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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실 같은 봄비가 내린다. '입춘'이 지나서 그런지 빗속에서 봄 냄새가 난다. 사분사분 대지를 적시는 빗소리가 봄을 재촉하는 주문 같아 듣고 있으면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이번 비가 그치고 나면 남풍은 온 천지에 연두색 물감을 뿌리며 다가올 것이다. 그러면 나는 텃밭으로 나가 천천히 호미질을 시작할 것이다.
 새해가 시작되고 그새 달포나 되었다. 해가 더할수록 세월 가는 소리가 '휘휘' 온몸으로 느껴진다. 예순이 다 된 것을 아는 순간 마음이 움찔하다. 이제 남의 이야기가 귀에 거슬리지 않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분별력을 잃지 않는 연륜의 단계가 된 것이다. 버릴 것은 버리고 내려놓을 것이 있으면 내려놓는 마음의 여유를 찾을 줄 알아야 할 때다싶다. 무작정 욕심만을 고집한다거나, 남 앞에 나설 때나 그렇지 말아야 할 때를 분간하지 못하는 실수는 범하지 말아야겠다. 그렇지 못한다면 보는 이로 하여금 천박하고 비루한 중늙은이로 보이기 십상일 테니까.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져야한다. '남들은 저리 이룬 것이 많은데, 저리 잘 사는데'하며 부러워할 때는 이미 지났다. 지금 지닌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남모를 근심걱정 하나쯤은 대부분이 다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안다. 겉보기에는 나보다 훨씬 가진 것이 많고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이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고통이나 근심과 걱정은 다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더 가졌거나 덜 가졌거나, 모두가 비슷한 삶을 살다가 간다는 것이다. 누구나 늙고, 병들고, 걱정하고, 일하다가 어느 날 인연이 다하는 날은 자연스럽게 이승의 강을 건너 하늘의 별로 돌아가는 것을.
 

 작년 한 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유병언씨의 죽음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평생 부조리로 축적한 재산으로 좋은 것은 골라가며 먹었을 것이고, 명품으로 온 몸뚱이를 치장하며 지낸 이가 아니던가. 그렇게 귀하게 다루던 몸이었지만, 마지막은 인적이 드문 야산 근처 매실 밭 풀숲에서 쓸쓸히 버려져 썩어가는 것을 지켜봤다. 나는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허망하기만 하다.
 '설니홍조(雪泥鴻爪)'라는 소동파 시구가 있다. 뜻인즉, 눈 위에 발자국을 부지런히 남기며 걸어가던 기러기가 제 발자국이 그대로 남겨졌으리라 뒤돌아보지만, 눈이 녹아버리는 바람에 아무런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허망한 우리네 삶을 비유한 말이다.
 인생의 허망함과 덧없음을 비유할 때 인용하는 이 시구가 어쩌면 요즈음의 나를 두고 한 말인 것 같아 씁쓸하다. 누구나 다 하는 자식 낳아 출가시키고, 내 몸담을 집 한 칸 마련하느라 그간 코에 단내가 났다. 내 능력을 보일 수 있는 것은 손에든 삶이란 호미, 나는 그것을 들고 온 힘을 다해 후비적후비적 끊임없이 호미질을 해왔다. 어느 한 때는 그 호미자루를 영원히 던지고 싶을 정도로 삶이 우울한 적도 있었다. 그때, 다행히 '문학 치료'를 만나 그런대로 참고, 견디고, 버틸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은 다행으로 받아들인다. 내게 주어진 숙제를, 호미질을 얼추 하고나면 세상 무슨 큰 영화라도 볼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호미질은 무한했다.
 

 우리가 한평생 아등바등 살아가는 일은 눈 위에 난 기러기 발자국과 같은 것이다. 잘나고 돈 많은 사람, 지위나 명예를 가진 이도 한때지, 영원하지가 않다. 젊은 피가 끓던 삼, 사십 대 때에는 몰랐지만, 지금에사 되돌아보니 너무 아등바등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었음을 안다. 부지런히 호미질은 하되 나름의 쉼표를 찍는 지혜가 필요했다. 꽃피는 봄과 잎 무성한 여름, 스산한 가을과 얼어붙는 겨울을 무지로 스쳐 지나보냈던 것이다. 봄날, 보리밭 이랑사이로 산들거리는 바람이 전하는 풋풋한 언어를 들을 수 있을 때 삶은 훨씬 행복하고 충만하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봄비가 촉촉이 스며든 대지는 포실포실 떡고물 같아서 호미질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흙을 헤집고 올라오는 작은 연둣빛이 내 호미질 소리에 놀라 '톡'하고 두 장 떡잎으로 피워낼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콩닥거린다. 호미질은 내가 살아 있다는 몸짓이자 삶을 대신하고 봄을 부르는 언어이기도 하다. 봄이 기다려진다. 호미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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