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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사

뭐, 딱히 기대할 것도 없지만 말 그대로 개판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 이야기다. 인터넷 상에서 '봉숭아학당'으로 회자되는 야당 최고위원회 회의는 문재인 대표의 사과로 일단 수습 국면을 맞았다. 문 대표는 "지난 금요일 최고위에서 민망한 모습 보였다"며 "국민과 당원들께 큰 실망과 허탈감을 드려, 당을 대표해서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정작 사과의 당사자는 나타나지 않은 채 대표가 연대책임을 지는 모습은 안방에 불이 나니 거적이라도 들고 달려드는 형국이다. 문제의 입인 정청래는 그날 몇 자리 건너 앉은 주승용을 향해 "사퇴할 것처럼 공갈친다"고 막말을 퍼부었다. 발끈한 주승용이 회의 도중 사퇴를 선언하고 퇴장하자 이번에는 유승희 최고위원이 '봄날은 간다'라는 막걸리집 18번을 거침없이 부르며 분위기를 띄웠다. 가관이다.

 그래도 정청래는 당당하다. 당내에서 일고 있는 '사과와 징계' 요구는 안중에 없고 가수로 겸업을 선언한 유승희는 "지난 최고위에서 제 의도와 달리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다. 재보선에서 전패를 당한 야당의 현주소다. 봄날이 가듯 민심도 떠나고 있지만 정청래는 견고한 지지층만 있으면 된다는 계산이다. 바로 '싸가지 없는 진보'의 정체성을 잃지 않겠다는 속셈이다.

 정청래. 그는 누구인가. 지난 2013년 국정감사를 앞두고 미국 국무부로부터 미국행 비자를 받지 못한 국회의원이 있었다. 바로 정청래다. 미국이 혈맹을 외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에 대해 비자를 내주지 않은 이유는 그의 반미 이력 때문이다. 그는 지난 1989년 서울 정동 주한 미 대사관에 밤을 도와 담을 넘었다. 시너를 뿌리고 방화를 시도하던 그는 의기투합한 동지 6명과 함께 구속됐다. 미제 앞잡이를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진정한 자주 독립의 한반도를 건설하겠다는 열혈 청년이었다.

   그런 이력 때문인지, 그는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후 줄곧 반미 친북적 이미지를 유지해왔다. 지난 2014년 잇따라 발견된 무인기 사건 당시 정청래는 '북한에서 보낸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북한 무인기라고 소동을 벌인 것에 대해 누군가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할 날이 올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한미 양국 전문가들의 공동조사 결과 해당 무인기들은 모두 북한에서 발진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말의 흔적은 활자에만 있을 뿐, 그의 발언은 봄날처럼 사라졌다.

 2선 국회의원으로 야당 최고위원까지 오른 정청래가 문재인보다 더 유명세를 타는 이유는 유난히 빨간 그의 입 때문이다. 지난 2월 그는 국회에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거짓말을 했다가 하야했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치 생명을 걸겠다고 해놓고 (대선 때 했던) 약속을 못 지켜 거짓말 한 것으로 드러났으니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대답하라"며 사실상 박 대통령의 하야를 거론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 개입 혐의를 유죄로 판결했을 때도 "박 대통령은 어떻게 책임지겠는가. 대통령직은 유효한가"라며 대통령 거취 문제를 제기했다. 한 두 번이 아니다. 대통령 이름을 놀림감으로 사용하며 '바뀐애'로 재미를 봤는지 대통령을 물고 늘어지면 스스로 위상이 올라간다는 학습론이 힘이 됐다는 평가도 있다.

 정청래의 막말 저질 발언은 굳이 대통령이나 여당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번에 같은 당 주승용 최고위원을 향해 '공갈' 운운했지만 이미 그는 지난 2월 청운의 꿈을 안고 야당 대표로 취임한 문재인 대표가 국민통합 행보의 일환으로 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자 '유대인의 히틀러 묘소 참배' 발언으로 찬물을 뿌렸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그의 입이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터져 나올지 야당 내부에서도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묘한 상황이 돼 버렸다.

 묘한 일이지만 최근 들어 여의도에 '정치 풍자개그' 바람이 불고 있다. 양대 지상파 개그 코너에는 최근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정치적 사건에 개그를 입혀 대중의 답답한 속을 긁어주고 있다. 물론 정치 풍자라기엔 본격적인 사안에 대한 풍자나 비틀기는 찾기 어렵지만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막말보다는 한수 위라는 게 중론이다. 지난 2012년 대선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정치 풍자개그가 부활한 것은 현재 정치권에 비판할만한 굵직한 소재들이 많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상대를 향해 내뱉는 발언이 개그의 수준보다 아래라는 현실은 부끄럽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내뱉은 발언에 대해 부끄럽다는 사실조차 부정하고 연일 빨간 립스틱만 바르며 새로운 립스틱을 고르게 만드는 우리 정치 현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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