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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요, 살기를 구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웬만한 고사책이나 명언집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좌우명 가운데 하나다. 1,700만 관객을 불러모았던 영화 '명량'에도 나왔듯이 이순신 장군이 전쟁에 임하는 결연한 의지를 표현한 말이다. 모든 일의 경중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의미에서 전쟁터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네 일상에서도 흔히 사용된다. 스포츠 지도자나 선수들이 중요한 대회에 나갈 때, 또는 직장 등에서 위기국면을 돌파하고자 할 때 익히 적용하는 말이다.

 이런 표현이 먼 나라 서양에서도 통했다는 건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일어난 백년전쟁 중 위기에 처한 도시를 구했던 여섯 명의 용감한 칼레 시민들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모든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 그러나 시민들 중 6명을 뽑아와라. 그들을 칼레 시민 전체를 대신해 처형하겠다."   영국 에드워드 3세의 최후 통첩에 대응한 이들의 자세가 바로 '사즉생, 생즉사'의 전형적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한번 잃으면 다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칼레의 모든 시민들이 한편으론 기뻤으나 한편으론 6명을 뽑는 일에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딱히 뽑기 힘드니 제비뽑기를 하자는 사람도 나올만 했다. 그때 부유층 중 한 사람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죽음을 자처하고 나선 건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을 터. 더욱 놀란 건 그의 희생정신에 감격한 고위관료, 상류층 등 유지들이 앞 다투어 그의 뜻을 따랐다는 점이다. 모두 7명이었다. 그러자 피에르는 이튿날 가장 나중에 나오는 사람이 남기로 하고 6명이 영국군 진영으로 가자는 제안을 한다.

 이튿날이 되자 6명이 다 모였으나 오직 피에르만 나타나지 않았다. 의아하게 여긴 사람들이 그의 집을 찾았으나 그는 이미 목숨을 끊은 후였다. 혹시라도 살기를 바랄 마음이 모두의 마음 속에 꿈틀거릴 것을 우려해 스스로 솔선수범해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에 남은 6명은 영국의 요구대로 목에 밧줄을 매고 자루옷을 입고 담담하게 나선다. 오귀스트 로댕이 '칼레의 시민'이라는 조각품을 통해 바로 이 순간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묘사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대반전이 일어난다.

    그 때 임신 중이었던 영국 왕비 필리파 드 에노의 도움으로 이들 6명은 극적으로 풀려나게 된다. 결국 이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 모든 칼레 시민들의 목숨을 구하게 되니 이 보다 더 극적인 드라마가 또 어디 있겠나 싶다. 이 일이 후에 '상류층으로서 누리던 기득권에 대한 도덕성의 의무',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적 사례로 회자된 건 또 다른 시사점을 내포한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딸 출산 소식을 알리며 현재 시가로 약 52조에 달하는 페이스북 지분을 기부하겠다는 소식이 들려 더 그렇다. 이 '통 큰' 기부액은 그의 전 재산에 육박하는 것이라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의 첫날, 울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기관장 및 고액기부자들과 함께 시청 시민홀에 설치된 모형 온도탑 제막식을 갖고 '희망 2016 나눔 캠페인' 집중 모금에 들어갔다. 전국적으로 공히 지난해 실적대비 2.5%를 올려 책정한 만큼 우려 또한 적지 않다.

 지난해에 비해 지역경제 사정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고 있어서다. 시민들의 체감경기도 그야말로 최악이다. 따라서 예년처럼 기업의 거액기부만 쳐다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발등의 불이 된 경영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우선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웃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를 누리는 사람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에 주목하는 이유다.

 울산은 전국 어느 곳보다 나눔이 가능한 부유한 이들이 많다. 요즘처럼 어려울때 이웃을 위해 힘을 보태는 것이야말로 가진 이들의 사회적 책무라 하겠다. 나눔 온도탑에 기부된 성금 대부분이 홀로 사는 노인, 소년소녀가장, 저소득가정과 양로원·고아원 등 복지 사각지대를 훈훈하게 만든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물론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액기부도 매우 뜻 깊은 일이 아니겠는가. 작은 정성을 모아 큰 사랑을 만드는 사회의 희망 불씨인 나눔 행사에 우리 남구가 그 중심에 섰으면 한다. 나눔 속에 깃든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준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올 연말이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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