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필자가 1992년 대전지방국토관리청장으로 근무할 때다. 그해 11월 대덕연구단지 준공식이 있었다. 허허벌판이던 곳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정부출연연구소, 기업부설연구소 등이 들어서면서 국내 최대 연구단지가 조성됐다. 필자는 이것을 보면서 한편으로 아쉬움을 느꼈다. 연구·학원단지로 조성된 당시의 대덕연구단지는 생산시설이 허용되지 않았고, 주변에는 내세울만한 공단이 전혀 없었다. 이 정도 규모의 연구단지가 울산에 조성됐다면 근처 공단 기업들과 낼 수 있는 시너지 효과는 막대했을 것이다.

 한국경제를 지탱해 왔던 4대 주력산업인 전자·자동차·철강·조선이 위기상황에 직면했다는 언론보도는 더 이상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글로벌시장을 선도하는 신규상품이 없고 엔저에 따른 수출경쟁력 둔화가 부진을 초래하고 있다. 유가 급락으로 석유화학산업마저 침체일로인 울산경제는 이미 비상등이 켜진 상태다.

 노동집약적이고 시설이 노후화된 대형장치산업을 특징으로 하는 울산의 주력산업들은 5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필연적으로 쇠퇴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 중심으로 협력업체가 집적돼 있는 산업구조도 대기업 업종의 부침에 따라 같은 운명을 겪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울산산업 발전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가장 핵심적인 방안은 기술경쟁력을 보유한 강한 중소기업을 육성해 대기업과 조화로운 산업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필요에 따라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할 것이 바로 '히든 챔피언'으로 알려진 독일 모델이다. 히든 챔피언은 '강소형 중소기업'으로 표현되는데 독일은 2012년 기준 전 세계 2,734개 히든 챔피언 중 1,307개를 가지고 있다.

 독일이 이처럼 중소기업을 키워 히든 챔피언을 만들어낸 배경에는 중소기업을 위한 산학연 클러스터가 큰 역할을 했다. 울산과 대전이 산학연 모델로 삼고 있는 독일의 아들러스호프는 산학연 클러스터의 대표적인 곳이다. 아들러스호프는 베를린 근교에 위치한 작은 도시였다. 1990년 독일 통일 후 인력과 자본이 서독으로 빠져나가 공동화 된 이곳에 독일정부와 베를린시는 중소기업을 위한 산학연 클러스터라는 독일형 발전모델을 최초로 도입했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13년 기준으로 독일 전역에 327개의 산학연 클러스터가 형성돼 기업 상호간 협력과 개방형 혁신체제를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의 경우 이제 70여 개의 미니 클러스터가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으니 갈 길이 멀다. 울산에서도 지난 1월 독일 프라운호퍼 화학기술연구소(ICT) 분원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국제산학연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 방안에 따라 UNIST가 주관하는 '고효율 차량 경량화 부품소재 개발사업' 과제에 응모하는 등 자동차산업 고도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울산도 곧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출범할 예정이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정책인 창조경제의 성공을 위해 지난해부터 광역자치단체별로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설립되고 있다. 울산의 경우 메르스 여파로 6월 말까지 마무리될 예정이던 센터 설립이 지연됐지만, 대통령께서 직접 참석하시는 개소식 행사와 함께 센터 운영이 닻을 올리게 된다. 울산은 주력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이미 검증돼 있어 이번 센터 출범으로 효과가 가장 기대되는 도시다. 대기업과 지역 중소기업, 그리고 울산대, UNIST 등 우수한 연구인력 등이 결합해 지역 경제 재도약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울산은 상대적으로 중소기업 비중이 작고 연구인력에 비해 연구소 창업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번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이런 단점을 크게 보완해 줄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산업도시 울산에 대덕연구단지와 같은 연구개발 인프라가 일찍 더해졌으면 울산경제는 훨씬 크게 도약했을 것이다. 산업 사이클을 미리 내다보고 이를 대비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을 계기로 지금부터라도 지역 주력산업의 혁신과 구조고도화가 이루어져 신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독일 드레스덴지역의 산학연 클러스터 성공사례는 울산의 롤 모델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드레스덴 공대가 중심이 돼 대학에서 양성한 인재들이 지역 연구소로 자리를 옮겼고 연구소 수준이 높아지면서 우수한 교수와 연구진이 몰리게 됐으며, 이로 인해 뛰어난 연구성과가 나오자 기술이전과 연구개발을 의뢰하기 위해 중소기업 클러스터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던 것이다.

 지난 3월 국회에서 UNIST의 과기원 전환법이 통과됐다. UNIST는 2009년 개교 후 단기간에 연구중심대학으로 큰 성과를 거뒀고 이제 과기원으로 전환돼 명실상부한 최고 연구기관으로 변모하게 됐다.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과 함께 그간 축적돼 온 R&D 인프라를 활용해 지역 산업과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과기원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설립 과정에서부터 울산지역의 도움과 기대가 컸던만큼 산학연 협력을 통해 지역산업과 경제를 재도약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