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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나뭇잎이 커지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가 다르게 촘촘해지는 나뭇잎을 보고 있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고 해서 요놈들이 어떻게 제 살을 부풀리는지 보고 싶었다.
 아파트 앞 가로수가 무슨 나무인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이팝이다. 저 쌀알이 터지는 순간을 보았으면 싶어서 장바구니를 든 채로 한참을 올려다보다가 돌아왔다. 처음인 듯 해마다 봄이 신비롭고 생명이 눈부시다. 4월의 나무는 꽃보다 찬란하다.
 오늘 학교에서 신체검사를 하고 온 아들이 제 키가 170cm를 넘었다고 좋아라며 벽에 붙은 보드에 몸무게를 적어뒀다. 놀이동산에서 키 140cm가 안 되면 탈 수 없다는 자이드롭을 까치발로 북북 우겨 겨우 탔던 게 얼마 전 일인데 어느새 내 키를 넘었다. 날 때 몸무게가 1.68kg이었던 녀석이 저렇게 컸다. 창밖의 나무와 감히 견줄 수 없는 사철 푸르른 나의 나무가 여기 있었구나. 식탁에 앉아 간식을 먹는 아들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다.
 무엇이든 잘 먹는 아들이지만 한창 자라는 때라 늘 간식이 고민이다. 인스턴트나 너무 자극적인 것은 먹이지 않으려고 신경 쓰는데 그런 걱정을 덮어버린 것이 바로 쑥떡이다. 향이 강한 쑥떡을 안 먹는 아이들이 있어서 과연 먹을까 했는데 넙죽 받아 씹더니 꿀떡 소리 내며 삼켰다. 그러더니 며칠 뒤 엄마, 지난 번에 먹었던 쑥떡 또 없어요? 하는 것이었다. 어, 이 녀석 좀 보게.
 나는 어렸을 때는 쑥으로 된 음식을 다 싫어했다. 쑥국을 끓여 놓으면 숟가락을 꾹꾹 눌러 국물만 먹는다고 혼난 적이 여러 번이고, 쑥떡을 입에 넣으면 고물만 넘어가고 떡은 고대로 입 안에 남기 일쑤였다. 그런 엄마를 닮지 않고 쑥떡을 덥석 털어 넣는 모습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쑥떡을 만드는 게 연례행사가 된 것이 몇 년 전부터인데 지금이 쑥의 계절. 바로 쑥떡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계절이다.
 어린 것은 쑥떡을 할 쑥 양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에 웬만큼 자란 지금 쑥이 딱이다. 더 머뭇거리면 쑥대가 나무꼬챙이처럼 뻣뻣해지고 줄기에는 심지가 박힌다. 쑥을 캐는 단계도 넘어서 숫제 낫으로 베어야 한다.
 산더미만한 쑥을 모아 집으로 가져오면 그 때부터 떡 만들기 준비가 시작된다. 먼저 수십 번 먼지를 씻어낸 다음 데치고 또 데친다. 그 다음 불린 찹쌀과 데친 쑥을 들고 방앗간으로 가는 것이다. 이 때 친정에서 농사지어 볶은 콩을 빻아 고물을 만들면 최상의 간식이 만들어지는데 이 날 밤부터 아들의 쑥떡 삼키는 소리가 꿀떡 꿀떡 집안에 들리기 시작한다. 
 나에게도 이 쑥떡은 참으로 요긴하다. 끼니를 거르고 운전을 하거나 버스를 타고 갈 때는 호두과자처럼 작게 떼어 고물에 굴려 들고 다니면서 먹는다. 가끔 밥보다 간편하고 든든하다. 
 이렇게 한두 해 떡을 하다 보니 나름대로 쑥떡 전문가가 되어서 떡 맛에 여간 민감한 것이 아니다. 떡도 먹어 본 사람이 먹을 줄 안다고 미세한 맛의 변화도 감지하게 되는데 맛의 비결은 바로 방앗간 선택에 있다.
 친정에서 가까운 언양에는 방앗간이 많다. 저마다 전통과 실력을 내세우지만 B방앗간에는 유난히 사람들이 붐빈다. 봄 한 철 쑥떡을 하려는 사람들의 보자기가 줄을 지어 있으면 바빠진 주인 여자의 신경질 섞인 소리가 방앗간에 가득 찬다. 그래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 건 그 집 떡 맛이 단연 으뜸이기 때문이다. 나도 한 번은 주인 여자의 짜증에 빈정이 상해서 B방앗간에 발길을 끊은 적이 있는데 얼마 뒤 또 그곳을 찾아가니 입맛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입맛이 변한 것인지 생각이 변한 것인지 나이를 먹고 보니 음식을 그저 맛으로만 먹지 않는다. 음식에서 나는 향기를 음미하고, 어디서 왔는지 고향을 따지게 되고, 그것을 받아들일 내 몸을 생각하게 되니 음식도 이제 코끝으로 혀끝으로 판단해 대충 삼킬 수가 없다. 이쯤 되니 쑥떡 가득 든 냉동실이 곡식 그득한 곡간처럼, 교복 입은 아들의 넓은 등처럼 보고만 있어도 흐뭇해진다.
 쑥떡을 좋아하는 아들한테 일 년  내내 쑥떡만 먹일 수는 없지만 지겹도록 내 놓아도 손을 뻗어주니 고맙다. 물엿으로 범벅된 닭강정이나 설탕 덩어리인 막대 사탕 맛 말고도 제대로 된 음식 맛 한 가지 확실히 아는 것도 대견하다.
 너무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지지 않고 자연의 맛을 아는 사람, 입맛처럼 깊고 순한 사람이 돼 주면 좋겠다.
 꿀떡 꿀떡 쑥떡 삼키는 소리, 내 아이의 나무가 커 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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