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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을 서울의 이모네서 지냈다. 고등학교 3학년인 사촌동생의 공부를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사촌동생은 방학인데도 학교에 가야해서 오전 시간은 거의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나는 그 시간에 서울의 대학을 탐방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모네 집이 연희동에 있어서 가까운 신촌의 대학들을 먼저 골랐다. 방학이라 캠퍼스는 한산했지만, 어느 대학이든 게시판은 대자보로 넘쳐났다. 광주의 실상을 알리는 붉고 푸른 글씨들.
 신촌을 벗어나 고려대, 경희대, 외대를 거칠 즈음엔 펄럭거리던 대자보에도 어느 정도 무뎌있었다. 하지만 왕십리의 한양대에서 만난 대자보는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것은 전지를 가득 메운 시였다. 그 시는 가슴을 지나 뱃속까지 뜨겁게 만드는 힘이 있었고, 나는 재빨리 대학노트에 그 긴 시를 옮겨 적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바로 김준태 시인의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라는 시였다. 물론 이 시로 인해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송두리째 바뀐 것은 아니지만 내가 관심을 가져야할 대상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만약 그 시를 인쇄물로 만났다면 그렇게 강한 인상을 받았을까. 그 시는 대자보로 만나야 하는 시다. 대자보의 굵은 육필로 뜨겁게 만나야 하는 시다. 잘 만들어진 대자보는 이처럼 큰 울림을 가져온다. 대자보는 중국의 문화대혁명기에 활발히 제작되었던 벽신문 형태의 대중 언론 매체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오래 전부터 대중에게 알릴 내용을 써서 '벽서' 형태로 게시해 왔다. 벽서로 민심을 동요시키고 여론을 형성했던 것이다.
 2010년 고려대 김예슬 학생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2013년의 '안녕들하십니까' 최근의 구급차 물대포에 대한 의대생 대자보 등은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사람들은 거기에 공감하거나 반박했다. 갑론을박. 이른바 여론을 형성하는데 대자보는 아직까지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때 중요한 무기가 된다. 사실 약자들의 무기라는 게 별다른 무엇이 있겠는가. 그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권력층을 압박하는 것 뿐.
 

 의견을 표출하는 방식 중엔 서명이란 것도 있다. 그 의견에 동조한다는 뜻으로 이름과 소속을 밝히는 일이다. 원전 건설 반대부터 아파트 재개발 촉구까지, 실명과 주소를 밝히는 오프라인 서명부터 닉네임과 이메일 주소로 대체되는 온라인 서명까지, 살아오면서 꽤나 많은 서명을 했다. 서명이 얼마만큼 실질적인 효과를 갖는지는 모르지만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의 사인을 받는 행위가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뭔가 윗선을 압박하는 중요한 수단임에는 틀림없다. 서명은 바늘과 같아서 상대의 갑옷을 뚫기는 어려워도, 움찔하고 주춤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서명운동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게 1830년대 영국 노동자들의 참정권 투쟁에서 비롯됐다고 하니, 원래 서명은 약자들이 의견을 표출하는 창구인 셈이다. 그런데 요즘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서명이 대통령과 정부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법의 내용에 대한 논란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아, 이젠 빼앗기다 못해 의사 표현 방식마저 빼앗기는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물론 서명이 약자의 전유물이라고 명시돼 있는 것은 아니고, 그동안 관제 서명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앞으로 서명을 못하게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그 진행 방식이 주는 뭔가 위기의식의 발로랄까?
 

 박완서의 소설 '도둑맞은 가난'에는 가난을 체험한다고 공장 노동자 흉내를 내던 부잣집 애인에게 수치와 분노를 느끼는 가난한 여주인공이 나온다. 거기에서 가난은 부자들에게 코스프레의 대상, 물건처럼 한 차례 소비하는 소비재이자 유희의 대상일 뿐 그 원인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은 없다. "이제는 부자들이 가난마저 훔쳐간다"는 주인공의 울부짖음이 등을 훑고 지나가는 소설이다. 가난 코스프레가 가난을 가벼이 여기고 가난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를 갖게 하듯, 지금과 같은 식의 정치권의 서명은 서명을 희화화하고 무력화 시킨다. 동조의 뜻으로 자신의 이름을 적는다는 것은 아무리 온라인상이라 해도 결코 가볍지 않은 일이다. 그런 행위가 조롱당할 때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씁쓸한 모멸감이다. 노동개혁 입법은 서명이 아닌 설득과 타협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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