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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총리의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팽목항에서 바다를 등진 채 대국민성명을 발표하고 남미로 떠난 대통령을 향해 진보좌파 단체는 '남미순방 안녕히 가세요. 돌아오지 않으셔도 됩니다'라는 망언까지 스스럼없이 활자로 박아 돌리고 있다. 김용준, 안대희, 문창극, 그리고 이완구까지. 박근혜 정부의 국무총리 자리는 조용한 날이 없다. 이쯤 되면 총리 자체보다 총리를 간택한 윗분의 판단력이 도마에 오를 만하다. 총리 지명자가 세간의 자질 논란에 휩싸인 첫째 이유는 직무수행 능력의 유무를 떠나 자질과 품위의 문제, 즉 도덕성에서 찬반이 갈렸다. 얼굴을 보기만 해도 피로감이 몰려오는 그런 사람이 한 나라의 총리라면 국민은 불편하다. 딱 그 지점이다. 이완구 총리 이야기다.
 

 후사를 도모하고 목숨을 등진 고 성완종 회장의 '뇌물 리스트'는 결국 이완구 국무총리를 '시한부 총리'로 내몰리게 했다. 이완구가 누구인가. 지명 이후 언론사 외압의혹에 부동산 투기, 병역의혹까지 숱한 난관을 뚫고 총리에 오른 인물이다. 말 그대로 역경을 딛고 자리를 차지했다는 이야기다. 모든 의혹에서 이 총리는 그 당시부터 '모르쇠'로 일관했다. 방송사 간부들에게 전화해 자신에 대한 의혹 보도를 막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고 한발 더 나이가 "(언론사) 윗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기자는 클 수도 있고 자기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다"는 말도 남겼다. 이 말이 녹취된 채 세상에 나오자 그는 "사석에서 편하게 한 말"이라는 어쭙잖은 변명으로 얼버무렸다. 그 뿐인가. 서울 강남에 투기 붐이 일던 시기에 타워팰리스 단기매매를 통해 9개월 만에 2억 원가량의 시세차익을 올린 점도 도마에 올랐지만 특유의 부정법으로 논란을 비켜갔다.
 

 그런데 말이다.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모른다거나 사실과 다르다는 부정법이 수사대상이 됐다. 검찰은 그가 대통령 직무대행 첫날, 계좌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의혹은 끝이 없고 시간이 지날수록 증거와 증언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다. 문제는 그가 과거 선거운동을 할 때 죽은 성 회장으로부터 3,000만 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아니다. 받았는지 아닌지는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논란의 핵심은 '모르쇠'에 있다. 충청권 출신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독대를 했다는 보도에 그런 일 없다고 부정하는 모양새가 추하다는 점이다.
 

 '모른다'로 일관하던 그는 성 회장의 일정 파일이 드러나자 말을 바꿨다. 성 회장의 일정표상 자신과의 만남이 23차례로 적혀 있다는 내용이 보도되자 이 총리는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시차도 있고, 기억의 한계도 있어 비서관들에게 (일정표를)살펴봐달라고 했다"며 "(성 전 회장과)단독으로 만난 것은 4회인데 이 중 식사를 한 것이 2회이고, 나머지는 충청권(의원들)과 회동, 세종 관련 회의로 만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성 전 회장)비망록에 나온 23회 중 일치하는 것은 11번"이라며 "이렇게 보면 각 의원들 간의 기록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부연설명까지 친절하게 했다.
 

 이 정도의 객관적 사실만으로도 이 총리의 '모른다' 발언은 구차해 진다. 그러니 사이버상에는 음료박스를 패러디한 '비타시리즈'가 등장하고 한나라의 총리가 코미디물의 주제가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딱한 일이지만 이제 아무도 총리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대통령의 부재기간 동안 직무대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코미디다. 곤혹스럽기는 박근혜 대통령이 첫째겠지만 그를 보고 있는 여당 쪽은 당장 4·29 재보선에 속이 타들어 간다. 그와 관련된 뉴스가 나올 때마다 그가 대통령의 아바타로 행사에 등장해 말을 할 때마다 표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래도 그는 당당하다. 대통령이 남미로 떠나는 날 그는 앞으로 2주 동안 대통령을 대신해 국정 운영을 통괄하는 데 있어 "전혀 흔들림 없이 국정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어제 첫 외부 일정으로 4·19 혁명 기념식에 참석해 국민들을 향해 연설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4·19 혁명은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 국민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나라를 꿈꾸었다"며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한층 더 성숙시켜 국가의 품격을 드높이고 세계 속에 당당한 선진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외쳤다.
 

 난감한 일이다. 내려놓지 않는 이가 움켜쥐면 아귀의 힘은 몇 배로 늘어난다. 내려놓길 기다리는 사람들의 답답함은 안중에 없다.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 부정하고 변명했던 일들이 더 부끄럽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아귀에 들어간 힘은 습관이 되기 마련이다. 이 쯤되면 까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하다. 혼자 집무실에 갇혀 있으면 답이 없다. 스스로 이완구라 쓰고 대통령 직무대행이라 읽고 싶겠지만 이제 국민들은 아무도 그를 이완구로 읽지 않는다. 이완구로 쓰고 '모른다'로 소리 내는 시간이 오기 전에 스스로 이름을 쓰고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읽어주길 기다리고 있다. 그만하면 넘치는 잔을 들었다고 생각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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