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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와 역사시대는 문자기록의 유무를 기준으로 해서 구분한다. 그만큼 역사연구에서 문자기록 즉 문헌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특히 고대사 분야에서는 기록이 중시되는 문헌자료도 가치 있지만 출토 유물이 오히려 더 많은 역사를 말해 주는 경우가 있다.
 작은 돌조각이나 기와파편을 통해 역사의 비밀이 밝혀지는 등 기록이 전하지 못하는 역사를 알려주기도 한다. 또한 문자기록은 전문가들의 해석이 있어야 분명한 역사사실을 알게 되지만 유물은 문헌보다 훨씬 많은 사연과 정보를 담고 있다. 문헌이 전하지 못하는 부분을 밝혀주는 또다른 단서가 된다. 물론 유물의 정보를 읽어내려면 다양한 학문 지식과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를테면 기와에 찍힌 도장을 보면 기와의 생산자가 누구인지, 어디 있었던 가마에서 생산했는지를 알 수 있고 생산 연대와 사용처의 파악도 가능하다. 대곡박물관의 기와 특별전을 보면서 이같은 다양한 얼굴의 울산 역사를 읽을 수 있었다. 도슨트들의 안내는 친절하고 관람객의 수준에 맞춰 깊고 넓게 해설해 주었다. 시대별 조형미를 나타내는 기와 문양은 하나하나가 당시의 상황이나 문화를 이해하는데 작은 열쇠가 된다. 고대 인도 문자로 불경을 기록한 주요 문자였던 범자(梵字)를 새긴 기와, 불법의 수호신인 용(예전에 鬼面이라 해석했던 그림)이나 사자 그림을 새긴 기와, 연꽃과 덩굴식물무늬, 새 그림 등의 문양은 옛 사람들의 사상과 염원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들은 새가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천상과 지상의 세계를 이어준다고 믿었고 신령스럽고 상서로운 기운은 구름이나 연꽃, 덩굴식물로 표현했다. 용이나 사자는 부처를 상징하는 동물이니 사찰건축에 사용된 기와였을 것이고 연꽃이나 모란, 귀신의 눈(鬼目)은 고려시대에 주료 사용되었던 수막새라 한다.
 장천사지 출토 기와는 특이하게 역삼각형이고 한껏 멋을 부린 타원형수막새, 사찰의 중건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이름과 역할을 기록한 기와도 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하고 역사의 시간을 견디어 낸 기와에서 옛 사람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글씨와 문양은 모두 당시 울산의 문화와 미학 수준을 알려주는 것으로 백제 와박사는 아닐지라도 울산 기와공들의 손길을 느낄 수가 있다. 죽육사(竹六寺)란 사찰이름은 아직도 지역에 생소한 만큼 전문가들의 연구가 있어야겠고 굴정(屈井) 굴화(屈火)란 글자도 생산지를 말하는지 세력범위를 나타내는 것인지 좀 더 밝혀 주면 좋겠다.
 반구동 유적을 비롯해 영축(취)사지, 운흥사지 출토 기와, 대곡천 유역의 방리 사지(백련사지)와 장천사지 출토 기와도 나름대로의 건축 규모와 역사를 자랑한다. 시간적으로 봐도 신라시대부터 고려 때까지 무려 1,500년이란 흥망의 세월을 안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기와는 금속공예품의 화려함이나 토기의 다양성에 밀려 매우 소홀히 대접받았다. 너무 흔하다 보나 방치되거나 버려지고 외면당하기도 했다. 이제 대곡박물관의 울산 기와 특별전을 계기로 울산기와에 대한 관심과 재평가가 있어야겠다. 발길에 차이는 기와조각이 얼마나 많은 역사를 말해주는지? 지붕에 비 새는 것을 막기 위한 단순한 건축재가 아니라 뛰어난 장식기능과 미적 감각까지 갖춘 작품으로 이해하고 말하려고 하는 역사의 단편을 찾을 수 있어야겠다. 그래서 울산 기와공들의 솜씨를 새롭게 맛보았으면 한다.
 기와가 말해주는 울산의 역사-전시기간만이라도 많은 분들의 애정과 관심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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