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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사 겸 국장

딱 한사람, 바로 내가 선택의 결정을 쥐고 있다면 확 바꿔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치다. 내 맘대로 내 뜻대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하게 하는 것이 선거다. 그러나 대의 민주주의라는 정치의 본질은 내 생각 내 뜻이 총의로 모일 때 하나의 실천이 된다. 쉽게 말해서 내편이 다수가 되어야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야단이다. 날 좀 보소부터 날 보러 와요까지 모두가 내편이 되어 달라고 한껏 몸을 낮추고 있다.

 딱 이틀 남았다. 선거 때가 되니 복지와 정치의 롤모델인 스웨덴이 방송에서 뜬다. 봉사의 신념, 특권 없는 국회의원 이야기가 방송을 타고 공감과 비교의 좌판에 널브러진다. 어쩌란 말이냐. 세계 5위의 부자나라 국회의원이 월급 800만원에 평균 100건의 법안 발의, 공동 보좌관과 철저한 영수증 관리까지 정치가 생활이고 봉사가 직업인 스웨덴을 이 시점에 방송하는 것은 굴욕이다. 먼나라가 아니라 딴나라 이야기를 틀어놓고 선택을 강요하면 투표장은 썰렁하다. 안가고 싶다. 그런데 이 나라, 스웨덴을 오늘의 모습으로 바꾼 것은 작은 정치 축제에서 시작됐다. 바로 '알메달렌'이라는 정치축제다. 매년 3만여 명의 국민이 카페나 세미나실에 모여 앉아 수많은 정책, 자신이 바라는 삶에 대해 생각을 나눈다. 물건이 아니라 생각을 나누면서 정치의 방법론이 달라졌다. 물론 오랜 시간의 축적물이다.

 과정 없는 결과는 없다. 3.15 부정선거로 시작된 대한민국 선거의 역사와 이기붕의 부정축재로 학습된 특권과 권력의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하루아침에 변하진 않는다. 그래서 무수히 손질했다. 절차와 제도는 대한민국 대입제도 만큼 주물럭거렸지만 대입제도나 정치는 여전히 말이 많다. 본질은 그대로 두고 페인트 칠만 바꾸니 당연하다.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 하면 더 썩었다. 과거엔 최고까진 아니었지만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은 최고의 직업이다. 당선만 되면 특권과 풍요를 한꺼번에 차지한다. 그래서 구직자들이 줄을 섰다. 시험도 없다. 줄 잘서고 말 잘하고 포장만 제대로 하면 4년이, 아니 평생이, 아니 대대손손이 보장된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연간 세비는 1억4천여만원이다. 이는 우리나라 GDP의 5배가 넘는 수준이다. 스웨덴, 프랑스, 영국 등 이른바 정치 선진국 국회의원의 세비는 1인당 GDP의 약 2~3배 수준이라고 하니 우리가 단연 세계 최고다. 여기에 사무실 유지비와 차량 기름값 등이 별도로 지원되고 KTX, 선박, 항공기를 무료로 사용할 수도 있다. 또 국고지원 해외시찰 연 2회가 가능하다. 무엇보다 4급부터 인턴직원까지 포함해 9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다. 원내대표, 상임위나 특위의 위원장 등이 되면 특수활동비가 따로 나온다. 이외에도 매년 1억5천만원까지 정치자금 모금도 할 수 있는 등 200여 가지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

   이쯤되니 그들의 눈치를 보는 광역단체 시·도의원도, 기초단체 시·군·구의원도 요구하는 것이 계속 늘고 있다. 무급 봉사직에서 유급으로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보수가 너무 적다고 야단이다. 급기야 우리도 보좌관이 필요하다고까지 한다. 국제조사전문기관 '월드밸류서베이'가 2010~2014년 61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를 보면 평균적으로 각 국가 국민 39%가 국회를 신뢰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국회를 신뢰한다는 답변이 25.5%로 평균에 크게 못 미쳤다.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의견은 무려 74%에 달했다. 조사결과를 볼 것도 없이 우리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폭발직전이다.

 하지만 요즘 선거판을 보면 꼭 그런것 같지도 않다. 박수도 치고 춤도 추고 목청도 높인다. 변해야 한다는 데 4년마다 똑 같다. 이른바 인간이 가진 실용적 합리성 때문이다. 선택의 순간, 우리는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성적 자료로 결정을 하는 습관적 패착을 둔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공약보다 거리로 나가고 안가던 전통시장에서 어묵에 튀김까지 침을 바르고 시민들과 포옹하고 악수한다. 가끔은 읍소도 하고 눈물을 보이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유권자들의 '착각심리'를 노리는 선거전략이다.

 문제는 변하지 않는 정치인들이 아니라 우리다. 재미없는 정치, 재미없는 선거는 그대로 재미없는 세상살이로 이어진다. 역으로 말하면 세상사가 재미없는 판이니 정치가, 선거가 재미있을 리 없다. 그러다보니 만물이 제 색깔의 옷을 입고 손짓하는 나들이를 꿈꿀지언정 투표장에는 갈 생각을 하지 않는 유권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재미없는 세상 그나마 하루 꿀맛 같은 휴일을 챙겼으니 '재미' 찾으러 나들이나 간다는 식이다. 흔히 정치냉소주의는 그러나 정치에 대한 '싸늘한 미소'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싸늘해지는 전이현상을 낳는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의 무관심과 냉소로 국회를 장악한 정치인들이 우리의 일상과 우리의 관계를 옭아매는 법과 제도를 마음대로 주물러 어느새 우리 위에 군림해 버린다. 그래서 정말 투표장에 가고 싶지 않은 선거판이지만 그래도 아침 일찍 나들이 채비를 끝내고 투표장부터 찾아가야 한다. 우리를 위하여, 아니 맨날 불평만 하는 바로 나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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