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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효산 화엄벌 진달래 군락지.


# 원효가 창건한 원효암
원효암은 원효산(922m) 정상아래 약 800m 지점에 위치한 암자로 신라 선덕여왕 15년(646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옛날 원효대사가 수도할 때 이상한 물체가 이곳에서 천둥과 번개를 동반해 성지로 여겨져 왔다. 전설에 의하면 중국의 장안성 내에 있던 1,000여 명의 승려들이 천성산 석굴에 있는 원효대사를 찾아와 법문과 가르침을 받고 모두 성인이 됐다고 한다. 열반에 오른 이들은 모두 바위가 됐고, 그래서 원효산이 '천성산'이라 불린 것이다.
 

봄에는 철쭉 가을에는 억새로 장관 연출
원효산 정상아래 800m 위치한 원효암
원효가 수도하던 석굴 그대로 남아있어
산 정상 본모습 되찾기 생태계 복원 한창



▲ 원효암 암자.
 원효암의 천길 벼랑 위에는 그때 원효대사가 수도하던 석굴이 그대로 남아 있고, 지금도 기도인들이 많이 찾아오는 유명한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법당 앞마당에 서면 남쪽으로 우뚝 솟은 금정산 고당봉과 그 오른쪽으로 양산시내와 낙동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멀리 부산과 일본의 대마도, 양산과 울산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천혜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원효암은 1991년 7월 20일 밤 천성산 정상에 벼락이 내려쳐 이튿날 이른 아침 승려가 벼락 맞은 바위로 다가가보니 깨져나간 바위면에 부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한다. 하여 이후 불자들이 급격히 늘어난 사암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원효암 경내에는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불을 모신 법당 등이 있으며, 주변의 산새가 뛰어나 마치 병풍을 펼쳐 감싸 안고 있는 듯하고, 금방 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호법신장바위, 관음바위, 거북바위 등이 있다. 특히 신장바위는 원효대사가 원효암을 떠날 때 "저 바위가 떨어지면 내가 열반한 것으로 알라"고 유언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곳에서 홍룡사-1.8km, 화엄늪-1.7km , 홍룡사 주차장-2.3km , 천성산2봉-3.6km 이다.
 원효암을 둘러본 뒤 오른쪽 절 마당을 지나 30여m를 빠져 나오면 왼쪽 소나무 숲 사이 로 올라가는 사이길이 보인다. 소나무 숲 사이를 지난 뒤 원효산 정상으로 가는 군사도로와 이어지는 길을 만난다. 약간의 경사길이 이어지고, 왼쪽으로 급격히 휘는 지점 오른쪽 철조망 옆으로 안내 표지판이 있다. 산 정상이 개방되기 전까지는 이 이상은 민간인들의 출입이 통제됐었던 곳이다(공군 허큘리스 미사일 방공부대가 주둔했던 곳). 왼쪽 포장된 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여기서 원효산 정상 까지는 10여분 정도 걸린다.


▲ 원효암 호법신장바위.
 드디어 원효산 정상에 올라선다.
 정상은 군부대 시설이 철거되고 안전 펜스와 갑판길이 잘 조성돼 있다(펜스 이외는 지뢰 매설지역). 탐방로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안전하게 산행을 할 수 있다. 원효산 정상은 본래의 보습을 되찾기 위해 생태계 복원 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 이곳은 봄에는 철쭉과 가을에는 억새가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북동쪽으로 펼쳐지는 억새평원은 옛날 원효대사가 1,000여 명의 대중에게 화엄경(華嚴經)을 강의했다는 전설이 있어 일명 화엄벌이라고 한다. '송고승전'에 따르면 원효 스님이 중국 당나라 태화사의 승려들이 산사태로 매몰될 것을 예견하고 '해동원효 척판구중'이라고 쓴 현판을 날려 보내 그들을 구했다고 한다. 그 인연으로 1,000명의 중국 승려가 원효대사의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왔고 원효는 그들을 위해 천성산에 89개의 암자를 지었다고 한다.

# 원효-의상대사 의형제 맺은 화엄벌
원효산 정상에서 안전 펜스와 갑판길을 따라 아래로 조심스럽게 내려오면 길은 다시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등로는 천성산 2봉(비로봉)으로 향하는 등로이고, 화엄벌은 왼쪽으로 이어지는 등로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다양한 방향으로 하산길을 선택할 수 있다. 정상에서 북·서릉을 따라 곧장 내려서면 화엄벌을 거쳐 내원사 입구 상가단지로 하산 할 수도 있고, 제2봉에서 법수원 계곡을 따라 원적암 방향이나 미타암 굴법당을 탐방한 다음 웅상읍 주진리 방면으로도 하산을 할 수 있다. 화엄벌로 발길을 재촉해본다. 화엄벌은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의형제를 맺은 곳이라는 전설도 전해진다. 9만여 평에 이르는 평원이 눈 앞에 펼쳐진다. 산 정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지금도 화엄벌에는 사육배판(四六倍版) 정도의 면적에 풀이 안 나는 곳이 여러 군데 있는데, 그곳은 원효대사가 화엄경을 강독한 장소라고 한다. 지금은 습지를 보존하기 위해 줄로서 경계를 두었다. 또한 이곳 화엄늪(습지)에는 앵초, 물매화, 끈끈이주걱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습지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 원효스님과 천성산에 얽힌 이야기
원효스님이 중국에서 온 1,000명의 제자와 함께 원적산 내원암에 자리를 잡은 뒤였다. 그런데 워낙 많은 대중이라 식량이 부족해 지금의 상북면 대석리 '모래불'이라는 동네에 거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원효스님은 쌀 한 되 가량 들어갈 수 있는 바랑을 가지고 시주를 구하러 갔다. 하인이 쌀 한 되를 가지고 나와 바랑에 부으니 반도 차지 않았다. 이상히 생각한 하인은 또 한 되를 넣고 이를 거듭해도 여전히 차지 않아 너무도 이상한 사실을 주인에게 고했다. 주인은 범상치 않은 도사임을 깨닫고 허리 굽혀 그 소원을 물은 즉, 원효스님은 1,000명 제자의 식량이 부족하다는 사유를 말했고 주인은 쾌히 해결해 줄 것을 승낙했다. 그로부터 '화엄벌'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그 산을 1,000명의 성인들이 산다해 천성산(千聖山)이라 부르게 됐으며, 또 그곳에 절을 짓고 원효암이라 일컬었다고 한다.
 

▲ 원효암 아미타삼존상.
# 원효스님의 도술
지금도 천성산 일대의 칡덩굴은 다른 곳에 비해 매우 짧다. 그 이유는 스님이 제자와 더불어 수도할 당시 한 제자가 마을에 동냥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만 칡덩굴에 걸려 넘어지자 쌀과 밥이 모두 쏟아진 일이 있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스님은 이튿날 그 제자에게 흰 종이 한 장을 주면서 그 자리에 버리고 오도록 했는데, 그 이후부터 칡덩굴이 길게 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화엄벌에서 하산하는 길도 여러 곳으로 열려 있다. 화엄늪 습지 감시초소를 지나 곧장 내려서면 양주중학교 방향이나 용주사가 있는 지푸네골로 하산할 수 있다. 만약 가지고 온 차를 감안한다면 습지 감시초소 조금 못 미치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면 홍룡사로 원점회귀가 가능하다. 멀리 바라보이는 영축산과 이어지는 시살등, 한피고개, 오룡산이 날 일자로 길게 뻗어있고, 북으로는 정족산과 천성산 공룡능선이 손에 잡힐 듯이 이어진다. 홍룡사로 이어지는 하산 길은 초입부터 약간의 경사길이 연속된다. 그러나 길은 그리 위험하지 않다. 전형적인 흙길 이어서 쉬엄쉬엄 1시간여 내려오다 보면 홍룡사 절 마당에 도착한다. 홍룡사 경내를 둘러본 뒤 가홍정 정자 앞 쉼터에서 당시 자연에 은거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추구했던 석은 이재영의 그림 같은 시를 떠 올려보며 오늘 산행을 마무리한다.
 산악인·중앙농협 달삼지점장
 

천성산 그림 같고 골짜기는 푸른데
한 물결 무지개 폭포 신령한 구역을 깎아냈네
특별한 곳 우뢰 울리니 맑은 낮에 비가 오고
위태한 바위에 꽃이 피니 저녁 구름이 가리네.
몇 칸 엉성한 건물 누가 될 법하지만
반세상 찌든 근심 일깨워 줄 만하다
고마워라 동남지방 지나가는 과객들
올라오는 패옥소리 모두가 난초향기로다.
- 이재영의 칠언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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