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구에는 염포산이 있다. 울산대교 전망대가 있고, 매년 4월이면 염포산 산악자전거대회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염포(鹽浦)는 조선시대의 국제무역항이었고 소금밭이 많아 '소금나는 갯가'라는 지명에서 유래됐다. 바로 그 동네를 끼고 있는 산이다. 토요일 오후 하릴없이 뒹굴다 외투를 걸치고 선바람으로 나섰다. 겨울동안 움츠렸던 몸을 가동시키고자 산꼭대기에 도전했다. 재먼당, 봉호골, 새갓비알, 만장걸을 지나 쑥밭재를 거쳐 정상을 향했다.

 아직 공기가 차갑지만 많은 주민들이 등산을 즐긴다. 정상에 오르니 다른 방향으로 수리지골, 돌안골, 새납골재, 잔치골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골짜기는 각기 다른 사연을 품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즐겨 찾는 울산대교 전망대는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왕복 40분이면 충분하다. 친구들과 함께 점심시간을 이용해 일주일에 서너 번 산책을 한다. 산은 그리 높지 않아 걷기에 그만이다.
 승강기를 타고 전망타워에 올랐다. 석유화학단지, 자동차, 조선산업단지, 울산시내 전경, 7대 명산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바다위에 우뚝 선 울산대교의 모습이 웅장하다. 동해바다가 대왕암을 배경으로 시원스레 펼쳐진다. 마음까지 확 트이는 기분이다.
 등산길에서 청설모를 여러 번 만났다. 높다란 소나무를 타면서 한참동안 재롱을 부렸다.
 특공대원보다 재빠르게 아래를 향해 내려오기도 하고 나뭇가지를 사뿐히 걸어 이동한다. 전에는 이 곳에서 고라니를 본 적도 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고라니가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도심이 가까운데 야생동물이 서식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개발이 될수록 청설모 같은 귀여운 친구와 껑충한 고라니가 더 깊은 산 속으로 숨어버릴까 염려된다. 해마다 4월이면 이 곳 염포산에서 전국산악자전거 대회가 열린다.
 하얀 벚꽃세상에서 펼치는 레이스가 흰 구름 위의 산책처럼 즐겁다. 길은 자전거 코스별로 각각 나뉘어져 연결돼 있다.
 대회를 하거나 동호회원들이 경주할 때를 제외하고 대부분 등산길로 이용된다.
 이외 수많은 갈림길은 큰길과 만나기도 하고 혼자만의 고독한 여정을 만들면서 정상과 이어진다. 이 길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때는 어깨가 부딪칠 정도다. 그래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약간 떨어져 걸어야 한다.
 걷다가 골짜기를 만나면 가파른 낭떠러지 옆을 조심스레 건너고 물구덩이를 만나면 신발이 젖을까봐 힘껏 멀리 뛴다.

 가시덤불 사이에서 새들은 포롱거리고 길동무와 도란도란 소곤거림은 골바람에 실려 날아간다. 아무도 없는 산길에서 느끼는 적막감은 평화롭다. 고즈넉한 사색의 공간에서 세상에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편백나무 숲에서는 머리가 맑아지고 감정이 평온해진다. 쭉쭉 뻗은 몸매가 1등급이다. 날씬하고 건강미가 넘치는 봄 아가씨를 보는 듯 기분이 상쾌하다. 빈터에 마련된 평상에 누워본다. 사방이 온통 푸르다.
 여름밤이라면 한 가닥 별빛이 쏟아지는 상상을 한다. 정상까지 가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면서 횡단거리가 멀다. 가는 도중 그루터기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힘을 주는 친구들이 있기에 다시 일어서고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큰길을 이용하면 쉽고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청설모와 골바람소리를 만나는 소소한 재미는 없다. 사계절이 성장하듯 변하는 모습도 자세히 보지 못한다. 그러하기에 오솔길만이 주는 매력을 놓칠 수 없다.

 인생길도 마찬가지다. 바삐 가지 말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더디 가더라도 더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는 것이 사는 재미 아닐까 싶다.
 잠깐 멈추고 바라보기, 일상의 수련 과제다. 때로는 산악자전거를 타듯 난코스를 위험하게 질주하거나 마라토너처럼 쉴 새 없이 뛰기도 한다. 때로는 낭떠러지 같은 실패를 만나고, 물웅덩이 같은 역경을 건너야 하는 수고스러움도 있을 것이다.

 시원한 솔바람이 더위를 식혀주고 나무그늘이 햇볕을 가려준다. 편백나무의 맑은 기운 같은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다면 고마운 일이다. 험난한 인생길에서 그런 친구들과의 만남이 기다려진다. 인생의 정상지점은 알 수 없다. 여행길은 비포장도로다. 또한 수많은 갈림길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이것 또한 어려운 숙제다. 어떤 길을 가더라도 인생길 어디쯤 있을 쑥밭재를 넘고 정상을 향해 갈 것이다.
 날씨가 풀릴수록 염포산의 오솔길은 더욱 분주해진다.
 주말에는 행락객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자전거 바퀴도 열심히 페달을 굴릴 것이다. 우리네 인생의 봄날도 지금 한창이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