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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3 세 큰아들과 21세 둘째딸을 두고 있는 아버지이자 울산 남구 옥동에서 유학원을 경영하는 원장이다.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1970년 6세 때에 아버지를 따라 울산에 왔다.
 옛날 아버지가 다 그랬던 것처럼 우리 아버지도 무척이나 엄하시고 가부장적이었다. 가끔씩 약주를 드시면 직장 스트레스를 집안에 푸시면서 화를 내거나 가재도구를 집어 던지시거나 어머님을 괴롭히기도 하셨다.

 아버지가 너무나 미웠고 내가 어른이 되면 절대로 저런 행동을 닮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자식과 아내에게 무조건 잘해주는 멋진 아버지가 되리라고 맹세했다.
 나도 세월이 흘러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됐다. 자식을 더 잘 키워보자는 일념으로 아들과 딸을 중1과 고1때에 조기유학 보냈다.
 아들은 미국의 대학에 다니다 현재 입대해 군복무중이고 딸은 미국대학에 다니다 현재는 휴학했다.
 어려운 가운데 남들이 못가는 유학을 2명이나 보냈으니 아이들에게 무조건 'A'학점을 받아야 한다고 스트레스를 줬다.
 아내에게도 "남편이 어렵게 돈을 벌어 자식 유학까지 보냈으니 당신은 그 어떤 고통도 감내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시쳇말로 엄청난 독재를 저질렀다.
 나는 절대로 우리 아버지를 닮지 말아야지 했는데 문득 돌아보니 아버지와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집사람을 무시하기 일쑤고 말을 안 듣는다 싶으면 큰소리로 화를 내거나 물건을 던질 때도 있었다.
 유학 간 아들딸에게도 엄청난 마음의 상처를 주는 말을 했다. 원하는 성적을 받지 못하면 실망감과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심한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내가 한 짓이 모두 부메랑처럼 되돌아왔다.
 특히 21살이 된 딸은 큰 상처를 받았는지 아빠 목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떨리고 우울증과 조울증도 호소하고 있다.

 급기야 집사람도 이제야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옛날의 고분고분한 모습은 간데없고 마음의 상처를 막 토해내고 있다.
 아이들 잘 키우고 좋은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족들에게 상처만 주게 됐다.
 목적이 선하면 어떤 수단도 용납이 된다는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큰 문제였다.
 이번에 남구청이 실시하는 '좋은 아버지 교실' 심화과정에서 강사님으로부터 세밀하고도 실제감이 넘치는 유익한 강의를 듣게 되어서 너무나도 좋았다.
 왜 진작 이 교육을 받지 않았을까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건강한 관계의 집, 내 자녀 이해하기, 아동 청소년의 발달 단계, 부모의 초감정, 가족회의, 부모의 당위적 사고, 그리고 제대로 칭찬하기 등 감정코칭에 대해 이론적으로나 실체적으로 엄청 나게 많이 배웠다.
 무엇보다도 초감정 이해하기 배움을 통해서 감정이면에 숨어있는 또 다른 감정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돼 너무 기뻤다.
 결국 아빠인 내가 문제임을 이번 교육을 통해 깨달았다.
 고집 세고 보수적인 마음이 교육을 받으면서 서서히 무너졌다.
 남자가 부엌에서 일하면 죽는 줄 알았던 내가 어느새 설거지도 하고 집사람에게 "그동안 너무 힘들었지. 너무 고생했다"라고 부드럽게 말도 건네게 됐다.
 유학 중에 아빠의 말에 심한 상처를 받은 딸에게도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부모와 떨어져 7년간 공부하느라 너무 고생이 많았다. 아빠가 너무 성과 지향적으로 몰아붙여서 미안하다"고 했다.
 사과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아빠가 조금씩 바뀌고 있음에 의아해했지만 이는 나의 진심이고 소중한 교육의 결과이다.
 이번 교육에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아버지들이 참여했다.
 젊은 어버지들이 좋은 아버지가 되어 보겠다고 열심히 교육을 받는 것을 보고 너무 대견하고 뿌듯했다.
 아무쪼록 이번 교육을 만들어준 남구청과 강사로 수고해 주신 고원자 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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