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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사 겸 국장

드라마 마케팅이 가장 유효한 나라는 단연 한국이다. 한편의 드라마가 뜨면 그 드라마 주인공이 만지작거린 길거리 노점의 머리핀조차 품절현상을 보이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송혜교 원피스를 입으면 그녀처럼 보일 것 같고 송중기 선글라스를 쓰면 후광이 번득이리라 착각하는 심리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 자기애와 과시욕의 결합이 만든 상술이지만 뭐 그닥 나쁠 것은 없다. 가성비 최고인 머리핀 한 개로 즐거우면 그만이다. 문제는 단순한 머리핀에 숨어 있는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빈센트 앤 코 사건이라는 해프닝이 있다. 명품시계의 대명사인 빈센트 앤 코는 처음 판매될 때 영국의 왕족들이 사용하는 시계로 알려졌다. 물론 한국 시장에서 단연 최고의 선호도를 보였다. 유명 연예인이 손목에 걸치자 너도나도 이 브랜드를 찾았다. 시계 하나가 무려 5,000만 원까지 하는 이른바 명품이었다. 그런데 국내에 판매된 이 시계 상당수는 실제 가격이 5만 원에서 20만 원짜리였던 짝퉁시계였다. 동일시 효과의 뒷모습이다.

 폭스바겐이 디젤 차량 배출 가스 조작으로 피해를 본 미국 소비자에게 배상금 153억 3,300만 달러(약 17조 8,000억 원)를 내놓겠다고 발표하자 대한민국이 얼굴을 붉히고 있다. 폭스바겐 측은 대한민국에 대해 배상금 대책이 없다는 오만방자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폭스바겐의 이같은 오만은 '디젤게이트' 이후 한국에서는 차량 판매가 오히려 늘어났다는 자신감의 반영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파격적으로 차량 가격을 할인하면서 한국인의 '허영 가성비' 심리를 부추겼다는 분석도 나왔지만 전국적인 불매운동이 벌어져도 시원찮은 판에 구매 열풍은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현재 국내 폭스바겐 구입자 4,400여 명은 "속여서 차를 팔았다"는 이유로 폭스바겐 경영진을 사기죄로 고소하고, 부당 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정작 이같은 상황에 대해 자동차 관련 정부 부처는 말을 아끼고 있다. 리콜 권한을 갖고 있는 국토교통부는 "배출 가스는 환경부 소관이며 연비 논란은 기본적으로 소비자가 선택하는 문제"라고 했고, 자동차 산업을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환경부와 국토부에서 알아서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폭스바겐 코리아 리콜 계획서에 대해 "차량을 임의 조작했다는 사항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세 차례 거부했지만 그 뒤로 폭스바겐 코리아가 리콜 계획을 계속 내지 않고 있는데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하기야 무이자 할부 정책에 한국시장에서 판매율이 65%나 올랐다니 그 배짱의 뒷배가 어디인지 알만한 일이다.

 어른들은 흔히 청소년기 따라하기 심리에 손가락질을 한다. 그 손가락질이 결국 스스로에게 돌아오는 근원적 허영심에 있다는 사실을 모른채 말이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으면 따돌림 당하는 문화는 어른이 만든 그들만의 안식처다. 공감이나 공유의 어울림을 외치는 사회지만 정작 속살을 들여다보면 철저한 그들만의 세계를 더욱 견고하게 할 뿐이다. 동일한 브랜드는 유사한 스타일을 배경으로 깔아 묘한 신경안정제 역할을 한다. 그 안정감을 위해 아이는 연예인 브랜드로 어른은 명품 브랜드로 가능한 하나쯤 몸의 어딘가에 걸쳐두고 싶다. 그래야 비로소 자신이 갑이 되고 어깨 근육이 딸국질을 하기 시작한다. 그 묘한 신경안정제의 심리학이 폭스바겐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한 철학자가 한국인의 심리 상태를 분석한 '어쩌다 한국인'이란 책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철학자는 책에서 한국의 많은 기성세대들의 갑질 유전인자를 재미있게 분석했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누구의 아버지, 누구의 어머니, 누구의 자식, 누구의 상사, 누구의 친구, 누구의 부하 등과 같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에게 이런 관계적 존재감이 충분히 느껴지지 않는 상황은 너무나도 불안하고 동시에 좌절스러운 상황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 수없이 일어나고 있는 갑질은 바로 그런 존재감을 유지 보전하려는 발악이다. 그 발악은 다양한 형태로 우리 사회를 불편하게 한다. 폭스바겐의 문제 역시 자동차의 문제이긴 하지만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기성사회가 감추듯 드러내는 천박한 갑질의 전형이다.

 굳이 폭스바겐 이야기로 월요일 아침을 불편하게 하는 이유는 '나는 어떨까'에 대한 질문 때문이다. 몇 천만 원쯤 자동차 바꾸는데 쓸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폭스바겐 사태의 기사를 읽으며 무이자 할부에 옵션까지 붙여주는 폭스바겐을 외면한채 국산 차량을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선택이 아니라 자존감이다. 허영의 가성비를 지불해야 목에 힘이 들어간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몇 천만 원을 지불하지 않아도, 아니 목에 힘을 주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으면 그만이다. '어쩌다 한국인'의 저자 말대로 이건 정말 사춘기 한국인에게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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