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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제 60대를 바라보는 남편의 두드러진 변화는 식구들이 밥상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는 것에 대한 바람이 커졌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서 하나 둘 집을 떠나자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는지, 함께 한 시간이 많지 않음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남은 식구라도 같은 시간에 함께 밥을 먹길 바라는 것이다. 그래봤자 세 사람이라 둘러앉는다는 표현을 쓰기에도 난감한 편이지만.

 그래서 내가 가끔씩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 밥상을 차려주고 컴퓨터 앞에라도 앉으면 전에 없이 싫은 소리를 한다. 남편은 왜 이렇게 함께 밥 먹는 것에 대해 집착을 하게 됐을까. 이것이 나이 들어가는 징후인가.

 요즘 텔레비전은 음식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셰프'라고 불리는 요리사들이 출연해 음식 만드는 과정을 중계할 뿐 아니라 연예인들이 나와 음식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며 온갖 평을 하는 소위 '먹방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음식 프로그램의 인기는 '혼밥족'의 증가와 비교해 눈길을 끈다. 혼밥, 그러니까 혼자 먹는 밥이라는 이 먹먹한 느낌을 주는 낱말은 처음엔 대학 식당가에서 나 홀로 식사를 하는 젊은이들에게서 비롯됐다. 친구들과 식사 시간을 맞추기 번거롭고, 자투리 시간이라도 아껴 스펙을 쌓고 공부를 해야 하는 젊은이들은 이제 하숙이 사라진 고시촌에서 혼자 잠을 자고 혼자 밥을 먹는다.

 혼자 밥을 먹는 젊은이들의 손엔 예외없이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밥을 먹을 때 폰을 들여다봄으로써 주위의 시선을 피하고 혼자 먹는다는 껄끄러움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웹툰을 보거나 연예 프로를 시청하며 다른 사람과 함께 있단 대리만족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여기저기 강의를 다니다 보니 나도 종종 혼자 밥을 먹어야할 때가 있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아 거의 굶고 다녔는데 이젠 혼자서 식당을 찾거나 편의점에서 라면과 김밥을 사서 먹는다. 바로 스마트폰 덕분이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식사를 하다보면 주변의 시선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나만의 공간 같은 게 생기는 느낌이다. 나는 그 공간에서 스마트폰과 대화를 하는 셈이다. 혼밥을 먹는 젊은이들도 비슷한 생각이지 않을까.

 그런데 며칠 전 뉴스를 보니 50대 남자 혼밥족이 늘고 있다고 한다. 라면, 참치, 햇반과 같은 간편식이나 즉석 식품을 사가는 50대 남자가 급증하고 있단 것이다. 뉴스에선 그 까닭을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과 가사노동에서 해방되고 싶어 하는 아내의 욕구 증대에서 찾고 있었다. 그동안 회사밥을 먹으며 열심히 일하던 50대들이 은퇴를 하여 가정으로 돌아왔지만, 가족들은 생각만큼 그들을 반기지 않는다.

 아이들은 어느 새 훌쩍 자라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려하고, 아내는 해방감을 느끼며 자아를 찾는다고 문화센터로 커피숍으로 가버린다.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되레 더 서먹하고 어색하다. 결국 우리나라 50대 가장은 열심히 뒷바라지를 해주고 버림받은 비련남이 되고만 셈이다.

 식탁에 혼자 앉아 햇반의 포장지를 벗기고 참치 캔의 뚜껑을 따는 가장의 모습은, 식당에서 혼밥을 먹는 모습보다 더 쓸쓸하다. 식당에선 최소한 음식을 주문하는 과정에서 말이 오고가고 주변에 밥을 먹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내 식구는 아니지만 온기를 느낄 누군가는 있다. 하지만 집에서 혼자 밥을 먹는 50대 가장은 그저 혼자다. 젊은이들이 혼밥을 먹으며 스마트 폰을 보고 있다면, 그들은 텔레비전 리모컨을 쥐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보고 있다. 그들의 눈은 때때로 먹방 프로나 연예인의 아이들이 나와서 재롱을 부리는 가족 프로에 머물 것이다. 분명 그들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겠지만, 이제 스마트폰과 텔레비전 리모컨의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요즘은 밥 자체를 굶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그러나 밥과 함께 떠올릴 수 있는 여러 가지를 우리는 가정이 아닌 텔레비전 프로에서 찾는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순간, 맛에 대한 기대감, 모락모락 오르는 김, 식탁에 둘러앉은 식구들과의 대화, 가끔씩 터지는 웃음소리 등을.

 아마 남편이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함께 밥 먹기에 집착하는 것도 혼자 밥을 먹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우리 집엔 텔레비전이 없다. 그래서 이리저리 버튼을 눌러 볼 리모컨도 없다. 혼자 밥을 먹기엔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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