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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배를 피우는 애연가치고 담배를 끊겠다는 마음은 다 있다. 집에서는 물론이고 사무실, 공공장소 어디서고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곧 죄인으로 취급당한다. 아이들은 아빠의 담배 연기만 맡으면 기겁을 하는 세대다. 어릴 적 곰방대에 담뱃불을 붙일 힘이 없던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던 기특한 손자는 어디도 없다.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너 담배 피웠지"하고 눈을 부라려도 할아버지 생각에 당당하게 맞설 줄 알았던 아이들이다. 또 담배 심부름도 한 달음에 갔다 왔다. 담배연기로 누렇게 절은 벽지와 이불, 옷가지에도 군소리 한 번 할 줄 몰랐다. 담배는 의례 어른들의 과자로 알고 자란 세대가 지금의 40~50대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말을 했다가는 정신병자 취급받기 십상이다. "흡연자보다 간접흡연자가 암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는 둥 의사를 뺨치는 대꾸가 돌아온다. 한 발짝 더 나아가 "담배를 피우는 사람과는 상종도 하기 싫다"고 도리질을 친다. 사무실은 또 어떤가.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손님이 찾아오면 담배부터 권하던 풍속은 어디서고 찾아볼 수 없다. 담배 재떨이가 없어진지는 이미 오래고, 부하 직원에게 재떨이를 가져오라고 할 간 큰 상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손님이 어쩌다 담배를 피우지 않느냐고 물으면 슬금슬금 일어나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이것이 애연가를 위해 베풀어줄 수 있는 최고의 예우다. 야박한 주인은 "담배 피우지 않습니다"며 말문을 닫게 해버린다. 이쯤 되면 아무리 지독한 애연가라도 담배를 끊을만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아침 출근과 동시에 들어야 하는 상사의 잔소리, 거래처 손님과의 입씨름, 동료들에게서 받는 스트레스 등 어느 것 하나 담배 없이는 참아내기 녹녹하지가 않다. 담배라도 한 모금 빨아들이면 정신이 담배연기와 함께 몽롱해진다. 또 이때가 돼야 "인생이 다 그런 거지 뭐…"하는 철학자와 대면할 수 있다. 멀쩡한 정신, 날선 감정으로 이런 경지(?)를 어떻게 체험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담배연기 앞에서는 누구도 용서가 되고, 짜증스레 얽힌 일마저 단순화 할 수 있는 혜안이 열린다. 무엇보다 스트레스로 인한 심리적 압박감이 거짓말처럼 없어지는 것이 담배만의 약리작용이다. 양초가 스스로를 태워 빛을 만든다면 담배도 제 몸을 재로 만들면서 흡연자에게 축복을 내린다. 특히 담배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만이 즐길 수 있는 최고의 기호품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인류역사의 최대 발명품 가운데 하나인 담배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울산시가 오늘, 금연의 날을 맞아 실외 금연구역을 울산대공원에 이어 여섯 곳으로 확대 운영하겠다고 하니 그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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