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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사 겸 국장

이번주 고래축제가 열린다. 울산은 산업수도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각인돼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류사의 비밀과 한반도 고대사의 모태가 숨은 그림찾기처럼 새겨져 있는 땅이다. 그 출발은 바다다. 정자바다부터 방어진과 장생포, 서생 앞바다까지 동해 푸른빛이 적시는 바다가 그 출발이다. 옛 사람들은 바로 이 동해를 고래의 바다 즉 경해(鯨海)라고 부르기도 했다.

 울산은 과거 고래바다였다. 반구대 암각화가 그 증거다. 너무나 뚜렷한 증좌가 있기에 울산은 고래와 함께 시작된 인류 최초의 고래마을이라 단언해도 좋다. 바로 그 뿌리에서 울산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정자 바닷가에서 해안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면 만나는 바다가 주전 앞바다다. 바로 이곳에는 전국, 아니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고래전설이 남아 있다. 피노키오 같은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다. 지금의 울산시 북구 어물동이 바로 그곳이다.

    이 곳 황토전 부락에는 고래논이야기가 전해진다. 주전동 해안의 한 어부가 고기잡이 하러 나갔다가 거대한 몸집의 고래를 만나 도망치다가 뱃속으로 삼켜졌다. 어부는 죽을 힘을 다해 칼로 배를 그어 뱃장을 찢어 탈출했다. 그 후 그는 마을사람들과 함께 죽은 고래를 육지로 끌고 나오니 고래의 크기가 초가삼간 다섯 채 크기였다고 한다. 어부는 이 고래를 팔아서 논을 샀는데 이 논이 고래논이라고 한다.

 초가삼간 다섯 채 크기의 고래가 넘실대던 바다, 그 바다와 반구대 암각화를 연결하는 다큐멘터리가 지난 2004년 영국 BBC에 의해 소개됐다. BBC는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향유고래, 참고래, 혹등고래 등 큰 고래 46마리를 근거로 선사 인류가 고래를 잡기 위해 작살과 부구, 낚싯줄을 사용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를 보다 심층적으로 파고 든 논문이 다니엘 로비노 박사에 의해 세계적인 인류학 잡지인 랑트로폴로지(L'Anthropologie)에 실려 있다.

 반구대 암각화의 문화인류사적 가치는 놀랄만하다. 규모와 위치가 그렇지만 그보다 암면에 새긴 야생동물 개체수와 다양성이 놀랍다. 어디 그 뿐인가. 단순한 야생의 재현이 아니라 야생에 대한 인간의 도전과 효율적 이용을 유추할 수 있는 그림이 빽빽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그 가치보다 수몰과 훼손의 책임에 몰두했다. 수출입국, 조국의 근대화라는 슬로건 아래 하나일 때 울산의 산하는 수몰과 훼손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몰랐으니 그 책임의 주체도 모호하다. 하지만 알고 난 뒤가 문제다. 알면서 그대로 두는 것은 고문이다. 살아 있는 생물체라면 가당치도 않은 일이지만 말없는 돌덩이라고 함부로 했다.

 임시로 이상한 댐을 만들어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하겠다고 정치적 야합을 했지만 그 마저 깨진 독이 됐다.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도 오른지도 한참이다. 하지만 여전히 인위적 훼손이니 자맥질이니 식수 확보니 하는 따위가 메아리처럼 울린다. 울림은 소신의 표현이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모든 이야기를 쟁점화하면 그야말로 중구난방이 되기 마련이다. 반구대 암각화의 오늘을 이야기 할 때다. 지나간 것에 집착하거나 책임공방으로 허송할 시간이 없다. 오늘의 현장에서 내일을 이야기할 때 대안이 나온다. 바로 가치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만큼의 보존이다. 이는 반구대 암각화를 살아있는 생명체로 바라볼 때 건강한 해답이 나온다. 

 연구자들은 반구대 암각화를 두고 여러 학설을 제시한다. 선사인에게 책의 일종으로서, 짐승들에 관한 지식과 사냥방법, 분배법칙을 가르치기 위한 것(정동찬)이라는 설과, 단순하게 사냥미술 일종으로 수렵하는 모습을 그렸다는 사람도 있다. 제의적인 종교 입문식이라는 의미(황용훈)로 생각하는 이도 있고, 번식을 기리는 마음에서 수렵 대상과 사냥 노획물을 표현했다고도 한다. 이들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학설은 반구대 암각화를 재생과 풍요를 위한 종교적 제의 장소와 결과물(임장혁·임세권)이라는 설이다.

 반구대 암각화 인근 대곡천 일대는 한국 선사문화답사의 일번지다. 어쩌면 한반도에 인류가 정착해 살아갔던 첫 터전일지도 모른다. 그 무리가 바다를 건너 왔다는 설과 북방에서 흘러왔다는 설이 나뉘어 있지만 그 해답도 암각화의 그림들을 풀어 가면 마술처럼 과거의 연결고리가 발견될 수 있다. 바로 그 작업이 필요하다. 문제는 가치에 집중하고 이를 보편타당하게 전달하는 데 있다. 지구상에 하나 뿐인 우리의 보물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모른다면 자맥질을 방치하는 것보다 더 부끄러운 일이다. 암각화 보존을 방치한채 고래도시 운운하는 것은 정말로 기가 막히는 일이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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