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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조실록 등에 따르면 가뭄과 기근이 극심할 때는 재력가들에게 금족령을 내렸다. 음주가무는 물론이고 굶주림에 지친 백성들에게 상처를 줄 화려한 행차 등 일체의 행위를 자제하라고 당부했다. 군왕에서부터 고위관리, 토호, 부상에 이르기까지 몸을 극도로 낮추고 가뭄과 기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백성들의 염장을 찌르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 당시 사대부가의 금도(襟度)다. 이것이 최고의 통치이념이었던 여민동락(與民同樂) 정신이다. 백성이 배부르고 기쁘면 함께 기뻐하고 즐기지만 백성이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을 때는 스스로도 근신함으로써 백성들의 반발을 사지 않았다. 최소 이 정도의 정신이라도 있었기에 신분과 남녀, 적서 등에 따른 차별이 극심한 불평등사회에서 나라가 혼돈에 빠지지 않고 인륜과 강상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딴판이다. 가진 자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더 흥청망청한다. 소위 저들만의 굿판을 벌이고 있다.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서민경제는 거의 아사(餓死) 상태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일용근로자들의 경우 일거리가 없어 전기와 가스마저 끊겼다고 아우성이다. 유가급등, 물가상승, 내수경기 악화, 고용불안 등 4대 악재가 겹치면서 한국 사회는 미증유의 위기를 맞고 있다. 정부는 올 성장목표를 5개월 사이에 두 번이나 수정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에게 지금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도록 고통분담을 해 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한 등 끄기 운동'과 '승용차 함께 타기운동' 등 캠페인도 다양하다. 그러나 솔직히 이런 운동은 필요가 없다. 소득이 국민 평균소득을 밑도는 저소득층은 벌써 오래전부터 이를 실행하고 있다. 나라에서 이런 주문을 하지 않아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


 굳이 비싼 세금을 들여 공익광고를 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월평균 가계소득이 20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가정에서 기름 값이 이렇게 뛰면, 아예 차를 몰고나올 엄두를 내지 못한다. 줄이려 해도 줄일 것이 없는 서민들은 이렇듯 경기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구멍가게나 트럭행상을 하는 사람들의 하루 매출이 예년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이들의 주 고객인 서민들이 씀씀이를 그만큼 줄였다는 단적인 증거다. 현재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이들 영세 상인들의 엄살 이면에는 말 없는 절대다수 서민들의 고통과 눈물이 숨어 있다. 그런데 이런 차제에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니 아연할 따름이다. 금리를 올려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 하는지는 묻지 않아도 답이 나와 있다. 또 금리를 올린다면 직접적인 피해를 누가 더 보겠는가. 물가상승으로 가뜩이나 죽을 판인데 금리까지 인위적으로 올린다면 한마디로 상처 부위에 소금을 뿌리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당장 주거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 서민치고 자가, 전세를 떠나 은행돈 없이 자기 돈으로만 살고 있는 사람은 열에 둘도 되지 못한다. 금리를 올린다면 결국 대출금리가 오를 것이고, 이는 곧 서민가계 부담으로 직결되게 되어 있다. 서민들에게 외환위기 당시의 금리폭등 악몽은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가계대출 금리는 최고 27%까지 치솟았다. 평생을 벌어 장만했던 집 한 채마저 은행이자에 녹아났다. 이에 반해 예금소득자는 전례 없는 태평가를 부르며 "이대로"를 외쳐댔다. 최고 7%를 넘지 않던 예금금리가 한 순간 18%대 이상으로 뛰었으니 오죽했겠는가.


 물가상승을 억제하는 것은 다른데서 찾아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불요불급한 사업비와 과다인력을 과감히 축소, 여기서 남는 세원을 공공물가 잡는데 쓰면 현재의 위기를 벗어나는데 그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설익은 논리로 고금리정책을 밀어 붙이다가는 제2의 남미사태를 맞을 수 있다. 현재 고금리정책을 들고 나오는 인사 가운데는 지난 70년대의 1, 2차 오일쇼크 당시 독일 성공사례를 곧잘 인용한다. 오일쇼크를 벗어나기 위해 금리를 내리거나 현상유지하고 재정지출을 늘이는 등 경기부양책을 썼던 미국이나 영국은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하면서 물가는 폭등했다. 반면 독일은 금리를 올리는 등 정반대의 처방을 내려 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었다는 모범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한국이 당시의 독일처럼 대외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강국인가. 독일은 예나 지금이나 세계 2~3위의 경제 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특히 한국처럼 빈부격차가 심하지 않았다. 국민 절대다수가 국제유가 등의 외풍에도 안정을 잃지 않을 정도의 건강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전체 국민의 20%가 국민총생산량 대비 6할 이상을 독점하는 경제력불균형이 위험 수위에 있다. 물가라라는 빈대를 잡기 위해 8할 이상의 서민경제, 초가삼간을 태우지는 말아야 한다. 이렇듯 염장 찌르는데 선수가 되고 있는 기득권층과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세력을 방치하는 한 나라의 미래를 말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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