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시는 기억의 집합'이라고 건축가 승효상은 말했다. 그런데 울산은 그동안 이 기억을 차곡차곡 잘 쌓지 못했다. 급격한 개발가도를 달린 탓에, 그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지금도 기록에 인색하단 점이다. 기억은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한 쉽게 잊혀지고 만다.


 그나마 최근 변화하는 도시경관을 기록하고, 사라지는 마을을 동영상으로 남기는 등 개선된 부분은 있다. 그러나 도시의 외형 뿐 아니라 정치, 산업, 경제, 문화 등 우리 삶을 결정짓는 수많은 요소가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다. 이를 체계적으로 조사, 집필하지 않다가 수십년에 한 번 있는 시사편찬 시기에 맞춰 부랴부랴 밀린 숙제처럼 하다간, 후손들에게 제대로 된 기록을 물려주지 못한다. 일각에서 시사편찬위원회의 상설화를 주장하는 것은 이 기억을 제대로 기록, 후손들에게 남겨주자는데 그 의미가 있다.


 그런데 더 큰 이유도 있다. 시사편찬위가 제대로 자리잡으면 이곳이 울산학 연구의 메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취재차 부산시사편찬위를 찾았다가, 거기서 보고 깨달은 바다. 그동안 여기서 펴낸 부산 지역사 책만 100여권에 달한다. 부산 고지도, 부산 금석문, 부산학 연구 문헌 목록집 등 부산 뿌리찾기 관련 책 목록은 특히나 부러웠다. 울산에선 울산금석문, 울산지리지 등 기본적이고 중요한 책들이 뒤늦게 발간됐음에도, 그 완성도를 두고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 '국제시장'이나 부산국제영화제를 낳았던 힘은 부산의 근본을 제대로 알려는 노력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늘 얘기되는 정체성 찾기다. 부산시사편찬위는 영화 개봉보다 훨씬 더 앞서 국제시장에 대해 이미 디지털부산문화대전에 방대한 자료를 구축해 두고 있었다. 자갈치시장이나 영도, 진시장, 샌텀시티 등 특색있는 콘텐츠 역시 디지털로 누구나 활용이 쉽게 구축했다. 이런 1차 자료를 통해 다양한 2차, 3차 콘텐츠를 만들 수 있고 이를 돈벌이로도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시사편찬위가 상설화된 곳은 서울, 부산, 대전이 전부다. 인천, 광주 등 상설화했다가 울산처럼 폐지한 도시가 많다. 상설화 된 세 도시의 면면에서 선진도시의 또다른 얼굴이 보인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