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봄이 오자 얼었던 꽃밭에 생기가 돌면서 꽃망울이 맺혔다. 내일이면 터질 동백꽃망울을 보니 마음 한 켠에 빗장이 열린다. 산과 들이 변하여도 변치 말아야 될 것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사람의 일이란 알 수가 없다. 세상에는 내 것도 언제나 내 것만이 될 수 없는 일도 더러는 있다. 
 어느 해 엄마는 동생을 업은 포대기가 내려와도 고쳐 업지도 않고 빠른 걸음으로 외갓집으로 향하였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들락날락하는 사람들만 보아도 잔칫집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외사촌 오빠를 따라 시집온 신부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도 남았다. 희고 맑은 피부에 말 또한 무뚝뚝한 경상도 말이 아니었다. 조금은 빠른 듯한 말씨에 목소리 또한 옥구슬이 바람에 구르는 듯하여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신비감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마치 이슬만 먹고 자란 꽃잎같이 청아했다. 우유처럼 뽀얀 얼굴을 가진 새댁이 살짝 웃으며 동백꽃 옆에서 새신랑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 모습은 꽃보다 더 맑아 보였다.
 미인 박복이라 했던가. 보기와는 다르게 아픔이 많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전쟁 중에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오다가 부모와 헤어졌다고 했다. 많은 인파속에 그만 잡은 손을 놓치고 말았다고 했다. '말 천마리 소 천마리' 속에서도 밟히지 않고 살아남은 바리데기처럼 모진 고통을 겪었던 사람이었다. 그런 여건 속에서 자라도 심성이 맑고 고와 보였다.
 결혼은 행복의 시작도 되지만 불행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나니 커다란 걱정이 생겼다. 아기가 생기지 않아서 헤아릴 수 없는 고뇌를 하였다. 하지만,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시드는 꽃잎처럼 힘이 없어졌다. 그의 아픔은 오직 남편만이 치유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이미 떠난 사랑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을 기다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믿었던 사람에게 버림을 받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녀는 짓눌린 삶에 웃음을 잃어가고 말았다.
 이십년이란 짧지 않는 세월에 많고 많은 사연들을 가슴속에 묻고 떠났다.  운명인지 숙명인지 그녀의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언제부터가 희고 맑던 그녀 대신 거무죽죽한 낯선 여자가 아이를 가졌다는 권세로 안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뻐꾸기 같았다. 멧새 집에 남모르게 침입하여 자기 알을 낳는 새, 남의 둥지에 들어 와서 끝내는 주인을 밀어내는 뻐꾸기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돌고 도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던가. 세상은 넓고도 좁았다. 얼마 전 어느 사찰에서였다. 구름같이 몰려든 사람들 틈에서 나는 숨이 막힐 것 같아서 자리를 넓히려고 고개를 들었다. 대웅전 저 안쪽에 있는 사람이 어디서 낯익은 얼굴이었다. 한참을 생각한 후에야 누구라는 것을 알았다. 법회 중이라서 소리 내어 부를 수도 없었다. 법회가 어서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날 내 눈은 생선을 발견한 고양이처럼 그 곳으로만 쏠렸다.
 하지만, 이게 웬 일인가. 법회가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일어나는 바람에 한 순간에 그녀를 그만 놓쳐 버렸다. 대웅전 앞에도 옆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밤이라서 더욱 더 찾기가 어려웠다. 만나서 손이라도 곡 잡아 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지금까지 속이 아릿하다. 내가 만약 신이라면 아픔을 겪는 사람에게는 웃음만을 주고 싶다. 어렵게 인내를 극복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삶에서 불행은 태풍과 같아 순식간에 거세게 다가오기도 한다. 누구나 행복만을 추구할 수는 없다. 힘들게 견뎌온 사람에게 닥치는 시련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그녀는 피붙이 하나 없이 믿고 의지할 언덕이라고는 없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지낼까. 모든 것을 내려놓아서 마음이 하얗게 되었을까. 아니면 혼자 속을 태워서 붉은 동백같이 되었을까. 메마른 울타리 사이에서 소리없이 피어서 질 때는 고개채로 툭 떨어지는 동백꽃이 생각난다.
 뜰에 핀 동백은 아이러니하게도 한 나무에 두 가지 꽃을 피웠다. 한 가지는 진홍이고, 한 가지는 연분홍이다. 어느 색의 꽃이 그녀일까. 아마 가지가 밑으로 쳐져 있는 붉은 꽃이 그녀이지 싶다.
 꽃망울 사이로 연분홍치마를 입고 갓 시집와서 밝게 웃던 얼굴이 스케치된다. 그녀는 지난날, 동백꽃 옆에서 다정하게 주고받던 속삭임을 아직도 사랑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어디에 있더라도 상처를 이겨내어 남은 생은 꽃피는 봄날이 되어 주기를 바랄뿐이다. 꽃나무도 너울너울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눈인사를 보내는 듯하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