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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바다에서 고래를 만난 적이 있는가?
 나는 이 단순한 질문에서부터 아시아의 고래문제를 이야기하려한다. 지금 이곳, 한국의 바다에서는 다시 고래잡이 재개를 요구하는 야만적인 행위로 국제보호동물인 고래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한국의 동해는 예로부터 고래바다(鯨海)로 불리던 바다다. 그 증거로 우리는 고래그림이 바위에 새겨진 선사시대유적인 '반구대 암각화'를 국보로 가지고 있다.
 우리 민족은 포유류인 고래가 새끼를 출산하고 나서 미역을 뜯어먹는 것을 보고 미역을 먹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아이를 출산 후 산모가 미역국을 끓여 먹는다. 그러면 산모의 젖이 풍부해진다. 우리는 미역을 '고래의 선물'이라 이름 한다.


 민족의 신화나 문학 속에서 고래는 거대한 상징이며 희망의 은유였지만 한국은 포경국가였다. 그건 비극인 동시에 일본제국주의가 한반도를 수탈한 36년이 남겨주고 간 또 다른 후유증이었다. 일제는 그 36년 동안 고래바다로 불리던 우리 바다에서 멸종에 가까운 고래 대학살을 주도한 장본인이다.


 1945년 해방 이후 시작된 한국의 고래잡이 역사 또한 일제의 잔재인 동시에 고래의 씨를 말리는 남획의 역사였다.
 그 증거로 한국인이 우리 바다로 회유해오길 간절히 기다리는 '귀신고래'(KOREAN GRAY WHALE)가 있었다. 그 고래의 이름은 1912년 이 고래를 추적해 울산 장생포항까지 찾아온 미국의 탐험가며 동물학자였던 채프먼 앤드류가 명명했다.


 우리는 세계 수많은 종의 고래 중에서 유일하게 KOREAN이란 이름이 들어간 고래를 가졌지만 일제는 1911년부터 1933년까지 초기개체수가 1500여 마리로 추정되는 우리 바다의 귀신고래를 1306마리나 잡았다. 그건 일본 포경사에 나오는 붉은 기록이다.


 한국은 뒤늦게 귀신고래의 소중함을 알고 귀신고래가 회유하는 바다를 '극경회유해면'이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로 정했지만 그 이후에도 귀신고래를 포획한 부끄러운 기록을 가지고 있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극경(克鯨), 고쿠구지라는 창씨개명되기 전의 일본이름이다. 귀신고래는 40년이 넘게 우리 바다에서 발견되지 않고 있다.


 국제포경위원회(IWC)가 1986년 고래잡이를 중단하는 모라트리움을 선언했지만 그러나 고래는 여전히 인간으로부터 직, 간접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단지 고래잡이가 합법적인 행위에서 불법적인 행위로 바뀐 것일 뿐 국제법으로 중단된 고래잡이는 은밀히 행해지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바다에서 고래가 죽어가고 있다.


 2001년 이후 지금까지 사람이 쳐 놓은 그물에 걸려죽은 고래가 2천 마리가 넘는다. 불법포획을 포함한다면 그 수는 쉽게 몇 배가 넘어갈 것이다.


 그러나 이건 한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고래는 아시아의 바다를 자유롭게 회유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한국바다를 지날 때는 한국의 고래가 되고 중국바다를 지날 때는 중국의 고래가 되는 것이다.


 그 고래들이 모두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가고 있기에, 아시아와 아시아 작가의 관심을 촉구한다.


 당신이 바다가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 해도 고래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 고래는 바다에 풀어놓은 사람의 꿈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꿈이 토막 나 가진 자의 별미로 식탁에 오르는 비극을 막기 위해 이제부터라도 당신이 고래에 대해 생각해주길 부탁한다.


 세계 어느 나라든 고래잡이를 재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면 그 뒤에 포경국가인 일본이 있다. 물론 한국 뒤에도 일본이 있다. 바다가 없는 나라에도 경제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포경재개에 찬성표를 던지게 하고 있는 것이 일본의 실체고 무서운 힘이다.


 고래는 아직도 분단된 한국에서 통일의 아이콘이다. 고래는 끊임없이 남과 북의 바다를 자유롭게 오간다. 그래서 소중한 동물이다.


 고래를 사랑하는 아시아의 시인으로 동시대에 문학을 하는 동료들에게 다시 묻는다. 당신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고래의 눈을 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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