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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몇몇 지인들이 얼굴을 마주했다. 공기업 임원과 대학교수, 공무원 한녀석과 사업하는 친구 모두 다섯이었다. 일상적인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느닷없이 울산이 화제의 중심이 됐다. 반구대암각화 이야기가 문제였다. 반구대암각화가 인류문화의 원초적 이동루트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필자의 장황한 설명을 가로막고 나선 것은 생물학을 전공한 친구였다. "보존 논쟁을 지켜보는 삼자의 입장에서 울산은 한심한 도시"라는 일침이었다. 한심하다. 뜨악, 열받는 단어 선택이다. 그 때부터 대화는 톤이 높아졌고 급기야 울산에 대한 온갖 불확실한 정보들이 쏟아졌다.
 요약하면 뭐, 대충 이런 것들이었다. 울산은 잘사는 도시고 배부른 도시 아니냐. 돈벌이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니 모든 가치기준이 경제적인 효율성에 맞춰져 있는 게 울산 아니냐. 잘산다고 활기가 넘치는 도시는 아니지 않느냐. 퇴폐문화가 넘치고 이혼율이 전국 어느 도시보다 높고 여전히 굴뚝에서 공해가 솟구치는 도시가 울산 아니냐. 등등이다. 우라질, 배금주의 사회에서 고소득을 자랑하는 도시가 이 정도로 폄하되고 있다니 충격이었다. 뭐 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울산이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냥 그저그런 소득만 높은 도시 정도로 비치는 현실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를 돌아보자. 과연 왜곡인가.
 

 울산을 오가는 많은 이들이 울산에서 보고 간 것 중에 가장 충격적인 것은 태화강이다. 공해도시, 굴뚝도시로 알려진 울산을 찾아 직접 도시의 속살을 들여다보니 웬걸, 십리대숲과 굽이친 태화강의 청명한 물길이 눈부실 지경이다. 바로 그 지점이다. 울산을 사람이 모이는 도시, 시민들이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도시로 만드는 일은 속살을 보여주는 일이다. 제대로 보지 않으니 보이질 않는다. 보이지 않으니 대충 알고 있는 것을 짜깁기해서 사실처럼 떠벌린다. 그래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울산을 천박한 도시로 끌어내린 주범은 잘못된 공해도시 이미지와 유흥문화, 그리고 미래를 볼 줄 모르는 오피니언 리더들이다. 비행기로 울산을 찾는 이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울산은 굴뚝이다. 석유화학공단 상공을 추락할 듯 하강하는 공포와 함께 울산과 마주한다. 어쩌다 굴뚝위로 검은 연기가 솟구치는 불연소의 순간을 목격했다면 대단한 모험담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와, 울산에 갔더니 굴뚝에서 불꽃이 올라오고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는데, 장관이더라"는 식이다. 기차타고 울산을 찾는 이는 과거 태화강 역의 화려한 모텔촌과 함께 울산과 마주했다. 지금은 KTX 울산역이 울산의 관문이 됐지만 그쪽은 아예 "안녕하세요, 여기는 공해도시 울산입니다"라며 서너곳의 굴뚝이 일제히 희뿌연 연기를 뿜으려 환영인사까지 하는 중이다. 
 

 봄 가을이면 울산 곳곳은 축제 열풍이 분다. 그 축제를 들여다보면 요란함이 첫째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한 결 같이 가수들이 등장하고 요란한 불빛과 불꽃놀이가 밤을 새운다. 태화강에도 대공원에도, 아니 정자나 간절곶 바닷가까지 모두가 하나같이 짜 맞춘 듯 일관성을 유지한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그 것뿐이다. 보여줄 것이 그 뿐이고 즐기게 할 것이 그 뿐이니 딱히 다른 것들로 행사를 채울 수 없다는 말이다. 잘 나가는 가수를 불러 흥을 돋우고 요란한 불꽃으로 마무리 하면 적어도 행사에 볼 것이 없다는 말은 듣지 않으니 주최 측의 심정도 이해할 법하다. 그러니 공연기획 회사들은 울산이 호구다. 바꿔야 한다. 아예 없애자는 말이 아니라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요란하면 천박해진다. 내공이 없으니 소리만 지르다 지칠 때를 기다린다. 시간이 가고 몸이 지치면 불평도 사라지니 못해도 본전이다. 천박함이 문화일 수는 있어도 역사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KTX 울산역 주변에 대기업이 환승센터를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한쪽에서는 화상경마장을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있고 또다른 쪽에서는 유일한 숙박시설인 모텔 하나가 엄청난 히트상품이 돼 연이어 모텔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설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공해로 분칠한 울산의 관문은 안된다고 언론이 몇차례 떠들었고 굴뚝의 주범도 스스로 울산을 떠날 이삿짐을 챙기고 있는 마당이다. 관문과 경관을 정비하고 역사와 문화로 재무장한 홍보물로 울산의 상품가치를 높이겠다는 행정의 방침도 나와 있다.
 도시의 역사는 사람의 역사다. 황성동 바닷가부터 대곡리 평원에 이르기까지 움막 짓고 고래 잡던 사람들이 이 도시의 첫 문화인이었다면 세계 최대의 배를 만들고 대륙을 달리는 자동차를 만든 사람들이 지금 이 도시의 주역이다. 처음은 사람이 도시를 만들었지만 그 사람들의 축적된 문화는 이제 도시의 튼튼한 내공이 되어 새로운 사람을 만든다. 인재가 없고 인물이 없어 울산의 오늘이 이 정도의 평가절하를 당한다는 이야기는 공염불이다. 사람을 만드는 도시를 위해 울산은 과연 무엇을 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일이다. 50년후, 아니 100년후쯤 울산의 모습을 그려보고 그 밑그림에 울산을 하나씩 잘 잡아 나가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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