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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울산예총 사무처장

잠이 쏟아지는 유월 초하루 오후 2시가 막 지나고 있었다. 중년의 여자가 사무실 문을 열었다. 언뜻 보기에 안면이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아서 멀뚱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내 눈치와는 상관없다는 듯 그 여자는 흰색 편지봉투를 내밀며 누구에게 전달해 달라고 했다. 직원들이 재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어리둥절 하는 사이에 나는 "분명 어디서 본 적 있는 얼굴인데"라며 기억 속 잠재된 얼굴들을 떠 올리고 있었다.

 편지봉투를 제대로 받아주지 않자 그 여자는 도로 갖고 가서 봉투 안에 있는 내용물을 꺼냈다. 직감적으로 그것이 원고라는 것을 알았고 내 머릿속에는 번개 치듯 어떤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가 그 여자의 이름을 떠올렸을 때는 육상선수가 출발선에서 스타트 하는 순간에 쏘는 총처럼 그 여자는 자기 이름을 빠르게 말해버렸다. 아! 확실히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는 사이 순식간에 시간이 흘렀고 아는 체 할 절호의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모르는 체 하기가 머쓱해지면서 그대로 있는 내 처신이 매우 불편했다. 분명 알고 있는데 아는 체를 하지 않아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한 몇 초가 매우 길었다. 직원들과 나의 황당해 하는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여자는 친절하게 인사를 하고 원고를 전달한 후 문을 열고 나갔다.

 사무실을 찾은 여자는 신필주 시인이었다. 모처럼 만난 신 시인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내 이름조차도 가물가물했다. 신 시인이 나간 시간에다 약간의 뜸을 들인 후 사무실 밖으로 나가보았다. 그 사이에 신 시인은 흔적이 없었다.

 잠시 후 다시 신 시인을 만난 것은 울산문화예술회관 제4전시장에서였다. 신 시인에게 아는 체 하지 않고 보낸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미안한 마음이 점점 커지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목판화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에 들렀더니 신 시인이 전시장 가운데 섬처럼 떠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작품들을 여유 있게 관람하고 있었다. 손수건으로 연신 얼굴의 땀을 닦는 것을 보니 그녀도 바깥에서 방금 들어온 것 같았다.

 "선생님 저 아시겠어요?" 하고 내가 물었다. 그녀는 전혀 모른다는 표정으로 "누구시죠?" 하고 되물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울산문협 이전, 1980년 신필주 시인이 당시 우석고 국어교사로 근무하던 때부터 물꼬를 텄다. 신 시인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소녀처럼 웃었다. 웃을 때 표정은 티 없이 맑았다. 젊은시절 우향 글 모임을 만들고 시를 가르치면서 인연을 맺은 13명의 제자들과는 최근에 만났다고 했다.

 나는 6년 전 울산문협 사무국장으로 일할 때 신 시인과 자주 통화해야 했다. 그녀가 한글 워드 작업을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가 계간 울산문학 원고를 우편으로 부쳐오면 주로 내가 작업을 해서 편집장에게 넘겼다. 그러다 한동안 소식이 끊어졌던 신 시인이 올해 초 날아온 소문에 울산에 거처를 정했다는 것이었다. 시에 대한 열정은 젊은이 못지않은 신필주 시인은 모처럼 만난 나 하고도 시집 출판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이야기를 했다.

 신 시인이 시를 말할 때는 눈빛과 표정이 달랐다. 신 시인이 이끌었던 글 모임 우향의 뜻처럼 영혼이 맑은 사슴들이 사는 나라에서 온 것 같았다. 말 끝에 시인에게 시집 출판에 대한 꿈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했더니 어린이처럼 무척 좋아라고 했다.

 신 시인은 1980년 박두진 선생 추천으로 문단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우석고에서 몇 개월 교사생활을 했고 이후 서울로 가서 출판업계 등에서 일하다 다시 울산으로 돌아왔다. 서울에 있을 때는 울산문협 회원들의 시집 출판도 거들어주었다는 신 시인에게 그간 어떻게 지내셨냐 물었더니 "시를 쓰다 보니 그냥 세월이 흘러갔다"고 했다. 지금 다시 울산에 돌아와 보니 모든 것이 달라져 있는 현실이 부담스럽다고도 했다. 그의 말처럼 울산문협에서도 신 시인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신 시인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중요한 것은 사람의 체형을 바꾸어놓는 것이었다. 젊음이 넘치던 시절은 찰나에 지나가버리고 노을이 아름다운 사람들끼리 모처럼 만나면 통성명을 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말끝마다 "옛날에"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으면 다음 대화로 연결이 어려운 시인과 대화를 하면서 어느 누구와도 대화를 나눌 때는 지금보다 더 진지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신필주 선생을 만나면서 크게 깨달았다. 알 듯 모를 듯 "누구세요"라고 무작정 던지는 무덤덤한 시인의 언어에 주눅이 들었지만 결국 그를 만나 아는 체 했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신 시인은 시와 평생을 산 사람이다. 요즘도 그의 하루는 시에서 시작해서 시로 끝이 난다. 흘러가는 세월 저편의 이야기를 하면서 신 시인은 눈가에 잔잔한 바람이 일었다. 오늘 신필주 시인을 만난 것은 일상의 작은 기쁨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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