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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감한 일이지만 박근혜 정부의 인사참사는 진행형이다. 지난달 23일 전례 없는 여야의 환영을 받으며 지명된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이야기다. 무난한 통과를 점치던 정치권이 청문 전후에 쏟아진 이완구 후보자의 말과 각종 의혹으로 낙마론이 비등해졌다. 그동안 총리 등 공직 후보자들의 낙마 1순위였던 부동산 투기, 병역 특혜, 논문 표절 의혹에다 이번에는 언론관까지 색깔을 덧칠했다. 기자들 앞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 내용을 막은 사실과 기자 인사까지 개입할 수 있다는 영향력을 과시한 녹음 파일은 압권이었다. 야당은 "총리 자격 없다"며 반대로 급속히 기울었다. 정의화 의장이 극적인 중재로 묘수를 발휘했지만 시간연장일 뿐 여론은 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또 한 번의 낙마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무렵 문재인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바로 여론조사 공방이다. 야당의 대표가 총리 후보자의 적격 여부를 여론조사로 묻자는 초유의 제안을 했다. 돌파구를 찾지 못해 집안단속에만 열을 올리던 여권이 백기사를 만난 셈이다. 여권은 틈새를 비집고 역공을 시작했다. 권은희 새누리당 대변인이 포문을 열었다. "행정업무를 관장하는 국무위원들의 수장인 국무총리를 여론조사로 심판하자는 것은 행정부를 정치판으로 끌어들이는 어이없는 일이며, 삼권분립을 흔드는 반민주적 발상"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그는 "국가중대사를 여론조사로 해결하는 자세는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라며 문재인 대표를 정조준했다. 여권으로선 고마운 사람이지만 표현법은 정치적 낙제점으로 매도한 셈이다.
 

 야당은 즉각 반박했다. 김영록 새정치연합 수석대변인은 "문재인 대표가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준을 여론조사로 묻자고 제안한 것은 국민의 뜻에 따르자는 취지"라면서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인준은 청와대의 지시와 집권여당의 강행처리에 의해서 결정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문 대표의 생각을 밑줄을 그어가며 해석했다. 그는 또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인 만큼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국민의 뜻을 따르자는 취지"라며 문 대표의 여론조사 제안에 대한 주석까지 달았다.
 어차피 여권이 수용할 수 없는 제안을 한 문재인 대표의 속내는 하나다. 집단 반발로 낙마를 당론화하고 싶지만 충청권의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이완구 반대를 공론화할 방법이 여론조사 카드였다. 스스로는 절묘한 한 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충수다. 그것도 전전긍긍하던 여권에게 돌파구를 만들어준 치명적인 악수가 될 가능성마저 보이는 패착이다. 가만히 두면 5일간의 연장 타임 중에 자중지란이 일어나든 여론이 악화되든 반대론이 고개를 더 높이 쳐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후보와 그 주변 가족들에게 제기된 의혹은 앞선 낙마자들 보다 수위가 훨씬 높은 수준이다. 차남 소유인 경기 분당 대장동 땅 투기 의혹과 타워팰리스 분양권('딱지') 매입, 본인(보충역)과 차남(면제) 병역 기피에다 경기대 교수 채용 담당이던 처남을 통한 경기대 조교수 특혜채용 의혹, 박사학위 논문 표절, 국보위 활동 전력과 삼청교육대 관여 의혹 등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6일 녹취록 공개로 드러난 그의 언론관은 총리 후보자로선 치명적 흠결로 떠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를 총리 후보로 지명했을 당시 야당은 물론 대다수 언론에서도 '소통 총리'가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녹취록에서 드러난 그의 언론관은 과거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 수준의 통제 중심적 언론관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않았다.
 

 새누리당에서도 "이 정도 사안이면 다른 사람들 같으면 청문회 통과 못 한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을 맡았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이 후보자의 언론 압박 발언에 대해 "선진국 같으면 총리 후보자로는 이미 끝이고, 국회의원직도 관둬야 할 일"이라고 마침표까지 찍고 있다. 그런 그가 표결 절차 앞에 서게 됐다. 말 많고 탈 많은 대한민국 국무총리 자리가 오늘 어떤식으로든 결정짓게 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런식의 흠결을 일회용 밴드로 붙인다고 물집이 흘러나오지 않을 순 없다.
 문제는 청문이나 의혹제기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자기 검증이다. 내가 왜 대한민국 국무총리가 되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대한민국 국무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는 준비된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성찰은 누구나 하지 않는다. 바로 그 성찰의 시간에 문재인 대표는 야권의 전가의 보도인 '여론조사' 카드를 꺼내 들었다. 스스로 용퇴를 고민해야 할 시간에 본질과 무관한 공방전으로 자격론의 무거운 외투를 잠시 벗을 수 있는 이완구 후보자에게 문재인은 너무나 고마운 백기사였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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