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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사 겸 국장

반구대 암각화 보존 해법이 다시 이슈가 됐다. 기형적인 카이네틱댐이라는 응급조치에 묻혀 그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보존 문제는 임시물막이의 누수현상으로 다시 수면 위로 흘러넘치는 상황이다.

    물막이 실패, 생태제방안 부상 등 요즘 언론에서 떠드는 이야기는 참 오래된 문장이다. 임시물막이 채택부터 누수는 예견됐고 임시라는 단어처럼 임시방편은 대책이 아니라고 목청 높이던 이야기도 오래된 문장이다. 지난주엔 문화재청이 생태제방안을 유네스코에 공식 질의하겠다는 태도 변화를 보였다고 야단이다. 공식질의와 보존의 상관관계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반구대 암각화 문제가 나올 때마다 뒤따르는 단어는 세계유산등재다. 유산등재를 위해 보존해야하는 것인지 반구대 암각화의 절대 가치 때문에 보존해야하는 것인지 주객이 뒤바뀐지 오래다. 우리가 반구대 암각화에 목을 매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핵심은 '뿌리'다. 반구대 암각화는 무엇보다 우리 뿌리를 웅변하는 증거물이다.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뿌리를 거론하고 뿌리에서 미래를 찾으려는 노력은 실체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땅의 역사를 단군조선 이후로 축소한 일본 왕실의 어용학자들이 죽어도 부정할 수 없는 생생한 민족의 이동경로가 울산에 있다. 1971년 반구대 암각화 발견 이후 많은 학자들이 암각화의 역사·상징성, 예술적 가치와 사료적 가치에 대해 연구해 왔다. 학자들의 연구성과는 해가 거듭할수록 반구대 암각화의 놀라운 가치를 돋보이게 하고 있지만 정작 국보 지정만 하고 뒷짐 진 문화재청은  적극성이 없었다. 여론에 밀려 임시물막이와 타협하고 근본적인 보존 문제는 세계유산 지정에 걸림돌이 된다며 불가입장만 되풀이했다. 불가하면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형상변경보다 더한 기형적인 임시물막이는 방관했다. 참 딱한 문화재관리 인사들이다.

 반구대 암각화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연결해야 하는 것은 한민족의 이동경로, 나아가 인류의 문화유전인자다. 시베리아 우르쿠츠크 인근에는 시스키스키 암각화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만큼 시련과 고초를 겪은 이 암각화는 반구대 암각화를 새긴 사람들의 뿌리를 이야기해 준다. 사실 이 암각화 외에도 바이칼 인근은 우리 민족과 많은 유사성을 가진 문화적 유전인자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때문에 한민족이 시베리아 바이칼 지역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하는 학자가 점차 늘어나는 상황이다. 이들 학자들은 바이칼에서부터 많은 자료를 조사하고 우리 민족과의 유사성을 찾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바로 이곳에 고대 암각화가 있다. 불행하게도 그 한 곳은 1948년에 완성된 이르쿠츠크시 남쪽 앙가라강에 세워진 댐으로 인해 수몰됐고 남은 하나가 바로 시스키스키 암각화다. 사슴과 사냥술을 묘사한 이 암각화는 반구대 암각화의 원형이라 해도 될 만큼 많은 유사성을 갖고 있다.

 2008년 내몽골 적봉에서 한국형 암각화가 발견됐다. 고려대 한국고대사 연구팀이 발견한 이 암각화는 바이칼에서 시작된 암각화의 흔적이 한반도 동쪽 끝 울산으로 연결되는 결정적 단서가 됐다. 내몽골 암각화는 천전리 각석에 새겨진 방패형 검파형 암각화 기원을 찾는 중요한 증거물이 됐다. 특히 내몽골 지가영자 유적의 남쪽 사면 바위 군락의 상단부에서는 천전리 암각화를 축소해 놓은 것과 같은 마름모·동심원·사람얼굴모양 등의 암각화가 나와 학자들의 가슴을 달구기도 했다. 바이칼과 내몽골, 요하문명지와 한반도로 이어지는 고대인류의 이동이 바위그림으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셈이다.

 한민족 주류의 기원이 북방에 있다는 설은 가설 단계를 넘어 인류학적으로나 문명사적으로 검증되는 과정에 있다. 오늘날 한반도를 중심으로 살고 있는 한민족은 혈통적으로 몽골로이드계 인종에 속한다. 몽골로이드계란 오늘날 인류의 직계조상으로 간주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출현한 후, 지금으로부터 10만~5만년 전부터 이 땅에 살았던 인종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한다. 최초의 원주지를 떠나 오늘날 바이칼호를 축으로 그 연안과 동부지역에 자리잡은 인종집단이 그들이다. 바이칼에 터를 잡은 민족의 일단이 내몽골과 요하를 거쳐 한반도로 이동했고 그 종착지가 울산이었다는 증거가 바로 반구대 암각화다.

 문제는 현장에 있다. 반구대 암각화가 위치한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는 사연댐이라는 인공구조물도 있지만 선사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원시 가마터부터 각석·누각은 물론 서원과 고가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살아 있는 역사박물관이다. 이 현장에 한달이면 5,000여 명의 관광객이 전국, 아니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다. 원시 세계에서 선사인이 남긴 흔적부터 박물관 속 오늘날 사람들이 재현한 역사까지 낱낱이 본 이들의 마지막 시선은 언제나 반구대 암각화로 쏠린다.

    그 현장에서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아침과 낮, 그리고 일몰과 밤, 모두를 살펴야 한다. 현장에서 왜 반구대 암각화를 물에서 건져야하고 그 방법의 지엽적인 옵션들을 없애야 하는지 깨달아야 한다. 문화유산은 과거의 흔적도 있지만 과거로부터 오늘의 역사 모두가 하나의 문화적 자산임을 잊어서는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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