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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누구나 한 번쯤 길을 잃고 헤매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휴대폰이나 내비게이션이 보급돼 길을 찾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지만, 일행과 떨어져 낯선 곳에 홀로 있거나 가야할 길을 놓쳐 어디로 가야할지 앞이 안 보이는 상황은 여전히 초조하고 막막하고 두려운 일이다.

 길을 잃으면 심리적인 안정이 무너지고 허둥대다가 오히려 원래의 길에서 벗어나 서로 어긋나기 쉽다. 이럴 땐 차라리 길을 잃은 그 자리에서 누군가 와주길 기다리는 것이 좋다. 앞서 간 사람도 길을 되짚어 돌아오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어야 어긋나지 않고 서로를 발견하게 된다.

 어렸을 때 나의 경우도 그랬다. 초등학교 강당에서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영화를 틀어준 적이 있는데, 끝나고 나오다 사람들에게 밀려 언니 손을 놓쳐버린 것이다. 밖은 벌써 컴컴해져 운동장의 플라타너스 우듬지도 잘 구별이 안 되었다.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자꾸 앞으로 밀려나갔지만, 나는 언니가 찾아와 줄 것을 기대하며 강당문을 붙잡고 버텨냈다. 사람들이 거의 빠져 나가고, 낮게 뜬 개밥바라기별이 하얗게 질려 보일 때 쯤 언니가 찾으러 왔다. 언니는 내가 앞서 간줄 알고 한참을 갔다가 되돌아온 거였는데, 나는 그 낯익은 얼굴을 보고 그제야 마음 놓고 울기 시작했다.

 가이드나 인솔자가 있을 때 그들을 믿고 기다리는 것. 길을 잃었을 땐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지만 이런 기다림은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깨지고 말았다. 자신들을 구하러 오리라는 기본적인 믿음이 철저히 외면당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고, 특히 길을 찾는데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예컨대 낯선 장소를 혼자 찾아가야 할 땐 어떨까. 그럴 땐 길을 묻는 것이 가장 빠른 것 같다.

 졸업하고 두어 해 서울살이를 했지만 서울에서 길을 찾는 것은 여전히 내게 버겁다. 특히 서울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갈아탈 땐 번번이 긴장되고 신경이 곤두선다. 처음 KTX를 타고 서울에 가게 되었을 땐 거의 예닐곱 번을 물어서야 겨우 지하철을 탈 수 있었는데, 길눈이 어두운 나는, 드문드문한 상경길에 지금도 여전히 서너 번은 길을 묻는다.

 그렇다면 주위에 사람이 없는 산속 같은 데서 길을 잃었을 땐? 그럴 땐 방향을 잘 가늠해야 한다. 몇 해 전 산내수련원 뒷산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 자주 다니던 산이라고 방심했다가 그만 갈림길을 놓쳐버린 것이다. 나는 일단 아래로 방향을 잡아 내려오다 겨우겨우 나뭇가지 사이로 수련원 지붕이 보이는 곳에 닿자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긴장이 풀리니 극심한 피로가 몰려와 한발자국도 떼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이제 나이가 드니 집안에서조차 길을 잃는다. 안경이나 책과 같은 소소한 물건을 어디다 두었는지 잊어버리고, 내가 무엇을 하려 했던가 깜빡거리기 일쑤다. 그럴 때면 가만히 앉아서 방금 전 나의 동선을 되짚어 보거나, 생각의 실마리를 기억하려고 애쓴다. 길이 보이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중을 하면 엉킨 실타래가 풀리듯 잃었던 길이 떠올라 보인다.

 길은 흔히 인생에 비유된다. 살다 보면 가끔씩 길을 잃게 되는 수도 있다. 그럴 때 어린 시절 놓쳤던 내 손을 다시 잡고 밤길을 같이 걸었던 언니처럼 나의 길을 밝혀주고 인도해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니, 처음부터 나를 이끌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길을 잃을 일도 없을 것이다. 사는 게 쭉 뻗은 신작로를 걷듯 수월할 것이다.

 하지만 삶에서 그런 행운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누구도 두 번 살지 않기 때문에, 매 순간순간은 모두 처음이고 낯설다. 그러므로 대개의 사람들은 낯선 길 앞에서 막막하게 서 있는 셈이다. 이때 조급하게 우왕좌왕하지 않고 내면으로 침잠하다 보면 영감이랄지, 아이디어랄지, 마음의 소리랄지 하는 것들이 떠오를 것이다. 찬찬히 생각을 되짚어 가다보면 길을 잃었던 순간과 만나게 될 것이고 거기서부터 올바른 방향을 잡아 다시 시작하면 된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엔 눈 뜬 장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십 년 간 장님으로 있던 사람이 어느 날 눈을 뜨게 되자 그만 집으로 가는 길을 잊어버렸다. 울고 있는 장님에게 한 선비가 충고를 해준다.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연암은 이 이야기를 통해 앞이 보이지 않을 때는 원래 있던 자리, 처음의 자리, 근본으로 돌아가 생각해보라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길이 안보일 땐 어쩌겠는가. 열심히 묻고 방향을 가늠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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