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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그나마 볼만한 곳이 코이다. 눈은 나이가 드니 눈꺼풀이 처져 가뜩이나 작은 눈이 더 작아 보이고, 눈썹은 원래 희미해서 문신으로 간신히 모양을 잡아 놓았다. 이마엔 벌써 주름이 잡히고, 안색은 창백해서 화장을 안 하고 나서면 꼭 어디 아프냐는 소리를 듣는다. 이런 얼굴에 그나마 오뚝하니 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코다.

 내 코는 아버지의 코를 닮았다. 아버지의 젊을 때 사진을 보니 뚜렷한 이목구비에 꽤 미남이셨는데, 나이가 드시니 농사일로 검붉게 탄 주름진 얼굴 가운데 코만이 오뚝 살아계셨다. 아버지 여덟 형제분은 다 코가 높고 큰 편이다. 그중에서 가장 코가 잘생기고 오뚝하신 분이 넷째 아버지였다.

    관상학적으로 코가 오뚝하면 재복이 많은 상이라는데, 내가 보건데 코에 관한 한은 맞지 않는 것 같다. 아버지는 평생 재물과는 인연이 없으셨고, 넷째 아버지도 부자는커녕 박복하고 가난하게 사셨다. 딸을 하나 두고 넷째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이렇다 할 직업 없이 여생을 손바닥만한 비탈밭을 일구며 술로 시름을 달래셨다. 그 딸이 시집을 간 뒤로 병든 노구를 의지할 데가 없어 돌아가시기 전에는 우리 집에 와 계셨다.

 아들이 없는 넷째 아버지는 우리 작은오빠를 양자 감으로 점찍어 놓고 아버지에게 은근히 졸랐는데, 어머니가 없는 집에 양자로 보내면 평생 고생이라고 한사코 막으셔서 성사되진 않았다. 하지만 병이 깊어지자 우리 집 사랑방에 모셔두고 마침 군에서 갓 제대한 작은 오빠가 병수발을 든 것이다.

    작은 오빠도 내막을 아는 지라 친아들 못지않게 병구완을 하여 칭찬이 자자했다. 말년에야 겨우 동생네서 안정을 찾은 셈이지만 오래지 않아 돌아가셨다. 지금도 넷째 아버지가 타구에 가래 뱉는 소리와 욕창으로 신음하며 앓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 박복함이 이와 같았으니 코가 잘생겼다고 부자로 산다는 관상학적 견해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작품 중에 '코'라는 단편이 있다. '겐치 나이구 큰스님의 코라고 하면 이케노오 지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길이는 대여섯 치나 되어 윗입술 바로 위에서 턱 아래까지 늘어졌고, 모양새는 밑이나 끄트머리나 한결같이 굵직했다. 말하자면 좁고 기다란 순대 같은 것이 얼굴 한복판에 덜렁 매달린 꼴이었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이상하게 생긴 코 때문에 놀림거리가 되어 고민하는 한 스님에 관한 이야기다.

 겐치 스님은 코를 작게 만드는 비법이라는 제자의 말을 따라 끓는 물에 코를 삶는다. 다행히 코는 작아지고 겐치 스님은 그런대로 만족하지만 사람들의 놀림이나 비아냥은 줄어들지 않는다. 혼란을 느낀 겐치 스님은 다시 코가 길어지길 바라게 되고, 코는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코가 원래대로 되어서 겐치 스님은 행복했을까?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이 소설은 타인의 불행에 기뻐하는 인간의 심리를 비판하는 한편, 자아를 상실하고 남의 평판에 줏대 없이 흔들리는 인간상을 풍자한 작품이다.

 그런데 류노스케는 다른 부위도 아닌 코를 왜 자아의 상징으로 보았을까. 아마 코가 얼굴 가운데 있고, 얼굴의 여러 부위 중 가장 높다는 위치 상징성이 어우러진 결과일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관용어에도 코와 관련된 것이 많다. 잘난 체하고 뻐기는 경우 '코가 높다'하고 반대로 몹시 무안을 당하거나 기가 죽었을 때는 '코가 납작해졌다'고 한다. 상대편의 기를 꺾는 것을 '콧대를 꺾는다'하고 주변에 끼치는 영향력이 클 경우 '콧김이 세다'고 한다. 이를 통해 본다면 코는 단순한 재복의 상징이 아니라 자부심, 자긍심과 같은 자아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신체 부위인 셈이다. 그러니까 코가 높은 사람은 재물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관상에 대한 해석을 수정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본다면 비로소 맞는 것 같다. 아버지나 넷째 아버지나 남산골샌님 저리가라 할 정도로 꼬장꼬장한 자존감으로 한 평생을 사신 분들이니까. 굶을지언정 다른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 하기 싫어하고, 비록 농사를 짓지만 어릴 때 한학을 배운 까닭인지 마음만은 유학자에 다름없으셨다.

    어머니는 '양반이 밥 먹여주나'고 불평을 하셨지만, 접빈객을 삶의 도리로 따르고 없는 살림이지만 손님치레에 소홀함이 없으셨다. 주머니에 있던 돈을 몽땅 털어 친구 분을 주시고 삼십 리 길을 걸어오셨다던 아버지. 끼니가 간 곳 없지만 마지막 양식을 내어 모처럼 온 친구와 통음하셨다는 넷째 아버지. 답답해 보일지 모르지만 당신들 나름대로 세상을 사는 방식이자 원칙이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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