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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이 왁자하다. 가을소풍을 가는 모양이다. 열어젖힌 창문으로 보는 조무래기들의 얼굴이 갓 핀 나팔꽃처럼 풋풋하고 싱그럽다. 손바닥만 한 등에다 따개비처럼 소풍 가방을 붙이고 재잘대는 운동장 풍경 위로 유년의 기억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소풍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날만큼은 과일이나 삶은 계란이 귀하지 않았다. 엄마가 주는 약간의 용돈을 받아들고 마음에 가는 군것질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유일한 날이었다. 그런 소풍날은 더디 다가왔다. 전날 밤은 잠 설치며 창문 밖 하늘을 쳐다보고 혹시 비라도 오면 어쩌나 싶어 걱정하다가 아침을 맞았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소풍'은 가슴 설레는 일이다. 간혹 여행계획이 잡히거나 단체 나들이를 앞두고는 무단히 마음이 술렁거려 손에 든 일이 갈팡질팡하게 되니 말이다. 우리네 삶도 늘 소풍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전쟁처럼, 앞섶에 붙은 불똥 털듯 바쁘게 살아간다.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빨리, 단숨에 누리려 안달복달하는 것 보다 잠시 물러서는 여유나 여백, 쉼표가 아쉬운 때다.

 유년시절, 내가 소풍날 받은 용돈은 보통 20~30원이었다. 요즘 돈으로 치면 대충 이 삼천 원쯤일 것이다. 친구 중에는 40~50원, 혹은 100원 정도 큰 액수를 손에 쥐고 오기도 했지만, 형제가 칠남매나 되던 우리 집은 30원 이상 주신 기억이 없다. 교문 앞은 이미 장사꾼이 진을 치고 우리를 기다렸다. 키다리 오색풍선이 공중에서 탱고를 추고, 좌판 위에는 황소 눈알만한 사탕이 설탕가루를 덮어쓰고 유혹의 눈길을 보냈다. 삼각비닐 봉지 안에 든 노란주스나 곱창모양의 올록볼록한 고무풍선에는 잠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고것들 앞에서는 개선장군처럼 씩씩하게 지나치며 반쯤 벌어진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래도 갓 구워 반지르르한 팥빵이나 고슬고슬 몸을 부풀린 곰보빵에는 기어이 무릎을 꿇고 말았다.

 성질 급한 나는 먼저 10원을 건네고 곰보빵 두 개를 바꿔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 뒤이어 눈깔사탕과 오렌지 주스를 나머지 돈으로 두 손 가득 받아들어야 성이 찼다. 요즘 말로 나는 '기분파'였다. 주머니 속 하루 치 용돈을 단박에 없애고 교문 안으로 발을 들였다. 아뿔싸! 교문 안은 상황이 달랐다. 거기선 또 다른 장사꾼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 똑같은 곰보빵, 팥빵을 10원에 세 개씩이나 주겠다고 했으니…. 가슴에서 헛바람이 빠져나갔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은 급한 성격을 후회했지만, 이미 빈털터리 신세였다. 조금 전 개선장군은 간데없고 몸은 바람 빠진 풍선, 나사 풀린 졸병처럼 터덜터덜 애꿎은 돌멩이만 발로 찼다.

 친구들은 운동장을 찬찬히 돌아보며 요모조모 따지고 고민하다가 물건을 사고 있다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남들 눈에는 쫀쫀하게 보일지언정, 신중하게 결정하는 방법이 옳았다. 장사꾼 중 몇몇은 소풍 장소까지 물건을 머리에 이고 뒤따라왔는데, 한 친구는 운동장에서는 눈요기만 하다가 정작 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야금야금 돈을 꺼내는 수법을 썼다. 그 바람에 떨이로 곰보빵 다섯 개를 건네받는 것을 보고 '아, 나는 너무 덤벙거렸구나'라고 후회하며 무릎을 쳤다.

 타고난 천성은 어쩔 수 없는 걸까. 덜렁대는 습성은 늙어서도 여전하다. 예로, 여름날 여럿이 모여 아이스크림을 먹을라치면 항상 내 손에 들린 것이 먼저 없어진다. 여자라면 혀로 날름날름 핥아 먹어야 곱게 보일 텐데 단박에 먹어치운다. 알사탕이나 초콜릿은 천천히 녹이기보다는 '와삭' 깨물거나 볼이 불룩할 정도로 먹어야 제 맛이다. 매력이라고는 벼룩 눈곱만치도 없는 여자다.

 이제는 이런 행동을 인생의 깊은 교훈으로 삼으려 한다. 앞으로 내게 남은 날만은 절대로 덤벙덤벙 쓰지 않으련다. 한 번뿐인 인생을 진중하고 귀하게 다루련다. 더러는 쫀쫀하고 쩨쩨하게 보일지언정 매 순간을 허투루 보내진 말아야 한다.

 천상병 시인은 인생을 '소풍'에 비유했다.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은 아름다웠노라 말하리라 했다. 그렇다. 내게도 소풍 끝내는 날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날은 세상 모든 것들과 관계를 청산하고 영영 돌아오지 못할 먼 곳으로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애면글면 모은 재물, 사랑하는 가족과 영원히 이별을 고하고, 명예나 정든 집, 아끼던 물건과도 헤어지는 것을 피할 장사는 없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허무한 존재이던가.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소풍', 누구든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 그 옛날 내가 덤벙덤벙 교문 앞에서 하루 치 용돈을 순식간에 허비했듯이, 팥빵과 초콜릿을 '폭풍흡입'으로 해치우듯, 그렇게 얼렁뚱땅 인생을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 소풍 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섰다. 인생의 가을 길을 깊숙이 걷고 있는 나는 매 순간 값지고 소중하게 보내는지를 뒤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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