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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가

저녁 밥을 지으려고 쌀을 씻는데 문득 시골에 혼자 사는 친정엄마 생각이 났다. 꼽아 보니 연락을 전하지 못한 것이 열흘이 넘었다. 전화를 하니 받지 않는다. 밭에 갔겠지. 마을 회관에 갔겠지. 병원에 갔겠지. 보이지 않는 엄마의 동선을 그려보다가 다시 전화를 들었다. 또 안 받았다.

 갑자기 드는 불안한 생각. 지금은 집에 계실 시간인데…. 언니들한테 전화를 걸어도 엄마 소식을 모른다. 젖은 손바닥으로 비누를 문지르듯 걱정이 부풀어 올랐다.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또 받지 않고, 휴대폰은 아예 꺼져 있다. 불안한 생각은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혼자 사시는 팔순 노모가 밤이 늦도록 전화를 받지 않는다니!

 몇 해 전에 엄마와 친한 친구 분이 돌아가셨다. 비오는 날 옥상에서 내려오다가 미끄러지면서 숨을 거두셨다. 일주일 쯤 지나고 아들 내외가 찾아왔다가 시신을 발견했다. 얼마나 끔직하고 슬픈 일인가. 이야기를 전해 듣는데도 그 자식들 생각에, 돌아가신 분 생각에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혼자 계시지만 않았어도….

 엄마를 혼자 계시게 한 죄스러움과 남동생의 무심함이 원망으로 밀려오면서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어디 가셨을 거라는 생각은 사라지고 무슨 변이 생겼을 거라는 쪽으로 생각이 모아졌다. 결국 근무 중이던 남동생이 엄마를 찾아 나섰다.

 엄마는 집에서 태연히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왜 전화를 받지 않았냐고 다그치니 전화기 두 대가 하나의 선에 연결돼 있는데 하나는 낭비다 싶어 선 하나를 뽑아 버렸다더란다. 물론 전화세를 아끼기 위해서. 그러니 전화가 먹통이 될 수밖에. 뒤늦게 전화를 걸어 왜 그러느냐고, 그깟 돈 아껴서 뭐 하느냐고 소리 지르다가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서야 진정이 되었고, 한밤중 소동은 일단락됐다.

 전화를 끊으면서 엄마가 말했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냐고, 내가 너희 놔두고 말도 없이 죽겠냐고. 그래도 소식이 없으면 어디 아프신가, 어딜 가셨나 이런 생각 보다 갑자기 혼자 돌아가셨나 싶어진다. 옥색 저고리에, 옥색 치마를 동여매고 장구를 목에 걸고 춤추던 젊고 고운 엄마의 모습이 선명한데 어느새 죽음이라는 단어와 짝을 맞춰보는 연세가 되었다.

 친정에 가면 한 집 건너 빈집, 한 집 건너 빈집이다. 자식 출가 시키고, 영감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혼자 사시는 할머니들마저 돌아가시면 빈 집만 덩그러니 남는다. 며칠 전에는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술을 얻어 마시고 술 값으로 노래 한 자락 해주시던 엄마의 단짝 할머니도 돌아가셨다.

 마을이 고요하다. 사람 구경하기 어렵다. 새로 지은 좋은 집에는 혼자 아니면 둘. 뛰어노는 아이들을 구경하는 것은 일요일에나 가능하다. 10대나 20대 젊은이들은 아예 없다. 마을 회관에 가면 70대 할아버지가 청년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유년 시절, 동네에는 아이들이 넘쳐났다. 보통은 오남매 육남매를 낳다보니 마을에 절반은 아이들이었고, 학교 가는 길에는 무더기를 이룬 아이들의 물결이 넘실댔다. 그런데 지금은 농촌에 일손이 모자라 외국인을 쓴다는 뉴스까지 들리니 마음이 춥고 스산하다. 나고 자란 고향 마을은 그대로인데 사람은 가고 없으니 쭉정이만 남은 것 같다. 귀농하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젊은 부부는 보기 드물다.

 젊은이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고 노부모는 죽음의 집으로 들어간다. 고향이 사라질까 두렵다. 사람 없는 고향이 될까 겁난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이별이 두렵다. 같은 집에서 이사라는 것을 모른 채 자식을 길러내고 보내고, 흙 묻은 손발을 털고 육신을 쉬게 하고, 자연과 순응하며 울고 웃던 집들이 비어져 가는 것을 보는 일이 내게 준비된 야트막한 이별의 연습인 것 같다.

 그렇다면 더 깊이 늙어가는 것은 이별 앞에 덤덤해지는 것. 죽음조차 구경하는 되는 일. 죽음이라는 불구경을 하면서 그 앞으로 속절없이 한발짝 다가가는 일일 테지. 엄마를 모셔와 욕조에 뉘이고 목욕을 시켜 드리고, 갈비를 굽고 소고기국을 끓여 드리며 엄마에게 유독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묶어두고 싶다. 사람은 사라져도 추억이라는 집은 허물어지지 않지만 가을이라 그럴까. 어쩔 수 없는 이별이 있는 줄 알면서도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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