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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사

아무리 수긍해 보려고 해도 참 딱하다. 광주 이야기다. 5·18 전야제에 참석했던 여야 대표가 욕설과 야유를 받았다. 한쪽은 '님을 위한 행진곡' 때문이고 다른 쪽은 재보선 패배 때문이다. 장면이 바뀌고 아침이 되자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졌다. 정부 주관의 5·18 민주화운동 35주년 기념식에서 제창 여부를 놓고 논란이 됐던 '님을 위한 행진곡'이 합창되자 기념식에 참석했던 여야 정치인들은 각자의 정체성을 다양하게 드러냈다.

 정의화 국회의장과 새누리당 김무성,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합창이 시작되자 노래를 따라 불렀지만, 정치인 출신으로 정부를 대표해 참석한 최경환 국무총리 대행은 제창하지 않았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 이슈가 되고 이를 따라 부르는 게 뉴스의 초점이 되는 기묘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풍경은 뭐 딱히 표현하자면 우스꽝스럽다.

 문제의 발단은 이명박 정부 시절로 올라간다. 또 이명박인가 싶겠지만 그렇다. 지난 2009년부터 '님을 위한 행진곡'은 참가자가 모두 부르는 제창이 아닌 합창단이 부르는 합창 형태로 불리고 있다. 왜? 좌파노래니까 함께 부르는 게 싫다는 이야기다.

 이날도 그랬다.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성악가와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자, 참석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태극기를 흔들며 따라 불렀다. 하지만 정부 대표로 참석한 최경환 총리대행과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노래가 끝날 때까지 입을 굳게 다문 채 듣기만 했다. 정부의 '제창 불허' 방침을 몸으로 보여준 셈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중략) 이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윤상원과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1981년 작곡됐다. '님을 위한 행진곡'으로 적고 있지만 표준어 규정에 따라 공식적인 이름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정부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이 노래를 제창이 아니라 합창으로만 부르도록 했다. 왜 정부는 제창에 그토록 목숨을 걸까. 정부의 논리는 복잡하다. 일부 보수단체 중심의 반대를 근거로 국가보훈처는 이 노래를 좌파적 노래, 불온한 노래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 1991년 황석영·리춘구(북한 작가)가 공동 집필해 제작한 북한의 5·18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곡과 유관성을 거론하며 국민 통합이 저해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보훈처의 반대 이유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좌파나 운동권이 즐기는 노래를 국가행사에서 함께 부르는 게 싫다는 이야기다. 문제가 된 이 노래는 1982년 2월 윤상원과 박기순의 유해를 광주 망월동 공동묘지(현 국립 5·18 민주 묘지)에 합장하면서 영혼결혼식을 거행할 때 처음 공개됐다.

 이 노래는 80년대 이후 우리 대학가에서 줄기차게 불려지다가 80년대 말부터 거세게 일어난 노동운동 현장에서 '철의 노동자'와 함께 대표적인 운동가로 자리했다. 그렇다고 이 노래를 좌파의 노래로 규정하고 정부행사에서 제창을 불허할 만한 이유가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노래는 노래일 뿐, 굳이 의미를 덧칠하지면 지나간 시절의 아련한 '기억'일 뿐이다.

    그래서 국민 통합에 반하는 노래라는 보훈처의 주장은 억지스럽다. 보수 색채가 강한 40대 이후 기성세대들이 과연 이 노래를 얼마나 좌파의 노래로 인식하는지 묻고 싶다. 깨놓고 말해 젊은 시절 한번쯤 '산자여 따르라'를 외치며 노래를 흥얼거리지 않은 이가 있을까. 입을 굳게 다물고 정부 방침을 몸으로 보여준 최경환 부총리나 보훈처장에게 정말 그런 적이 없는지 묻고 싶다. 그들이 한번도 그런 적이 없다면 그만이지만 흥얼거림 조차 없이 젊은시절을 보냈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노래가 이념을 담고 노래로 정치적 야심을 실현하겠다는 불순한 무리들도 있다. 그런 것이라면 당연히 합창도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님을 위한 행진곡'은 아니다. 광주가 전두환 군부의 군화에 짓밟힐 때 이 땅의 대다수 지성들은 침묵했다. 그들 중 일부는 보수가 됐고 또다른 일부는 진보가 됐다. 이들중 일부는 종북 좌파가 되기도 했지만 그들 모두가 침묵했던 양심을 침회하듯 부른 노래가 '님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그런 노래를 두고 님이 되고 남이 되는 경계에 서게 해서 어떻게 앞으로 행진하라고 하는지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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