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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나를 '인간 연필깎이'라고 부른다. 내가 문구용 칼로 연필을 정교하게 잘 깎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진짜 연필깎이의 달인이라 할 만큼 연필을 기똥차게 깎을 줄 안다. 왼손에 연필을 쥐고 칼을 든 오른손으로 대패처럼 나무결을 깎아내고 심을 고른다. 내가 봐도 감탄할 정도다.

 아이들 방 청소를 하다가도 연필통이 눈에 들어오면 열일 제쳐놓고 연필부터 깎는다. 헌 옷을 벗어던지고 새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새 마음이 생긴다.

 내가 연필 깎는 것에 맛을 들인 건 아버지의 면도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갔다 온 작은 아버지가 선물하신 일제 면도기가 그 시작이다. 면도기는 아버지가 가진 최고의 사치품이었다.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지금도 그 모양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면도를 마친 아버지는 파르스름한 턱을 손바닥으로 쓱 한번 문지른 다음 가죽 허리띠에 면도날을 갈았다. 그리고는 엄지손가락으로 날을 지긋이 눌러보곤 하셨는데 보기만 해도 섬뜩한 칼날이었다.

 면도기를 보관하는 곳은 벽에 걸린 괘종시계 안이었다. 야구공만한 금색 추 아래에 면도기를 보관해 두었다. 내 기억으로는 엄마도 그 곳에다 반지며 시계를 보관해 두었는데 그 곳을 최고로 안전하고 사람 손이 덜 타는 곳으로 여긴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겁 없이 그 면도기에 손을 댔다. 어이없게도 연필을 깎을 때였다. 엄마가 사주신 연필 깎는 검은 칼은 쉽게 부러지고 무디어져서 싸구려 연필을 깎기에 여간 짜증스런 일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질 좋은 연필이 없었던 시절이라 칼의 방향과 나무결이 어긋날 경우는 연필이 뭉텅 잘려나가기도 하고 손을 베기 일쑤였다. 게다가 연필심은 마른 국수가락처럼 뚝뚝 부러졌다.

 아버지가 면도를 마치고 들로 나가는 것을 확인하면 대범하게 면도기를 꺼내 연필을 깎기 시작했다. 크고 잘 드는 면도기였지만 한 번도 손을 베지 않았다. 어떤 연필이든지 얌전하게 깎였다. 얼마나 기분 좋고 속 시원했는지 그 일은 한번에서 그치지 않았고 뒤로도 여러 번 있었다.

 걸레나 수건으로 면도기에 붙은 연필심 가루를 닦아낸 다음 다시 시계 안에 넣어두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깎은 연필로 벽지에 내 이름을 적어보면 글씨가 그렇게 잘 써질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나의 면도기 도둑질을 아셨는지 모르셨는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완전범죄라고 생각했지만, 얼마 뒤 면도기가 사라졌다. 까치발을 하고 시계 속을 더듬었는데 면도기가 잡히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 앞에서 면도는 하셨지만 면도기를 숨겨두는 장소를 공개하지 않았다.

 뭉툭하고 아무렇게 깎인 연필로 공책 속 글씨가 삐뚤빼뚤해지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부르셨다. 드디어 혼을 내시려는구나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필통을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필통 뚜껑을 여시더니, 곧 버리고 말거라 생각했던 그 무딘 칼로 아주 천천히 심 한번 부러뜨리지 않고 연필을 깎아주셨다. 나무 덩걸 같이 투박한 손으로 내가 쥐고 쓰기에 딱 좋은 크기로 깎아주셨다.

 그 뒤로 연필을 깎을 때는 아버지처럼 천천히 깎는 시늉을 해보았다. 연필에서 나는 나무 냄새. 검은 심 냄새. 그리고 고개 숙인 아버지의 머리에서 나던 땀 냄새.

 아버지가 베개를 가슴에 대고 엎드려 한자를 쓰실 때마다 연필을 깎아달라고 했다.
 그 뒤부터 연필 깎는 일이 즐거웠다. 그 연필로 무언가를 자꾸 쓰고 싶었고, 아버지가 깎아주신 연필로 글을 쓰는 것이 즐거운 아이로 자라게 되었다.

 아이들과 글쓰기를 하면서 연필을 유심히 보게 된다. 손으로 깎은 연필은 하나도 없고 모두 정교하게 잘 깎여 있다. 요즘은 거의 연필깎이를 가지고 있으니 손으로 깎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손도 더러워지고 칼이 위험해서 칼로 연필로 깎는 건 꺼리는 일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손으로 연필을 깎는다. 원고를 쓸 때도 시작은 연필로 한다. 그러다 생각이 막히거나,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앞설 때는 연필을 깎으며 글 숨을 쉰다.

 이런 내 자잘한 취미를 아이들도 알아서 글을 쓰다가 연필심이 부러지면 연필깎이를 옆에 두고도 연필 깎아 주세요 라고 말한다. 그래, 좋아. 반갑게 달려가 연필을 깎기 시작하면 아이는 신기한 듯 고개를 숙이고 쳐다보며 말한다. 와, 인간 연필깎이다!

 연필을 쥐고 종이에 코를 박고 글을 쓰는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스마트폰에 고개를 숙이는 아이들이 늘어난다. 샤프펜 심 굵기도 입맛대로 조절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내 마음을 글자로 그려내는 일에만은 연필을 깎아 쓰면 좋겠다. 연필을 깎으며 다음 문장을 생각하고, 다음에 쓸 친구 이름을 생각하는 여유를 주고 싶다.

 사방이 고요하고 아이들이 연필로 글 쓰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어서 한 녀석이 연필심을 부러뜨려 연필을 깎아주고 싶어진다. 나는 인간 연필깎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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