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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대사가 백주에 서울 한복판에서 칼집을 맞았다. 이런 젠장, 대사가 누군가. 외교의 첨병이자 대통령의 분신 아닌가. 그런 그를 종북 비스무리한 반미주의자가 얼굴에 칼을 그었으니 난리가 났다. 화들짝 놀란 한국 정부는 칼집을 낸 김기종이 종북세력이라며 북한과 연계설을 흘리며 흔들리지 않는 한미동맹을 강조했고 중동에 나가 있는 대통령은 '대전사건'의 동병상련을 강조하며 리퍼트에게 위로전화를 했다. 이런 우라질, 미꾸라지 한 놈이 개울을 망친다고 지금 우리 정가는 견고한 한미동맹에 칼집을 낸 '잡놈' 하나 때문에 망신살이 뻗쳤다는 분위기다.
 

 문제는 이번 사건에서도 우리사회는 어김없이 양쪽으로 갈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새누리당과 보수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는 우리마당 활동 이력을 근거로 김씨를 '종북 인사'로 단정하며 배후세력까지 척결해야 한다는 강공 드라이브를 계속하고 있다. 반면 진보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들은 "테러는 진보·보수를 떠나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비판하면서도 "김씨는 과격한 돌출 행동을 빈번하게 보여 우리도 함께 하지 않았고 철저히 독단적으로 행동해 왔다"며 보수측이 이번 사건을 공안정국으로 몰아가려 한다는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뭐, 돌려 말했지만 까놓고 이야기 하면 보수는 '빨갱이' 족속들을 걷어내자는 이야기고 진보는 색깔론으로 정국의 주도권을 잡으려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반응은 요란하고 시끄럽기까지 하지만 본질은 친한파 미국대사, 오바마의 오른팔인 리퍼트가 극단주의자의 손에 칼집을 맞았다는 사실이다. 김기종이 종북이든 반미주의자든 그게 문제가 아니라 백주에 한국의 한 시민사회단체 운동가가 미국을 향해 칼을 휘두른 것이 본질이다. 김기종이 겨냥한 것은 리퍼트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이야기다. 왜 그는 미국을 향해 칼을 휘둘렀을까. 그의 입으로 드러난 배경은 한미군사훈련 반대다. 명분은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되고 있어 항의했다고 강변 하지만 속내는 한미군사동맹 자체를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계산과 '소영웅주의'가 깔린 셈이다.
 그래서 그는 비스무리한 종북이다. 진보 쪽이 불편할 일도 아니다. 비스무리하지만 그냥 종북이라 인정하면 된다. 그정도 인정을 하지 못하면서 군사훈련 반대를 외치고 미국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면 정말 미치광이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 깔린 반미주의의 현주소다. 구한말인 1880년 고종은 일본에 파견한 수신사 김홍집으로부터 황준헌의 '조선책략'이라는 책을 받았다.
 청나라 주일공사관에서 일하는 황준헌의 책이지만 실제로는 청국의 실권자인 이홍장의 외교적 전략이 깔린 보고서였다. 이 책에서 주목할 것은 친러시아 기류가 흐르던 조선정부에 대한 조언이었다. 황준원은 러시아의 세력을 견제하는 것이 조선의 미래를 보장하는 길이며 이 방편으로 친중 결일 연미를 통해 조선이 자강책을 도모해야 하다고 주문했다. 특히 러시아의 조선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조선은 미국과 즉각 수교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로부터 2년 후 고종은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한반도에 미국의 세력이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쇄국의 빗장을 풀고 열강들과 외교관계를 만들어 간 구한말 대외정책에서 조선은 없었다.
 

 이후 한세기가 넘게 계속된 미국과 대한민국의 관계는 실로 곡절이 굽이쳤다. 시작은 이홍장의 전략이었지만 한국전쟁과 함께 대한민국과 미국은 말 그대로 혈맹관계가 됐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필자의 세대는 미국에 대해 '환상'을 학습해 왔다. 그 당시 기성세대들은 자신의 자식들에게 미국인들은 교양 있고 질서를 잘 지키며 대체로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남이 위급한 상황이 되면 자기 일도 잊고 도와주는 '천사'로 교육했다. 그런 미국이 문명국가이자 세계의 질서에 균형추 역할을 하는 면도 있지만 인종차별의 나라이자 폭력과 광기의 전쟁광이며 외교적 실리를 주판에 굴리며 한반도 관계에서 줄타기를 한다는 식의 학습을 하게 된 세대는 엄청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혼란의 결과물은 두갈래로 나타났다.
 

 한쪽은 여전히 미국에 대한 환상을 현실화하는 쪽이기에 현대사에서 미국의 역할론에 주목하며 세계경찰국가나 '아시아의 대통령론'을 펴는 오바마에 박수를 보내는 쪽이다. 미국의 건재가 대한민국 국익과 직결된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린 보수 쪽 이야기다. 하지만 부정의 인식에 기초한 쪽은 반미주의로 방향을 돌렸다.
 그 결과물이 1980년대 반미시위였고 주체가 된 인사들이 지금 대한민국 진보세력의 중심이다. 보수쪽에서 보면 미국사람은 '미국분'이지만 진보의 입장에서는 '미국놈'이자 한반도 분단의 주적일 뿐이었다.
 갈라진 인식이 갈라진 사회로 드러나 우리 사회는 만신창이다. 미 국무부 차관 셔먼의 발언 이후 대한민국에 대한 미국의 본심이 민낯을 드러냈다는 이야기부터 칼집을 맞은 리퍼트 대사가 '두개의 한국'을 정독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미국인들을 두고 우리는 여전히 '미국분'과 '미국놈'으로 나눠 삿대질을 벌이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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