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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장 난 테레비 삽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모처럼 한가하게 책을 보고 있던 아이는 창 밖에서 이 소리가 들리자 "저 소리가 아직도 들리네"하며 귀를 기울인다. 늦게 다니느라 어릴 때 이후 잘 듣지 못하던 소리가 새삼스러운가 보다. 하지만 이내 근심스러운 표정이다. "장사가 될까요?" "장사가 되니 아직까지 저러고 다니겠지" 대답은 했지만 나도 자신은 없다. 예전엔 저 소리 뒤에 "재봉틀 고칩니다, 재봉틀" 했었는데 이젠 고칠 재봉틀이 없는지 "컴퓨터 삽니다, 컴퓨터" 하는 소리로 한참 전에 바뀌었다. 금값이 가파르게 오른 이후엔 "금이빨, 은수저 삽니다"하는 소리도 들린다.

 목소리는 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걸 보면 아마 녹음된 소리를 틀고 다니는 것 같다. 그러나 차를 몰고 다니는 당사자가 예전과 같은 인물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곳곳에 재활용센터가 있고, 전화 한 통화면 '테레비' 뿐 아니라 헌옷까지 수거해가는 고물처리회사도 속속 생겨나고 있는데, 옛날 방식으로 저렇게 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게 장사가 되긴 될까 궁금하고 걱정스럽긴 하다.

 이미 오래 전이지만 신정시장 근처 지하도 앞에 라이터돌을 파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일회용 라이터가 보급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라이터돌을 팔고 있으니 사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지하도를 지날 때 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어느 해 부터인가 보이지 않았다. 고장 난 텔레비전은 금이빨이나 은수저로, 혹은 스마트폰이나 그때그때 다른 무엇으로 바뀔 수 있으니 앞으로 두고두고 들을 수 있는 소리일까, 아니면 판매 방식의 변화 때문에 조만간 사라질 소리일까?

 사라질 '예감'이 드는, 그러니까 겨우 겨우 버티고 있는 가게 앞을 지날 때면 라이터돌 할아버지 앞을 지나칠 때처럼 마음이 편치 않다. 우리 동네엔 오래된 사진관이 있다. 사진을 잘 찍어서, 필름을 현상하던 시절엔 제법 북적거리던 가게였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가게는 한산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감돈다. 가게 앞을 지나가다 '휴대폰 사진 현상'이란 종이가 붙은 유리문 뒤로 주인아저씨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공연히 미안한 마음에 걸음이 빨라진다. 그 영락을 내가 견디기 어려운 까닭이다. 근처 초등학교 정문 앞에 도열해 있다시피 했던 문구점들도 이제 두어 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많은 문서들이 컴퓨터 프로그램화 되고, 문구전문점이나 온라인 매장으로 손님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요즘은 학생들이 필기를 안 하기 때문에 공책도 잘 안 팔린다고 한다.

 시계수리점은 어떤가. 예전엔 금은방 안에 시계점이 같이 있어서 시계도 팔고 수리도 해주곤 했는데, 어느 샌가 '금거래소'라는 이름으로 금은방이 독립을 하고 시계수리점은 자취를 감추었다. 일전엔 대학교 졸업 선물로 받은 시계가 고장이 나서 수리점을 찾아 시내 구석구석을 헤매다가, 대형 마트의 매장 안에 있는 시계점에서 겨우 수리를 할 수 있었다. 하긴 시계뿐이겠는가. 우산이나, 가방이나, 자전거, 운동화 등도 마찬가지다. 명품이라면 판매처에 맡겨 수리를 의뢰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고장이 나거나 망가졌을 때 수선해 쓰기가 정말 어렵다. 이런 수리점은 겨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없어진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가게 문을 닫은 장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

 하지만 다른 의미로 겨우 버티고 있는 것들도 있다. 골목 끝에 자리 잡은 어두컴컴한 구멍가게나, 문짝의 칠이 벗겨진 떡 방앗간, 한 철 내내 같은 옷이 걸린 보세 옷집들 같은 경우이다. 골목을 나서면 편의점이나 마트가 있고, 프랜차이즈 떡집이 있고, 조금 더 가면 대로변에 마네킹이 수시로 옷을 갈아입는 양품점이 있는데, 누가 기꺼이 골목 안으로 들어가겠는가. 손님이 들지 않는 모습에 마음이 편치 않고, 그래서 누가 뭣 좀 사라고 잡아끌지 않는데도 가게 앞을 지나칠 때면 고개를 숙이고 걸음을 빨리 하게 된다. 닫힌 문을 더 굳게 닫히게 하는 이 악순환. 길가의 가게들이 수시로 손이 바뀌고 간판을 바꿔달 때도 골목 안쪽 가게는 매양 그대로인 채 낡아가는 데, 그 오랜 역사가 자랑스러운 게 아니라 오히려 우중충해 보이는 것이 우울하고 서글프다.

 돈이 부족해서든, 기술이나 유통구조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든 미래를 내다보기 어렵고 겨우 버티고 있는 것들은 모두 쓸쓸하고 안타깝다. 해가 짧아지고 날이 싸늘해져 옷깃을 여미게 되는 11월의 한기, 귀가를 재촉하는 저물녘의 스산함이 느껴진다. 그 주인들이 가게 문을 닫고 귀가할 때, 따뜻한 밥상과 다정한 웃음이 그들을 맞이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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