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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사 겸 국장

교활하다. 전장의 그늘에는 심각하게 명예와 존엄을 훼손당한 여성들이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베의 문장이다. 전후 70년 담화에서 주목할 문장은 두 가지다. '우리나라는 앞선 대전에서의 행위에 관해 반복해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마음을 표명해 왔고 이런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는 표현이다. 일본인들의 생각도 비슷하다. 우익언론이긴 하지만 교도통신 여론조사에서 아베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중요한 것은 문장이 아니라 문장을 해석하는 마음이다.

 일본인들은 어떤가. 아베 담화가 지난 전쟁에 대한 '사죄'를 거론하는 한편, 차세대에 계속 사죄할 숙명을 지워선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이 사죄 표현으로 적절한지에 대해 묻자 그 속내가 드러났다. '적절하다'가 42.7%, '적절치 않다'가 23.6%, '사죄를 거론할 필요가 없었다'가 24.2%로 각각 집계됐다. 이쯤되면 아베의 반성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런 생각 그런 사고구조를 가진 인물에게 반성을 외치는 이야기는 무의미하다.

 어쩌면 아베는 반성에 대해 "뭘, 반성하라는 거야"라고 외치고 싶을지 모른다. 스스로 반성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가진 이에게 반성을 요구하고 또 억지로 반성을 토하게 한다는 게 의미가 있는 일일까. 문제는 아베의 생각이 아니라 일본인이 가진 보편적 사고의 틀이다. 하토야마가 서대문형무소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무라야마가 반성과 사죄를 연일 외치지만 과연 지금 일본인들 생각이 전직 총리들을 지지하고 있을까. 여론조사는 아니라고 답한다. 아베의 유전인자처럼 일본인 피 속에는 한국인들, 아니 조센징에 대한 뿌리깊은 멸시와 천대의 우월감이 자리하고 있다. 20%의 일본인은 아니라고 하고 싶겠지만 그들은 언제나 조용할 뿐, 혐한과 확성기를 피해다닐 뿐이다.

 이번 아베 담화가 중요한 이유는 광복 70주년이어서도 아니고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기 때문도 아니다. 아베의 입을 뚫어지도록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들 때문이다. 이른바 '위안부'라 부르는 우리의 할머니들이다. 할머니들에게 우리는 어떤가. 반성을 하지 않는 일본 지도자를 손가락질할 당당함은 있는가. 글쎄, 아니지 싶다. 70년 세월을 고스란히 음지에서 살아온 할머니들은 이제 공식적으로 47명이 생존해 있다.

    지난 1991년 8월 14일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대한민국 내 거주자로는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실명으로 공개증언을 한 이후 이듬해인 1992년부터 정부가 각 지역의 읍·면·동 사무소에 '정신대'라는 정신 빠진 이름으로 피해자 신고센터를 설치해 피해 접수를 받았다. 그게 처음이다. 광복 이후 반세기를 침묵으로 일관하다 피해자의 증언이 피를 토하자 움직이기 시작한 게 대한민국 정부라는 이야기다. 몰랐다고 이야기 말자. 우리 동네에서 바로 우리 옆집에 살았던 할머니들이 나라가 없던 시절, 성노예로 끌려갔다. 너무 오래 전 일이 아니냐고 말하고 싶겠지만 바로 우리의 어머니, 우리의 할머니 이야기다.

 부끄러우니 가리고 싶었다. 스스로가 감추고 싶었고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아니 어쩌면 스스로의 남은 삶을 위해 감추어야 했다. 감추지 않으면 손가락질 당했고 심지어 우리 사회에서도 "왜놈에게 몸을 팔았다"고 욕을 들었다. 고려 때나 조선조 때 오랑캐에 당했던 선조들처럼 '화냥년'과 단어만 바뀌었을 뿐 똑같은 상황으로 이땅에서 숨 죽이며 살았던 할머니들이다. 바로 그 성노예 할머니들이 이제 마지막 숨을 고르고 있다. 평균 연령 89세. 신고된 생존자 47명. 쥐도새도 모르게 끌려가고 사라진 소녀가 수만명이라는데 이제 딱 47명만 남았다. 아니, 나도 살아 있다고 말하고 싶은 할머니들도 있다. 바로 우리 옆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우리의 할머니들 중 상당수는 "내가 바로 그 할머니"라고 이야기 하고 싶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베의 입을 바라봤다. 정면으로 그 느끼하고 곰팡내나는 주둥이를 화면이 뚫어지게 바라본 이유는 할머니들 때문이다. 교활하다. "전장의 그늘에는 심각하게 명예와 존엄을 훼손당한 여성들이 있다." 명예와 존엄이라니, 11살 짜리를 끌고가 줄지어 겁탈하던 너의 선배가 명예를 알았고 존엄을 알았을까. 13살짜리 소녀를 발가벗기고 능욕을 반복한 짓거리가 전장의 그늘이라고 둘러댈 문제라 생각하는가. 우라질, 미국놈 X대가리를 핥아대는 혓바닥으로 존엄을 이야기 하지 말자. 3류 사무라이의 피가 흐르는 그 입에서 사죄를 기대하진 않지만 적어도 존엄이니 명예니 하는 따위의 우아한 단어로 과거를 분칠하는 주둥이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왜곡하고 도발하고 막말을 하더라도 미국이라는 거대한 지렛대만 있으면 된다는 인식은 이번에도 통했다. 아베 담화에 대해 미국 정부는 "일본은 전후 70년 동안 평화와 민주주의, 법치에 대한 변함없는 약속을 보여줬으며 이런 기록은 모든 국가의 모델이 되고 있다"고 아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야비한 외교적 수사다. 문제는 사과하고 반성하라고 외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사실이다. 그놈이나 저놈을 탓하기 보단 우리부터 당당해야 할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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