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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꼼짝없이 집안에서만 지낼 때가 있다. 그때는 미루던 서랍 정리를 하거나 읽고 싶었던 책을 뒤적거린다. 사이사이 음악에 귀를 팔기도 하고 오랜만에 친구 '정옥'이와 전화수다를 떨다가보면 하루해는 금세 미끄러진다.
 종종 혼자서 일하고, 책보고, 적당히 위를 채우며 여유를 즐긴다. 어차피 인생은 나 홀로 다방, 마음 가는 대로 느슨하게 고삐를 푸는 여유가 달콤하다. 지난날이야 먹고 살고 자식 거두는 숙제로 정신이 없었다지만, 그도 한고비 지냈으니 대충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살기로 정했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면 그런대로 편안하다. 어느 노스님은 '행복하려면 먼저 마음부터 편안하게 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법문했다.
 오늘 남편은 고향 동창회 모임에 가고 부재중이다. 그간 밀린 원고숙제를 할 생각으로 레인지 위에 찻물부터 올렸다.
 

 종일 집에 있다가 보면 원하지 않는 초인종이 울릴 때가 있다. 그 대부분이 나와 무관한 사람의 방문일 때는 난감하다. 그렇다고 상대가 보는 앞에 대놓고 속을 내보일 수 없는 일이어서 혼자 끙끙거리며 돌아가기를 기다린다. 적당히 대화를 중간에 자르거나 조절하는 방법을 쓰기도 하는데 상대가 고단수로 나올 적에는 그대로 당하고 만다. '객이 한나절의 한가를 얻을 때 주인은 한나절의 한가를 잃는다'라는 말뜻을 전달할까 싶다가도 마음을 접는다.
 밀린 숙제를 하려고 자판 앞으로 깊숙이 의자를 끌어당겼을 때였다. "딩동, 딩동…" 현관 앞에서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덜컥 문부터 열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두 중년 여성이 아는 척을 하며 양발을 현관 안으로 들이고 '좋은 소식을 전하러 왔어예…'라고 했다.
 어떤 종교단체에서 나온 이들 같았다. 손바닥만 한 책자를 내밀며 들어가도 되겠느냐고 했다. 이미 밀다시피 몸과 발을 들여놓았으니 '우리 이야기 좀 들어 달라'고 하는 의향으로 들렸다.
 현관문을 열어준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런데 건네받은 책자 표지에 붙은 붉은 스티커에 눈이 꽂혔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란 커다란 문구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속이 울컥하면서 머리가 '띵' 했다.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예수를 믿으면 천당, 부처를 믿으면 지옥'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닌가. 상대가 보는 앞이었지만, 나는 인상이 자꾸 돌아갔다. 억지로 부글거리는 속을 감당하느라 좌불안석이었다. 급하게 머리를 써 '외출'을 핑계로 상대를 돌려보내는 데 용케 성공했다. 읽어보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건네준 책자는 여자들이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쓰레기 통속으로 던져버렸다.
 하지만 부글거리는 속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컴퓨터 자판 앞에 앉았지만, 도저히 숙제가 되지 않았다. 앞으로 신분을 알기 전에는 절대 현관문은 열지 않겠노라고 작심했다.
 겨우 진정돼 가나 싶었는데, '재르릉' 집 전화기가 오두방정을 떨었다. '건강검진대상자'이니 시설 좋은 A 병원에서 검진을 받으면 덤으로 농산물상품권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속에서 헛바람이 빠져나가는데 이번에는 식탁에 얹어둔 손전화기가 휘파람에 아양까지 떨면서 '제발 한 번만'이라고 했다. '최신형 스마트 폰을 공짜로 주겠다'였다. 농수산물 상품권, 공짜 폰은 '광고'로 결론지었다.
 빵으로 점심을 대신하고라도 숙제는 해야 할 판이었다. 제대로 해야겠다며 안팎을 무장했다. 한참 동안 자판 소리 말고는 아무도 내 일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런대로 정신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띵동, 띵동' 인터폰이 또 울렸다. 이번에는 절대 문부터 열어주는 실수는 범하지 않겠다며 '누구냐'라고 따지듯 물었다.
 "내다. 와 이래 까칠하누?"
 외출했던 남편이 벌써 돌아왔다. 이러니 어찌 숙제인들 제대로 할 수가 있겠는가. 몇 차례나 문전 축객을 받고 나면 속은 부글부글 거칠어지기 마련이다.
 막 현관문을 들어서는 사람한테 무슨 큰 사건이나 일어난 것처럼 다짜고짜 '예수천당, 불신지옥'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게 가당키나 하냐고 따지듯 했다. 세상에 그런 논리가 어디 있느냐, 그렇다면 불교 신자는 다 지옥 가느냐고 불만을 늘어놓았다. 만약에 불교 신자들이 대중 앞에서 '불신극락 예수지옥'이라고 하면 좋겠냐고 묻고 있는 동안 또 속이 끓었다.
 듣고만 있던 남편이 빙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답변인즉 '예수를 믿으면 천당에 가지만, 불신(不信)하면 지옥'이라는 거였다. 완전히 새됐다.
 이제라도 정신 차려 원고숙제를 마무리하려는데 남편이 다가와 글을 보더니 '이런 내용을 써서 보내면 혹여 어느 종교단체에서 말썽의 소재가 될 수 있으니 말라'고 사생결단으로 말린다. 그러나 다시 쓰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이다. "에라, 모르겠다. 원고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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