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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대들이 청계천, 여의도 문화마당, 울산롯데광장에 나타났다. 손에 촛불까지 들었다. 그냥 얌전하게 촛불만 든 게 아니다. 집회장의 무대 위에 뛰어 올라가서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기로 결정한 이명박정권을 목청껏 비판했다. 위정자들과 일부 언론들은 당황했다. 그래서 이들은 순진한 10대들을 어른들이 배후조종하고 있다고 호통을 쳤다. 20대들의 보수화를 걱정했던 진보진영은 반색하며 10대들의 정치참여를 경이로운 일로 판단해 이들이 진보진영을 다시 일으킬 희망의 불씨로 본다. 진보진영은 애써 한국의 민주화 전통과 집회장에 나온 10대들을 연결시키려고 했다. 그래서 이번 10대들의 집회 참여를 두고 386세대가 이제 부모가 되어 10대 자녀들의 손을 이끌고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두 생각 모두 나름대로 10대들이 촛불집회에 모인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지만, 10대들을 '철없는 미성년'으로 본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사정은 이런 진단들과 다소 다른 것처럼 보인다.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은 이렇다. 10대들이 촛불집회에 모인 행위는 분명 '정치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강부자 내각이든, 보수언론이든, 진보진영이든, 10대들은 눈에 보이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는 존재였다. 무대 밖에서 '원더걸스'나 '소녀시대'의 관객으로나 남아 있어야 할 이들이 너도 나도 무대 위로 올라가서 목소리를 낸 것이다. 어른들은 이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지에 대해 궁금해할 뿐, 실제로 이들이 그곳에 왜 나왔는지에 대해 별반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진짜 문제가 이것인데도 말이다. 그동안 침묵 속에 잠겨 있던 10대들의 목소리를 불러낸 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정적인 건 이명박정권 출범 이후 강화된 입시경쟁구조이다. 실제로 문화현상은 직접적 원인을 노출시키지 않는다. 문화정치는 복합적인 맥락에서 출현하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건 당사자에게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사회 모순의 체험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른들의 믿음과 달리 10들은 광우병 때문에 집회장에 모여 촛불을 밝혀든게 아니다. 광우병은 촉매제 역할을 했을 뿐이다. 이들은 무대 위에 올라가서 자신들의 처지를 토로했다. 이런 10대들의 말은 어디에서 왔는가? 영어몰입교육, 특목고와 자사고확대, 0교시 부활, 학교학원화에 학교별 성적공개까지 10대들의 삶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고 있는 이명박정권이 이 말들의 원인 제공자다.


 10대들은 '나쁜 어른'들이 쏟아낸 어른 중심의 정책을 직접 피부로 느끼고 있었고, 이런 느낌들이 광우병이라는 '핑계'를 만나자 마침내 터져 나온 것이다. 지난 대선과 총선이 증명하듯이, 한국 사회에서 정치가 첨예하게 작동하는 두 지점은 바로 부동산과 교육이다. 그리고 이 둘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번 10대들의 자기발언은 이런 현실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10대들은 정치가 첨예하게 작동하는 교육에서 그 정치의 영향력을 가장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이번 10대들의 문화정치가 보여주는 건 자명하다. 소란스럽기만 한 어른들의 정치가 교묘하게 침묵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를 10대들의 손에 들린 촛불들은 부끄럽게 비춰주고 있는 셈이다.


 경찰의 학교사찰에 이어 교육청의 학생사찰과 감시, 교육과학부 간부들의 모교방문 혈세낭비, 일방적인 한미쇠고기협상홍보교육까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촛불이 타올라야 졸속적인 정책의 질주를 멈출것인가? 공교육과 학생건강권의 안전핀을 뽑아버린 교육정책에 대한 저항으로 잠도 못자고 밥도 못먹고 말까지 못하게 가로막는 기막힌 현실에서 어둠을 환하게 밝히는 10대들의 문화정치 촛불 앞에 부끄럽지 않는 어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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