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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사 겸 국장

기형적이긴 하지만 현실이다. 얼마전 야당의 최고 여성 지도자가 수감되기 전 보여준 며칠간의 퍼포먼스 이야기다. 그는 유죄가 확정되자 '사법 정의가 죽었다'고 외쳤지만 야당의 여성 지도자라는 이유로 며칠간의 퍼포먼스를 허락한 사법부를 보면서 일반 국민들은 사법정의의 또다른 면을 의심했다. 전례가 없던 예우로 며칠간의 신변 정리기간을 주자 전직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고 끼리끼리 작별의식도 했다. 그 며칠간은 김정은식 통일전쟁으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된 상황이었지만 그와 야당은 한반도의 상황보다는 한 개인의 구속이 더 절실한 문제였다.

 남북이 마라톤 협상을 진행 중인 지난 23일 야당은 문재인 대표를 중심으로 비밀리에 수감을 앞둔 한명숙 전 총리와 오찬모임을 가졌다. 출입기자들도 몰랐던 이 비밀회동은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에 올라와 세상에 알려졌다. 이 영상의 게시일은 23일, 게재자가 '최민희 의원실'로 돼 있다. 영상을 보면 한 전 총리는 참석자들을 사이에 두고 중앙에 홀로 일어나 자신의 심경을 밝힌다. 한 전 총리는 이 자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님(을) 찾았을 때, 너럭바위에 손을 얹었는데 손을 데일 정도로 엄청 뜨거웠다. 그래서 '대통령께서 엄청 화가 나 계시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며 "거기에 새겨진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글자가 제 가슴에 새겨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앞서 한 전 총리는 수감을 이틀 앞둔 지난 22일 고인이 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잇따라 방문했다.

 수감되는 순간을 함께할 수 없는 야당대표이기에 안타까움이 더했는지 문재인 대표는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전 총리의 구명에 대해 발제 의견을 냈다가 참석자들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받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재심 청구와 추징금 모금운동이 문 대표의 제안이었던 모양이지만 아무래도 법조인 출신인 문 대표의 이성적 사고 체계가 흔들렸던 모양이다.

 여기까지 이야기는 팩트다. 백합을 들고 구치소로 향하는 그와 그의 추종자들, 그리고 뒤에서 재심청구와 모금운동을 논의해보자는 야권 지도자의 행동은 분명한 팩트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팩트는 따로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0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 판결했다. 그의 범죄혐의는 부정한 돈을 받았다는 것이고 그 돈이 9억 원 가까이 된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사법부의 판단이 일부 범죄혐의에 대해 유·무죄로 혼선을 빚었고 마지막 판결까지 특별한 사유없이 장시간 판단을 미룬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사법부 입장에서야 전직 총리이자 야권의 최고 여성 지도자가 피의자이다 보니 판단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 하겠지만 최종판결이 늦어진 점이 정치적 해석을 낳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결국 최종판결에서 유죄가 확정되고 무죄로 판단한 법관들조차 금품수수 부분은 부인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사건이기에 한명숙의 기나긴 법정 투쟁은 부정한 돈을 받은 부패한 정치인으로 결론이 났다.

 판결과 함께 시작된 야당의 이상 행동은 한명숙의 백합 퍼포먼스 정도면 충분했다. 재심을 이야기 하고 모금을 이야기 하는 수준은 백합과 수준이 다른 이상행동이다. 스스로 독점적 자아 우월주의에 빠진 사람이라면 법을 향해 '라스꼴리니코프'적인 망상가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을 범죄자로 낙인찍은 사법부가 부정한 기관이 되고 스스로는 백합처럼 고결한 순결의 결정체로 검은 상복을 입을 수 있다. 물론 그 자신에게 국한된 이야기다. 한명숙이기에 스스로 너무나 고결해 모든 이들은 자신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초인'적 발상을 할 수 있다. 건설업자의 부정한 돈이든 더 이상의 어떤 것이든 자신의 고귀한 행동을 위해 그런 따위의 부정은 희생이 될 수 있다는 망상은 어쩌면 그와 그의 추종자들이 가진 집단 최면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딱 그 지점까지만 이해하고 싶지만 야당은 몇발 더 나가고 말았다. 새정치민주연합 이동학 혁신위원이 "한 전 총리의 대법원 유죄 확정 판결은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다가 참회록을 써야했다. 이 위원은 자신의 소신발언이 문제가 되자 야당 인사들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30대 초반인 그를 혁신위원으로 기용해놓고 소신발언을 하니 '나대지 마라'며 집단 따돌림으로 대응하는 모습이 바로 우리 야당의 현주소다. 한명숙 하나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여기저기서 내가 바로 '라스꼴리니코프'라며 백합의 향기에 취해 있을 인사들이 야권 지도자로 나설 것 같아 덜컥 겁이 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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