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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음악도 듣는 이의 정서적 경험, 자연환경 등에 따라 매우 다르게 들릴 수 있다. 숲에서 우는 새소리는 경계, 알림, 과시 등의 전달소리라 할지라도 사람은 듣는 감정의 심천에 따라 의미를 두게 된다. 이러한 심리는 대중가요에도 나타나 자기감정을 이입시켜 부르거나 듣게 된다.
 요즈음 진미령의 '미운사랑'이 나를 위해 작곡한 노래로 착각하고 가끔 흥얼거린다. 특히 '이렇게 살라고 인연을 맺었나 차라리 저 멀리 둘 걸'이라는 부분에서는 진하게 느껴 반복해 부른다. 또한 누군가 이 노래를 부르면 상상을 하면서 관심을 더 갖게 되는 것도 숨길 수 없다. 시도 마찬가지로 전체 혹은 부분적으로 관심을 갖게 한다.
 

 얼마전 이호경의 한시'술회(述懷)'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이호경은 이구소로 더 알려져 있으며 언양 작괘천에는 이름 석자가 크게 새겨진 바위가있다.『울주천년 인물을 만나다(울주문화원, 2013)』, 『울산의 인물(울산광역시, 2014)』등에 등재된 인물이기도하다. 술회의 내용을 짐작해보건데 아마도 사랑하는 이의 부음을 받고 쓴 조시 같다. 수십 번을 되뇌고 필사도 여러 번하였다. 그만큼 사실적 시적 표현이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질책을 각오하고 짧은 학문이지만 나름대로 의역해 보았다.
 붉고 푸른 것이 갑자기 보이고 우렛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한 많은 이별은 한 많은 정일 뿐 어찌할꼬. 만약 이런 날이 분명 있을 줄 알았다면 하룻밤인들 만리장성 또한 쌓지 않았을 것을(看朱忽碧霹無聲 何恨離緣只恨情 若知此日分明在 一夜相親亦不成).
 특히 '若知此日分明在 一夜相親亦不成'이라는 시구에서 죽음으로 이승과 저승으로 헤어질 것이라면 부질없는 하룻밤 사랑마저도 외면할 것을 뒤늦은 후회를 하고 있는 작가의 심정을 토로하고 있는 듯하다.
 

 만남이 사랑이라면 이별은 죽음이라 표현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만남은 사랑이다. '순아 단둘이 살자', '그대 없이는 못살아', '진짜 사랑해', '당신만을 사랑해', '귀밑머리 쓰다듬어 맹세는 길어도', '사랑한다는 그 말에 내 모든 것 다버리고' 등의 표현은 선남선녀의 아름다운 사랑의 농축액이다.
 이별은 죽음이다. '그대 없이는 못살아', '따라서 죽지 못한 사람 미망인', '나 혼자 어찌 살라고', '나는 어떡하라고' 등의 외침은 짝 잃은 기러기 고안(孤雁)의 절규이다.
 가수 문주란은 '하고 싶은 말들이 쌓였는데도 한마디 말 못하고 떠나가는 당신을 이제 와서 뉘우쳐도 소용없는 일인데'라고 생이별을 노래하고 있다.
 

 춘향과 이도령의 생이별에서 '임이 떠나가는 모습은 해처럼 보이다가, 달처럼 보이다가, 별처럼 보이다가, 먼지처럼 보이다가, 마침내 나비처럼 보인다'고 했다. 생이별일지라도 심정이 이러할진대 하물며 죽어 멀어지는 사별은 그 무슨 말이 필요하랴. 생이별이야 살아있기에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죽어서 헤어지는 사별은 영영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한편 무척 사랑하던 사람의 죽었다는 소식을 갑자기 들었다면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보일까. 『의례』'상대기'에는 죽음을 접한 부인의 행동을 참새의 걸음을 비유하여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부인은 곡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는 곡용(哭踊)을 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용(踊)은 참새가 뛰는 것처럼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라 했다(似雀之跳 足不離地).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새끼 잃은 새들의 의사행동 같은 몸부림일 것이다.
 미당은 사별한 임을 귀촉도에 비유해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하늘 끝 호올로 가신님아'로 표현했다. 울다 지쳐 피를 토하면서까지 망자를 떠나보내지 않겠다는 남은 자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삶에 직접적인 대상이 아니더라도 죽음에는 누구나 관심을 갖게 된다. 동도 명기 전화앵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김극기는 전화앵의 가성(佳城)을 찾아 조전화앵으로 애도했다. '미인은 박명하여 세상과 멀어졌다. 하늘 끝 보이는 곳은 다만 겹겹 이은 산들뿐…(玉貌催魂隔世 空端只見層嶺…)' 김극기의 '조전화앵'이라는 시의 시작부분이다.
 전북 부안 출신 기생 매창(梅窓, 1573-1610)이 죽었다는 소식에 허균(許筠)은 계랑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를 지어 애도했다. '오묘한 시구는 비단을 펼친 듯하고 청아한 노래는 구름도 멈추게 했네…(妙句堪擒錦 淸歌解駐雲…)' '哀桂娘(애계낭)'이라는 시의 시작부분이다. 전화앵, 매창, 이호경 모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다.
 술회를 읽고 난 며칠 전부터 나의 머릿속에는 '만약 이런 날이 분명 있을 줄 알았다면 하룻밤인들 만리장성 또한 쌓지 않았을 것을'이라는 시구가 메아리치다가 '이렇게 살라고 인연을 맺었나. 차라리 저 멀리 둘 걸'로 자꾸만 반복하여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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