가 있다. 수런수런 신록으로 그늘과 바람을 주고 가을은 황홀한 단풍으로 사람들의 기분을 즐겁도록 해주지 않던가. 사시사철 할 일이 많은 나무다.
 사람한테는 겨울이 한해의 끝인지 몰라도 나무한테는 시작이다. 우선 겉만 보고 판단할 일은 아니다. 겨울은 수액을 나르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중요한 때다. 그래야 이듬해 봄다운 봄을 펼칠 수 있고 계절마다 색다른 자태로 볼거리와 즐거움을 선물할 수가 있지 않겠는가.
 심성이 어질어 거절하거나 내치지 못할뿐더러 불평하거나 요령을 피우는 일도 없다. 칼바람이 생채기를 내고 달아나도 '수우수우' 손 흔들어 인사하고, 수다쟁이 새들이 제멋대로 찾아와 실컷 어지럽히고 매정하게 날아가 버려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는다.
 

 지난해 가을, 친구들과 단풍놀이를 하던 중이었다. 단풍이 한창 물든 숲에서 어떤 키 큰 나무를 보고 궁금해 하고 있을 때 친구가 고로쇠나무라고 했다. 나무는 단풍이 든 것도, 안 든 것도 아닌, 말라비틀어진 나뭇잎들이 엉성하게 매달려 있어서 보기가 딱했다. 고로쇠나무가 원래는 단풍이 곱게 드는 나무인데 이른 봄 한창 물오를 때 사람들이 너무 극성맞게 수액을 채취하는 바람에 저 꼴이 됐다는 거였다. 건강에 좋다는 것이라면 인정사정없이 덤벼드는 사람들의 그악스러운 건강 열에 넌더리가 났다. 건강에 좋다고만 하면 너무 안달을 떨어서 보기가 추하기까지 하다. 가만히 앉아서 당하는 고로쇠나무 입장에서 보면 우리 인간이 얼마나 치가 떨리겠는가.
 

 겨울철 나목한테는 소중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할 터다. 나무에 불빛장식은 모독이고 고문이다. 나무는 고향인 산을 떠나 불편한 도심에 와 있지만, 묵묵히 제 몫을 다한다. 가장 아름다운 언어가 침묵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안으로는 고통스럽지만, 세상 앞에서 한결같은 우아함을 지닌다.
 나는 여태껏 살면서 언제 남을 위해 좋은 일 한 번 한 적이 있었던가. 사회정의를 위해 일신의 안일을 희생한 적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큰돈을 쾌척한 적도 없었다. 기껏해야 남에게 폐나 안 되게 살려고 전전긍긍 옹졸하게 살았다.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남의 슬픔조차 나누기보다는 나의 슬픔을 위로하는 데 써먹곤 했었다.
 

 마침 올해는 청양의 해이다. 양은 원래 온순하고 어진 성격으로 평화와 희생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진다. 어질고, 착하고, 참을성이 많다고 해서 평화를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무리지어 다니며 살지만, 다툼은 없다고 한다. 종교적으로는 신성한 동물로 신화나 전설에 자주 등장했고 무릎을 꿇고 젖을 먹는 모습에서 은혜를 아는 동물로 어른들은 인식했다.
 양이나 나무나 말없이 행동으로 보이는 교훈에는 공통점이 있다. 새해에는 '말수는 줄이고 행동은 크게'하는 나 자신이 되기를 소망한다.
 나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허영이 있다면 그건 우아하고 품위 있게 늙는 것이다. 나무처럼 그 누구를 위해 존재하거나, 선한 천성과 행동으로 상대에게 편안함과 평화로움을 주는 양 같은 이웃이 되고 싶다. 그렇게 내 자리를 지켜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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