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가 설마 대동강물 팔아먹겠소?"
 구거(溝渠)부지에 차를 댔다 나오는 운전자가 주차요금에 딴지를 걸자 관리원이 대뜸 이렇게 쏘아붙인다. 관리원은 '냉큼' 주차비를 내라며 "여기도!" "저기도!" "모두다!" "내땅" 이라더니, "6년 전부터 주차장으로 쓰면서 월대(월주차료)를 받아왔다"는 자술까지 첨언했다.


 '떵떵'거리며 '갑질'하던 관리원이 입장을 바꾼건 바로 다음날이다. 구청 담당 공무원이 납시자 몸을 한껏 낮춘채 '친절한 을씨'의 자세를 취하고 땅 속을 훤히 들여다보듯 구거의 위치까지 아주 자세히 설명하며 "나라땅"이라 실토했다. 
 수년간 이어져왔던 낯부끄러운 연극의 막을 내린 이 주차장은 말 그대로 대동강물을 팔아먹었던 대가로 변상금을 물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사태를 전해들은 지인들은 "요즘 세상에 그런일이 있나"라며 의문을 던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구거의 실체 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것이 행정의 현실이다. 상당수 일제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구거는 과거 물길이 흘렀던 개울이나 시내, 도랑 등 규모가 작은 내천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복개된 상태여서 눈에 보이진 않지만 엄연히 하천부지며 국유지다. 1975년을 전후로 울산에서 도시계획정비가 이뤄지면서 하수·우수관거가 설치돼고 이전까지 배수로였던 구거의 역할은 급격히 줄었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 여전히 물길이 살아있는 구거의 현황이 자료로 남겨지지 않았고, 폐구거 중 지목상 정리나 재산 정리가 되지 않은채 방치된 곳도 상당수다. 오래된 건물일수록 구거를 점유하고 있는 확률이 높고, 공공 기관인 학교도 마찬가지다.

 

구거위에 건물이 있을 경우 자칫 침수나 침하를 각오해야 한다. 때되면 순환배치되는 공무원들이 이렇게 골치 아픈 구거를 떠맡아 정리해보겠다 마음먹었을리 만무하다. 개중에는 내 집이나 앞마당 밑으로 지나가는 구거를 용도폐지해 사들이거나 따박따박 점용료를 내는 시민들도 있다. 만인에게 평등해야할 법 앞에서 누구는 내집에서 발뻗고 잠도 못자는데, 누구는 나라땅 팔아먹는 봉이 김선달 행세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더 이상 미룰일은 아니다. 울산 전체에 포진된 구거는 수천~수만필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울산시가 철학을 가지고 구거부지 실태 파악에 나서야 할 때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